사회적 상황에서 긴장이나 불안을 느꼈던 적이 있는가? 어떨 때인가? 사회적 불안은 가만히 혼자 있었을 때 발생하지 않는다. 직장을 예로 들어보자. 일이 너무 힘들어서, 공간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이는 적다. 사회는 개인이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 외에 또 다른 인간과 관계 맺을 때 사회적 불안을 느낀다. ‘관계’란 무엇이고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걸까?
자기 자신과의 관계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돈, 명예, 건강을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그 가운데 1등은 바로 ‘관계’다. 많은 사람과 두루두루 지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들어있어야 한다. 진정성이 들어 있는 관계란 뭘 말하는 것일까? 관계는 세 가지로 나뉜다. 그 첫 번째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다.
자신과의 관계를 우리는 ‘자존감’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존감은 ‘내가 잘났다.’, ‘내가 최고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와 같은 말들과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지지만, 이는 진짜 자존감이 아니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30대 초반의 한 남성은 자신의 작은 키에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해했다. 그와 몇 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데이트해본 적 있냐는 물음에 그는 모태솔로라고 답했다. 최근에 동료들이 미팅을 주선해주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왜 잘 안됐느냐고 물으니 키가 작아서라고 했다. 그러면 누군가 당신을 좋아할 수 있는 당신의 무기가 무엇이 있을까, 질문하니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안정된 직장을 다닌다고 했다. ‘다른 게 또 있을까요? 유머나, 배려, 따뜻한 마음, 존중하는 태도 등등이요.’ 이 말에 남자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없어요.’
우리는 여기서 자존감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다. 키가 작아서 발생한 여러 일 때문에 괴로운 일이 있었던 건 맞겠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작은 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존감이라는 건 본인이 키가 작지 않다고 박박 우기는 게 아니라 작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이를 수용하고 다른 무기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키가 작다는 콤플렉스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다르게 여길 수 있다.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면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감, 당당한 여유, 유머, 상대를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대하는 태도 등. 자존감의 출발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좋은 측면이 또 있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을 변화시킬 수 없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첫 번째라면, 가족과 동료 등 사람과의 관계가 두 번째 되겠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이 하던 판사 노릇을 접고, 변호사 노릇을 해야 한다. 진짜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자세는 변호사 노릇과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판사 노릇을 하려고 한다. 즉, 관계에 있어 옳고 그름에 집착한다. 인간관계 갈등을 겪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최근 겪었던 갈등을 떠올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자. 갈등 내에서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옳다는 망상을 가진다. 자신이 옳다는 건 상대가 틀렸음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는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서 비롯하여 상대를 변화시키려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 정신과 의사도 마찬가지다. 다만 ‘내가 변화해야겠구나.’라는 동기를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아내의 말에 충격받은 적이 있다. 50대에서 60대가 될 때까지 이야기가 통하지 않아 답답했다는 말이었다. 50대 중반이 되니까 나아지고, 60대가 되니 견딜만하긴 한데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이야기한 지 5분쯤 지나면 자신이 잘못한 거로 바뀌어있다는 것이다. 아내 입장에서는 내 말을 들었을 때, 틀린 말은 아니니 반박은 못 하겠으나 가슴이 답답했다. 이런 일들이 숱하게 벌어졌다.
나의 경우처럼 많은 사람은 자신이 옳다는 망상에 빠져 박박 우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걸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가끔 판사 노릇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관계를 위해서는 변호사 노릇을 해야 한다. 이를 인정하고 훈련해야 한다.
세상과의 관계, 자기 자신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들여다볼 관계는 바로 ‘세상과의 관계’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실제로 누군가에게 감사해 하면 우리의 몸에 어떤 반응이 일어나고, 뇌에도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세상과의 관계를 맺을 때 중요한 지점을 두 명의 택시 기사 이야기로 살펴보자.
어느 지방에 가서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어디에 간다고 말하니, 택시 기사에게서 답이 없었다. 못 들었나 싶어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다시 말하자 택시 기사가 뒤돌아보며 ‘차 출발합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 한 말도 들었는데 왜 시끄럽게 두 번 말하는가, 하는 표정이었다. 속상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가 ‘그래 온종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며 진상을 대하겠어. 참 피곤하겠지.’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다른 한 명의 택시기사는 오래전 경제 위기가 왔던 시절에 만났다. 나는 그날 새벽 5시에 택시를 탔다. 젊은 기사가 반갑게 맞아주며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다. 병원에 간다고 하자, 의사 선생님이냐고 물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세요? 좋으시겠어요. 저도 요즘 참 행복합니다.’ 경제 위기 속에서 새벽 5시에 손님을 태우며 행복하다는 사람이라니. 속으로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말을 덧붙였다. ‘남들은 요즘 실직 걱정하는데 저는 택시를 해서 걱정이 없어요. 제가 어제 지방을 갔는데 27만 원을 벌었지 뭡니까?’ 나는 피곤하여 그의 말에 건성건성 대답한 뒤 병원에 내렸다. 6,900의 택시비가 나와 7,000원을 주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한참 어두운 새벽,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뒤돌아보니 택시 기사가 택시를 세워놓고 뛰어오고 있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에 200원을 쥐여주며 말했다.
‘선생님, 이렇게 일찍 오셨는데 커피 한 잔 뽑아 드셔야죠. 오늘 힘내세요. 행복하게 보내시고요.’ 의사란 사람이 대답도 잘 안 하고 인상 팍팍 쓰고 있으니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그렇게 말한 뒤 택시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나도 저런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지치고 힘들 때 그가 내 손에 쥐여준 200원을 잊지 못한다. 당신은 어느 택시 기사에 더 가까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세상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미네소타대학 연구조교수,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대한 신경 정신의학회 중독특임이사
보건복지부 및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국민권익위원장 표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