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나를 태우는 또 다른 나 (23)

[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신영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어떨 때 불안할까? 시험 보기 전, 회사 면접을 앞두고,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등등. 불안은 그다지 낯설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고 마주칠 수 있다. 밥을 먹지 못해 불안하다든가, 큰 위험이 닥칠까 불안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직장생활, 인간관계 등의 사회적 불안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불안’과 ‘사회적 불안’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불안 시리즈의 이번 회차부터 사회적 불안에 대해 살펴보자.

 

불안은 모두의 것

사람들은 왜 불안할까? 각종 원인을 생각하겠지만, 사람은 그냥 불안하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에이, 그럴 리가 있나. 원인이 있겠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불안은 모두에게 찾아온다. 깜깜한 밤길을 혼자 걷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둠 속에서 당신 앞에 무언가 휙 지나갔을 때, 당신은 깜짝 놀랄 것이다. 왜 놀랐을까? 뱀일까 봐? 과거의 경험 때문에? 아니다. 그냥 놀라는 것이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놀라지 않는다면 어둠 속의 뱀에게 물려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불안을 느끼고, 그로 인해 위험을 대비하며 살아남았기에 그냥 놀라게 된다. 우리는 먼저 놀란 후에야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렇다면 불안은 어떨 때 문제가 되는 걸까?

100M 출발선에 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났을 때, 너무 긴장하면 몸이 굳어서 앞으로 뛰어나갈 수 없다. 반대로 긴장과 불안 없이 너무 편안하다면 총 소리를 듣고도 뛰어나가지 않고 천천히 나아갈 것이다. 즉, 적절한 긴장과 불안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10 정도 불안하면 될 일에 100 정도의 불안을 느끼는 등 지나치게 과할 시에는 문제가 된다. 한 달 뒤에 있을 걱정을 미리 당겨서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생리적인 불안을 넘어 과도한 불안, 걱정, 근심은 일상생활에 균열을 일으킨다. 잠을 못 자거나 식사를 잘 못 하거나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등등. 이를 병적인 불안, 치료의 대상이 되는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치료를 한다고 100 정도 느꼈던 불안을 아예 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생리적인 적절한 불안과 더불어 사는 훈련을 하는 것이 불안을 대하는 진정한 자세다.

 

불안의 원인은 굉장히 복잡하기에 하나로 단정 지어 설명할 수 없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소질, 성격적인 기질, 어린 시절의 환경적인 요인 등 다양한 이유가 엮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불안을 과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타고 난 유전적, 신체적인 요인에 환경적인 요인이 입혀져 성격적인 요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이런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불안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펴볼 것은 다양한 요인 가운데, 사회적인 요인이 어떻게 우리에게 문제를 일으키느냐 하는 것이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에게

최근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인 불안의 요인은 무엇일까? 인간의 마음과 행동은 그 인간이 속해있는 사회의 환경적인 영향,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요즘 사람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안, 공황장애를 많이 겪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나온 과거를 생각해보자. 30년 전의 회사원들은 어땠을까? 50년 전에는 스트레스가 없고 불안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30년 전에도, 50년 전에도 불안과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더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여기는 데는 여러 가지 환경적인 몇 가지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불안의 세 가지 요인

첫째. 예측성이 떨어짐. 과거에 우리는 직장에 들어가면 그 다음 찾아올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아, 나는 5년 뒤에 과장님처럼 살겠구나.’, ‘10년 뒤에는 부장님처럼 살겠구나.’ 예측성이 가능한 사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어떠한가? 내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당장 다음 달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게다가 현대는 너무 빠르게 흐른다. 과거 100년 동안 있었던 사회 변화가 1년 만에 다 벌어져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늘 일정한 상태에 있으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를 ‘항상성’이라고 말한다. 항상성을 깨는 모든 자연 자극은 스트레스다. 변화하는 모든 것이 스트레스라는 뜻이다. 현대는 변화가 급하게 일어난다. 현대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의 스트레스와 불안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경쟁사회. 물론 사회는 언제나 경쟁이 있어왔지만, 현대 사회는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경쟁적이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공부하고, 모든 사람이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걸 목표로 한다. 주변에 있는 사람 모두 경쟁자인 이 세상에서는 한 번만 뒤쳐져도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사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산과 같이 높은 담벼락을 오르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단 하나의 사다리 뿐이라고 생각해보아라. 긴장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나의 경쟁자가 되어버리니 동지에 대한 개념 또한 사라지게 된다. 세상은 끝없이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 도전하는 삶을 산다. 수많은 자극들은 인간의 뇌를 계속 갉아먹는다. 가난과 전쟁이 주를 이루었던 시대와 비교하면 우리는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신체적 안전과 심적 안전, 뇌의 안전은 다르다. 안전한 곳에 있지만 뇌는 계속해서 각종 사건 사고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완충작용의 부족. 쉬지 않고 돌아가는 냉장고처럼 우리는 24시간 각성을 하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해소하기 위한 시간적인 여유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과거에는 어떤 갈등이 생기면 조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이가 있었다. 가정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대가족일 때 할아버지가 큰 소리 한번 내면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는가.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갈등이 직접적으로 들어오니 해소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또한 갈등을 건강하게 풀 수 있는 환경적인 요인도 부족하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양은 늘었지만 이를 풀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요인은 줄어 불안과 긴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가 환경적인 요인을 통제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불안을 없애기보다 스트레스와 불안을 수용하고 대처하는 방식이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스트레스와 불안 그 자체보다도, 대처의 기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영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원 박사
미네소타대학 연구조교수,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대한 신경 정신의학회 중독특임이사
보건복지부 및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국민권익위원장 표창
전문의 홈 가기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