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나를 태우는 또 다른 나 (25)
[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신영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회적 불안’은 사회적 배경과 관계 속에서 발현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떠한가? 당신이 다니는 직장 사회는 어떤 곳인가? 그 속에서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
과거에는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존재했다. 마치 제2의 가정처럼 한 번 입사하면 오래도록 다녀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며 직장생활에 대한 인식 또한 바뀌고 있다. 직장이란 개인에게 어떠한 의미를 띠는지, 현대의 직장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불안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직장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직장에 스스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끝없이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너무 고민하지 않기를 권한다. 과거에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가졌다. 직장에 목숨 걸고 일하기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으며 승진하는 등 여러 형태의 보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어떨까? 평생직장의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다. 직장의 입장에서 ‘요즘 사람들은 직장 충성도가 낮아졌다.’, ‘직장에서 마음이 떠나 있는 것 같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군가 정신과 의사와 직장인이 상담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의사가 직장인에게 회사에서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일화를 보고 ‘에이 말도 안 돼.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야지.’, ‘내 회사라고 생각하고 열정을 다해야지 무슨 소리야.’ 같은 생각이 든다면 과거의 마인드에 가깝다. 직장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부작용이 생긴다. 직장에 평생을 바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그렇다. 회사는 자선 사업 하는 곳이 아니기에, 언젠가 개인이 직장의 일원으로서 끝나는 시기가 온다. 그때, 직장으로 삶의 대부분을 채운 사람이라면 어떠할까?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배신감을 느끼며 폭발하게 된다. 왜? 나의 평생을 다 바쳤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좋지 못하다.
직장은 내 삶의 전부가 아닌 일부
요즘은 직장에 대해 ‘내가 가진 능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것’으로 여긴다. 과거에 여기던 직장과는 너무 다른 마인드지만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더욱더 건강할 수 있는 생각이다. 물론, 직장 일을 열심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은 중요하다. 하지만 직장은 우리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 모든 청춘을 회사에 바쳤다’라는 건 건강한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열심히 하되, 그게 내 삶의 전부가 아닌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직장으로 인한 삶의 변동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혹은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 직장은 큰 의미를 지닌다.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성취와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일 순 없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직장인의 가장 큰 고민
직장인 상담을 하다 보면 온갖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일에 대한 적성, 퇴사 고민 등등.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무엇이 있을까?
일이 힘들다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직장인의 받는 스트레스의 90%는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이 힘들거나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바꾸면 된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거나 소위 ‘진상’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다.
퇴사에서의 고민은 무엇일까? 퇴사를 고민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말해,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는 뜻이다. 안 좋은 회사라면 고민할 것 없이 나오면 된다. 하지만 왜인지 나올까 말까 고민하는 것은 본인에게 현 회사가 중요한 것을 주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명함이 사라지면 인생이 사라지는 사람
직장인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로, ‘명함이 사라지면 인생이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해 전하고 싶다. 진료를 보다 보면 종종 유명한 사람을 만나곤 한다. 모그룹 사장이라든지,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 등 말이다. 이들은 어느 날 일어나보니 명함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함이 없어진 건 곧 자기 자신이 없어졌다는 생각을 말한다. 이러한 경우는 특별한 이들에만 해당하는 걸까?
우리가 가진 명함, 타이틀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명함을 뺀 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명함을 뺐을 때도 나는 소중하고 귀하고 가치 있고 자랑스러운 사람인가? 명함을 빼고 나서의 나라는 사람에게 후배들이 함께 식사하자고 찾아올까? 우리는 직장으로 인해 많은 걱정과 고민에 휩싸인다. 인간관계와 퇴직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직장에 관한 생각은 곧 나 자신을 향한다. 어떠한 직장, 어떠한 인간관계 등 명함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무기들이 제각각 존재한다. 명함 말고 가질 수 있는 무기란 무얼 말하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가족일 수도 있고, 종교, 취미, 동료와의 관계,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 등등 무기는 수도 없이 많다.
미네소타대학 연구조교수,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대한 신경 정신의학회 중독특임이사
보건복지부 및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국민권익위원장 표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