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 남편과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거 같아요. 이 관계를 정리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같이 잘 살 수 있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이 애가 집을 나가든지 내가 나가든지 해야겠어요. 얘는 마치 날 괴롭히려고 태어난 것 같아요. 이런 우리 애,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관계에 대한 문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이렇듯 너무나 많다. 일이 많아서 힘들다, 일이 안 맞아서 힘들다 호소하며 찾아온 직장인들조차도 한 꺼풀 벗겨가며 속사정을 들어보면 결국은 이런 관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팀장과의, 사수와의 갈등과 고민들을 단순히 “일이 힘들어요”하며 방문하지만, 결국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경우다 흔하다.

‘이상적인’ 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들은 많다. 흔히 이상적인 관계를 ‘두 마리 고슴도치’에 비유하곤 한다. 추운 날 고슴도치끼리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서로 간의 체온을 통해 상대방을 따뜻하게 보살필 수 없지만, 반면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서로의 가시 때문에 서로를 찌르며 아픔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가까이 있되 적절한, 존중할 수 있고 건전한 경계를 유지하고 그 경계 안에서 나의 나름대로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설명이다.

이것은 부부 사이에도, 또한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어울리는 얘기다. 특히 부모 자녀 관계에서 지나친 속박은 상대를 더 벗어나고프게 만든다. 특히 아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렇게 적절한 boundary, 즉 경계가 더 절실히 필요해진다. 진료실에서 보는 보통의 부모들이 이러한 본인의 경계는 사수하려 하면서, 반면 아이의 경계는 존중 없이 언제든 침범하려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나의 경우에도 빗대어 생각해볼 문제다.
 

사진_픽셀


또한 관계의 문제 때문에 방문하는 많은 분들에게 ‘달궈진 돌멩이’ 얘기를 해드리고 싶다. 당신의 남편과, 당신의 아이와 사이가 안 좋은 것을 마치 달궈진 돌멩이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는 이미지로 떠올려보자. 잔뜩 달궈진 돌멩이끼리 잘 지내보자고 같이 부딪치고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던 결국 남는 것은 불꽃과 열기뿐이다. 가뜩이나 뜨거운 두 돌멩이가 더 타오르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우선순위는 서로 잠시 거리를 두고 각각의 열기를 식히는 것이다. 각각의 기술과 재주, 노력으로 그들 각자의 열기를 식혀야 마주 잡은 두 손 안에서 불꽃이 재차 피어오르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보통 하나의 돌멩이는 ‘저 돌멩이가 너무 뜨거워 마주치기만 하면 불타는 거야. 저 돌 때문이야’ 하며 불평을 멈추지 않는다. 정작 자기의 뜨거운 온도는 실감하지 못하거나 부인하면서 말이다.

‘저런 아이와, 저런 마누라와 어떻게 잘 지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정해진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나의 뜨겁디뜨거운 온도는 생각 못하면서, 정작 마찬가지로 뜨거운 저 돌멩이의 잘못을 먼저 주장한다. 너무 뜨거워서 가까이 갈 수 없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관계는 결국 마주 잡는 손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저 돌을 당장 식힐 수는 없지만, 나를 일단 식히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일단 내 돌의 온도라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저 돌이 나 때문에 뜨거웠다는 것을 이후에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더 이상 절망적일 수 없을 것 같은 부부관계의 현실을 호소하며 찾아온 어떤 환자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심한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면서, 이 병원에 오지 않은 남편이 변하지 않는 한 이 관계의 해피엔딩은 없을 거라고 반복해서 울분을 토하였다. 내가 아니라 남편이 환자라고 억울해하고, 왜 내가 여기 와야 하느냐며 불평하였다. 몇 달 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런저런 치료를 통해 좋아진 부인은 이제는 남편과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러 다닌다. ‘이렇게 우리 남편이 상냥한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 하면서 진료실에서도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인다. 처음 방문 때는 찡그린 얼굴 일색이었던 그 사람이 말이다. 어디서 어떻게 변하게 된 것일까. 난 남편 얼굴도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남편에게 한마디 말도 안 했고, 남편이 갑자기 로또 당첨된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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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 또한 당신 스스로가 염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 자신의 달궈진 온도를 낮추는 것.’ 만약 내 온도를 낮추는데 지장이 많을 정도로 계속해서 관계에서 스파크가 발생한다면, 일단 서로의 거리를 두면서 온도를 식힐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온도가 얼마나 높은지 스스로의 마음의 온도를 수시로 잘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37도 정도의 미열만 나도 아파하는 우리들이 정작 가슴속 마음의 온도는 잘 알지 못한다. 모든 갈등의 관계에서는 나의 달궈진 온도를 먼저 식히는 것이 우선순위다. 여가생활, 내 시간, 내 소일거리, 내 좋아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내 온도를 낮춰주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 속에서 얼마나 내 온도를 조절하고 있나.

‘네가 먼저 온도를 식혀. 그럼 내가 식힐 테니.’ 이런 상황 속에서 관계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단 내가 먼저 살고 봐야 되니 내가 먼저 냉탕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 재밌는 게 뭐 있나요? 요즘 살만하세요? 최근에 기분 좋았던 때는 언제였지요?”

관계가 문제긴 문제지만, 일단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떠올려보면 어떨까.

 

머리 아픈 관계에서 빠져나와서 일단 당신도 사람답게 좀 살아보도록 해보세요. 일단 당신부터 좀 살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 알아요? 그러다가 당신의 아이와의 사이도 더 좋아질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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