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오윤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루 전 청와대 청원사이트에서 여러 정신과 의사들의 관심을 얻고 회자되고 있는 청원이 있다.

바로 청소년들의 자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글이다.

정신과 의사를 대표하여 작성된 청원글에는 이전에는 자살 유사행동으로 심각하게 다뤄졌던 손목 등의 자해가 최근의 중학생들 사이에서 특별한 놀이나, 자아 찾기의 일종으로 시작되며 유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무거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근에 멀리 찾아보지 않아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서 자해관련된 내용은 쉽게 접할 수가 있다.

자해나 자해글귀라는 단어에 수만 개의 게시물이 태그되어 있고, 누구나 제한 없이 접근이 가능하다.

이를 읽어보면 타인에게 한 번도 이해받지 못하고, 공허하다는 아이, 죽을 용기가 없고 그렇다고 살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해를 반복한다는 고독하고 상처받은 어린 마음들의 절규가 곳곳에 쓰여 있다.

 

사진_unsplash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최근에 자해로 인하여 병원을 찾는 나이가 점차 어려져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늘어났고, 자해의 도구나 방법도 점차 다양하고 더 큰 손상을 입히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매체에서나 주변에서 자해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자해의 위험성이나 심각성에 대한 판단은 부재한 채로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고 만성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SNS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필요한 소통을 주고받는 과정은 치유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SNS의 순기능에 반해서 현재 SNS에서 공유되고 있는 자해 사진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선혈이 낭자한 자해 후의 인증사진을 포함하여, 자해도구에 대한 상세한 언급, 자해의 방법을 묻거나 미화하는 글, 자해를 권유하거나 동반자살을 위한 모임을 언급하는 글 등이 여과 없이 청소년들에게 노출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글들은 신고하여도, 현재로서는 규제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이 미비한 것을 이유로 제한이 불가능하다.

 

자해는 그 자체로 개입해야 할 정신과적 응급상황이며, 지나가는 유행이나, 성장통처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좋아지는 성격의 것이 절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가정, 학교에서의 아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중재, 치료로 이어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여러 SNS 매체는 이에 대한 관련 법규 미비를 이유로 자해 관련 콘텐츠를 양산해내고 있다. 최근에 한 신문에서 청소년들의 자해가 ‘자해스웨그’로 자기 과시적인 의미로 SNS에서 소비되며, 아이들 스스로도 자해를 훈장처럼 여긴다는 기사가 실린 바 있다.

당시 그 기사의 가장 높은 공감을 받은 글은 ‘나는 자해를 죽을 만큼 괴로워서 하는데, 자해스웨그라니 어처구니없다’라는 것이었다.

자해를 ‘관심받기 위한 행동’이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결코 아니며, 그 자체로 온전히 이해받게 될 때, 이 불길은 멈추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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