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나를 태우는 또 다른 나 (26)

[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신영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회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불안은 인간관계 등의 사회생활에서 발생한다. 직장은 상하 관계가 뚜렷하며 생계와 관련되어 우리에게 불안과 긴장을 가져오기 충분한 환경이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에게 사회적 불안, 불안에서 파생된 정신질환이 발견된다.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의 경우, 직장에서 큰 불안과 스트레스를 받고 퇴사를 결심하기도 한다. 인간관계, 적성, 업무 등등. 어떠한 부분이 신입사원에게 불안을 일으키는 것일까?

 

신입사원의 스트레스

‘신입사원이 스트레스가 많다고? 좋은 회사 들어가서 무슨 스트레스가 있어.’ 이제 막 회사에 들어왔거나, 일에 적응하기 시작한 신입사원을 두고 이렇게 이처럼 말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신입은 원래 힘든 것이다. 왜일까?

신입은 말 그대로 직장에 ‘처음 들어온 사람’을 뜻한다. 간단한 일이라도 신입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며 엄청난 변화다. 변화는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내원하는 직장인 환자가 일이 힘들다고 하면, 이렇게 농담하곤 한다. ‘일은 원래 힘든 거예요. 힘들어서 월급 주는 거예요. 문제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고 새로운 문화를 마주해야 하는 거죠.’

경험해본 적 없는 일은 예측하기 어렵다. 인간관계와 업무 등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는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금세 적응하고 일을 술술 해내면 좋겠지만, 머릿속에 ‘적응이 더딘 것 같아.’, ‘내가 일을 잘 못 하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떨까? 이러한 생각은 신입을 더욱더 긴장하게 만든다. 온종일 긴장하고 있으니 집에 도착하면 금세 파김치가 된다. 잠을 잘 못 자거나 불안하고, 소화가 잘 안 되기도 한다. 위장 운동은 뇌에서 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과 긴장이 높아지면 소화 기능이 떨어진다. 또한 긴장이 높아지면 집중력이 떨어져 실수가 잦아진다.

 

신입사원의 이른 퇴사 결정

신입은 원래 힘든 것이 맞다. 그리고 모르는 게 정상이 맞다. 우리는 모른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질문을 잘 던지지 않는다. 이는 실수를 불러오고, 실수는 괴로움으로 연결되며 악순환이 반복된다. 신입은 모르는 게 정상이 맞으니, 쿨하게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너무 빨리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과하게 업무를 하게 되어 판단력이 흐려진다. 불안하고 긴장될수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원래 어떤 스타일인지 생각하고 스스로 시간적인 여유를 주어야 한다.

종종 너무 빠른 퇴사를 한 환자들을 만나곤 한다. 이유를 물으면 적성에 맞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고 대답한다. 사실일까? 정말 그 일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인지 아닌지 알고 들어간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작’이다. 시작은 곧 새로운 경험에 대한 적응을 말한다. 익숙해지면 불안은 저절로 줄어든다. 처음에는 100의 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익숙해질수록 90, 80으로 불안이 줄어든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출이 중요하다. 새로운 환경에 지속해서 노출된다면, 그 환경은 곧 ‘새로운’ 환경이 아니라 ‘익숙한’, ‘적응된’ 환경으로 자리 잡는다. 불편하고 긴장되고 불안함을 못 견디고 나오는 것은 자신에게 불안을 극복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시작의 기회 자체가 박탈되어버리는 것이다. 일단은 신중하게 선택하되,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익숙해질 때까지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익숙해지고 안정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길이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퇴직하면 된다. 우리에게는 시작의 기회와 다른 선택지가 열려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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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인디언 부족의 성인식

신입사원이 마주하는 스트레스와 불안은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걸까?’, ‘정말 내가 이걸 잘 선택한 걸까?’라는 고민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선택에 의심을 품으며 불안에 빠지는 것이다. 이 같은 고민을 하는 이에게, 현명한 인디언 부족의 성인식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인디언 부족은 성인이 되는 아이들을 불러 옥수수밭 앞에 일렬로 세운다. 한 명씩 쭉 줄을 서서 출발하여, 끝으로 나오는 것이 성인식이다. 아이들에게는 숙제가 주어진다. 옥수수밭을 지나는 동안 가장 크고 잘 여문 옥수수 하나를 따서 나오는 것이다. 갔던 길을 돌아갈 수는 없으며, 한 개를 따면 옥수수밭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무엇을 의미할까? 옥수수밭을 지나고 있다고 하자. 백 미터 쯤 걸었을 때 커 보이는 옥수수가 보인다. 우리는 이 옥수수를 따야 할지, 더 큰 게 있을 테니 기다릴지 고민한다. 만약 옥수수를 따면 ‘아 바로 뒤에 더 큰 게 있었는데.’ 하며 아쉬워할 수 있다. 반대로 따지 않는다면 ‘아까워라, 그 옥수수가 가장 큰 거였는데.’ 하면서 후회할 것이다.

 

최고의 선택과 최선의 선택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며 살아간다. 내가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해서,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아서, 같은 이유로 후회의 원인을 돌린다. 후회에는 원망이 붙으며, 자책이 그 뒤를 따른다. 살아오면서 우리가 따온 옥수수를 생각해보자. 그 옥수수가 옥수수밭 전체에서 가장 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우리는 이미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선택할 때는 자기 자신이 지닌 경험과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한다. 이는 절대 최고의 선택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뿐이다.

처음부터 최고의 선택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한 선택을 최선의 선택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어가도록 노력할 수 있다.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무언가 선택할 때는 다른 무언가를 버렸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본인의 선택을 믿고 본인에게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어보자. 살다 보면 나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때가 많을 것이다. 그때는 차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최선이든 차선이든 ‘나의 선택’을 믿고 그것이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신영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원 박사
미네소타대학 연구조교수,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대한 신경 정신의학회 중독특임이사
보건복지부 및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국민권익위원장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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