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이솝 우화 (4)
[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 개구리와 황소
개구리 가족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맨 앞에 선 엄마 개구리를 따라 새끼 개구리들이 줄지어 걸었습니다. 한참 걷다가 길에서 커다란 황소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생전 처음 황소를 목격한 새끼 개구리들은 엄청난 크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막내 개구리가 말했습니다.
“황소가 대단하긴 하지만, 우리 엄마도 마음만 먹으면 저 정도로 커질 수 있어.”
막내의 말에 새끼 개구리들의 시선이 일제히 엄마 개구리에게 쏠렸습니다.
‘막내가 뭘 몰라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어떻게 개구리가 황소만 해질 수 있나?’
다들 막내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엄마 개구리의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죠.
엄마 개구리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막내 개구리를 실망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얘들아, 막내 말이 맞아. 개구리에게 배를 부풀리는 정도야 아주 쉬운 일이지. 단지 나는 지금의 크기가 좋아서 이대로 있었을 뿐이야. 너희들이 원한다면 황소만큼 커질 수 있어.”
“와, 우리 엄마 최고다!”
새끼 개구리들은 일제히 환호했습니다. 엄마 개구리는 기분이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자, 이 정도면 황소만 하지?”
엄마 개구리는 있는 힘껏 공기를 들이마셔 배를 부풀게 한 후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오~ 굉장해요. 그렇지만 황소만 해지려면 아직 멀었어요.”
엄마 개구리는 죽을힘을 다해 공기를 들이마셔 다시 한번 배를 부풀렸습니다.
“어때? 이제 황소만 해졌지?”
“엄마 배가 어마어마하게 커졌지만, 황소에 비하면 아직 작아요.”
새끼 개구리들의 성화에 엄마 개구리는 거듭해서 공기를 들이마시며 배를 부풀렸습니다.
“자…… 어때…….”
“엄마, 아직…….”
엄마 개구리는 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많은 공기를 들이마셨습니다. 하지만 배가 작아질까 봐 숨을 내쉴 수는 없었습니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온몸에 기운이 빠졌습니다.
“펑!”
엄마를 응원하던 새끼 개구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엄청난 소리가 난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가 죽어 있었습니다. 배가 터져 버린 것입니다. 응원이 통곡으로 바뀌었지만, 죽은 엄마 개구리는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초원에 “개골개골” 소리가 넘쳐났습니다.
우화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새끼 개구리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엄마 개구리의 눈물겨운 모성애는 한편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으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개구리가 황소만 해지려 했다는 것은 용기라기보다는 만용에 가깝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을 망상(妄想, Delusion)이라고 합니다. 상황이나 사태를 잘못 해석해서 갖게 된 지각이나 경험을 두루 포함합니다. 자신이 신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거나 일면식도 없는 유명인과 자신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판단이나 확신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망상은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점과 감정으로 뒷받침된 주관적 확신을 근거로 과하게 고집을 부린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망상은 형식과 방향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눠집니다. 그중 과대망상(Delusion of Grandeur)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실제보다 터무니없이 과장한 다음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철석같이 믿는 것입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자신의 지위나 재산이나 능력이나 용모나 혈통 등이 매우 특별한 것처럼 부풀려서 사실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증상입니다.
‘지금은 내가 실업자 신세지만, 머지않아 세상을 놀라게 할 위대한 인물이 될 거야.’
‘아무도 모르지만, 내게는 슈퍼맨 이상 가는 초능력이 있어. 곧 사용할 때가 올 거야.’
‘남들은 무일푼인 줄 알지만, 사실 나는 백만장자라고. 통장에 엄청난 돈이 있다니까.’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헛된 믿음을 가지면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 개구리는 자신이 황소처럼 커질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새끼 개구리들의 기대와 응원을 받으며 ‘그까짓 것 왜 못해?’,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하고 한껏 부풀려 생각하게 됩니다. 과대망상에 빠진 것이죠. 그런 다음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깁니다. 배에 실컷 공기를 불어 넣으면 몸집이 커져서 황소만큼 거대한 몸집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겁니다.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과대망상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이처럼 비극적인 일을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은 자신의 열등감, 패배감, 불안감 등을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보상받기 위해 현실을 왜곡시키고 그것을 강하게 믿게 되면서 결국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죠. 정당한 노력과 건강한 방법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면 힘든 현실이 발전의 촉매로 작용하겠지만, 비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이를 회피하고 부인하려 하면 잘못된 믿음, 즉 과대망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자학이나 자기비하도 문제가 될 수 있으나 과대망상은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예상치 않은 피해를 줄 우려가 있습니다.
예전에 치료했던 환자 중에 이런 분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식사할 때면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마당발 행세를 했습니다.
“제가 대통령하고 잘 알아요.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 살았거든요. 아주 친했어요.”
“어제 그 가수랑 저녁 먹었습니다. 요즘 텔레비전만 틀면 그 사람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그 축구선수 말이죠? 제가 잘 아는 친한 동생이에요.”
“안 그래도 제가 검찰총장에게 전화했었어요. 개인적으로 많은 조언을 해주는 사이죠.”
정관계, 경제계, 문화예술계, 체육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며, 같이 밥 한번 먹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말만 듣고 있으면 그의 나이와 학벌과 직업이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전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한 누구도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 모두와 친하다는 건 그만의 과대망상이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 모두를 잘 알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과대망상을 치료하려면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현실을 직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평소 현실 감각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마음의 문제인 것이죠. 고민과 걱정은 적정한 선에서 멈춰야 하며, 매사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적당한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자만심은 경계해야 합니다.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 혹은 동료일 경우 이를 지나치게 나무라거나 야단쳐서 고쳐보겠다고 나서는 건 위험합니다. 그가 과대망상에 빠지기까지 겪어야 했던 쓰라린 열등감, 깊은 패배감, 힘겨웠던 불안감 등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진정한 공감과 위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가장 힘들고 괴로운 건 환자 본인입니다.
다시 우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새끼 개구리들이 엄마 개구리를 보며 환호합니다.
“와, 우리 엄마 최고다!”
이때 엄마 개구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유머로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어때? 이 정도면 황소는 안 돼도 송아지만큼은 되지? 엄마 멋지지 않니? 후후!”
이쯤에서 그쳤더라도 새끼 개구리들은 엄마의 용기와 능력에 박수를 보냈을 겁니다.
엄마 개구리가 과대망상에 빠졌을 때 냉철한 새끼 개구리가 이를 말렸더라면 어땠을까요?
“엄마, 이제 그만해도 돼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엄마는 황소 못지않게 커요.”
비극은 과대망상에 빠진 엄마 개구리와 이를 부추긴 새끼 개구리들의 합작품이었습니다.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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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매우 극단적으로 치우치시는듯해요
어떤해석이든 경험자에게는 진실일것이고
비경험자에게는 거짓으로보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