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이솝 우화 (2)
[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강이나 바다에서 경주하는 건 어때? - 토끼와 거북이
자존심 센 거북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인내심도 대단했고 포기를 모르는 성격이었죠. 그는 수많은 동물 중에 거북이가 제일 느리다는 편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달리기 연습을 하다 보면 자기보다 더 늦게 달리는 동물이 눈에 띌 때도 있었거든요. 그 동물이 매번 달랐기에 누구라고 콕 짚어 말할 순 없었지만요.
어느 날 거북이는 중대한 결심을 했습니다. 거북이가 세상에서 제일 느리다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토끼와 달리기 경주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토끼는 자타공인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 중 하나였으니 그런 토끼와 경주해서 이긴다면 그토록 소망하던 거북이에 관한 편견을 깰 수 있었으니까요.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한 셈이었습니다.
“야, 토끼야! 우리 날 정해서 달리기 시합 한 번 하자. 누가 빠른지 겨뤄보자.”
토끼는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거북이가 경주하자고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더위를 먹거나 충격을 받아 머리가 이상하게 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자신과 경주해서 이긴 동물이 없다는 건 상식이었습니다.
토끼는 가당치도 않은 거북이의 제안을 무시했습니다.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하더라도 자신이 거북이와 경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기는 건 당연지사였기에 거북이보다 빨리 달렸다고 해서 생색낼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만에 하나, 그럴 리는 없지만, 정말로 만에 하나 자신이 거북이에게 지는 일이 벌어진다면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을 겁니다. 하도 창피해서 동물계를 떠나 바닷속으로 숨어버리거나 공중으로 사라져야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거북이의 요청은 집요했습니다. 매일같이 찾아와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정말 너 때문에 못 살겠다. 그래, 하자 해. 경주하자고!”
토끼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거북이와 토끼의 희한한 경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워낙 이상한 경주였기에 숲 속에 있는 거의 모든 동물이 시합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숲 속이 시끌벅적했습니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토끼는 쏜살처럼 달려 나갔습니다. 거북이는 혼신으로 뛰었지만 앞서가는 토끼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한참 달리던 토끼는 거북이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지자 심심해졌습니다. 이런 시시한 경주를 왜 하나 싶었던 거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나무 아래 누워 한숨 푹 자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도 거북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토끼는 맛있는 풀로 허기를 채운 뒤 다른 동물들과 어울려 수다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마침 그중 예쁜 암토끼도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재능과 입담을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습니다. 거북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느린 걸음을 재촉했지요. 마침내 결승점이 눈앞에 보였습니다. 너무 지체했다는 걸 깨달은 토끼가 전속력으로 내달렸지만, 이미 거북이는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동물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장 느린 거북이가 제일 빠른 토끼와의 경주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유치원생도 다 아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도 자만하고 나태하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얼마든지 뒤처지고 패배할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주는 우화죠. 비록 여건이나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꿈과 의지를 갖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교훈도 담겨 있습니다. 토끼가 달리기를 잘하는 건 본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태생적으로 주어진 능력입니다. 거북이가 느린 것 또한 본인의 잘못이거나 게으른 탓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주어진 능력에 의해 자신의 삶과 운명이 결정된다면 애써 노력하고 땀 흘리며 도전을 거듭하면서 살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 우화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애초부터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란 공정한 경쟁일 수가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달리기를 했다면 토끼는 백전백승이고 거북이는 백전백패였을 테니까요. 거북이는 죽었다 깨나도 토끼를 이길 수 없습니다. 토끼가 경주 중 딴짓을 하고 자만과 나태에 빠져 자신이 시합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을 때라야만 겨우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공정한 경쟁이라면 토끼는 토끼끼리, 거북이는 거북이끼리 경주해야 마땅합니다. 만약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한다면 둘의 신체 조건이나 평균 속도 등을 고려해 어떤 공정한 장치를 마련한 뒤에 경주해야 합니다. 우화에서처럼 아무런 공정한 장치 없이 같은 선에서 출발하고 같은 결승선이 주어진다면 불공정 경쟁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공정입니다.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내가 토끼로 혹은 거북이로 태어난 것까지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공정한 장치가 전혀 없는 상태로 우화처럼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한다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겁니다. 대학입시나 기업체 입사, 내 집 마련이나 자녀 출산 등 삶의 요소요소에서 금수저와 흙수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기 어렵습니다. 금수저는 날 때부터 특정 계급, 화려한 가문, 천부적 재능, 엄청난 재산 등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흙수저는 이런 게 하나도 없이 태어난 사람들이고요. 토끼와 거북이인 셈이죠. 흙수저가 자수성가해서 금수저보다 나은 삶을 살려면, 즉 경주에서 이기려면 금수저의 자만과 나태 또는 타락과 자멸에만 기대서는 안 됩니다. 만약 금수저가 우화의 교훈처럼 자만과 나태에 빠지지 않고 성실히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면 흙수저는 영원히 금수저를 따라잡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적 제도적 다양한 장치들이 필요한 겁니다. 적어도 출발선에 섰을 때 경주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구나 공정하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결승선에 도달할 가능성을 가슴에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병원을 방문한 환자들과 상담하다 보면 자신이 이솝 우화에 나오는 거북이 같다며 한탄하는 사람을 종종 봅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워낙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자신이 타고난 재능조차 발휘하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하소연입니다. 그 와중에도 어쩌든지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몸도 마음도 황폐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우화 속 거북이처럼 토끼를 따돌리고 결승선을 먼저 통과한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토로합니다. 워낙 애절한 사연들이라 듣기만 해도 안타까운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는 서로 자신을 투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투사(投射, Projection)란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태도 등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현상을 가리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같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림으로써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것이죠. 토끼는 거북이를 보면서 무능력하고 게으른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거북이를 보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능력하고 게으른 면모를 보게 됩니다. 그 순간 토끼는 거북이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죠.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하게끔 궁지로 몰아넣고 싶어집니다. 거북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끼처럼 빠르고 민첩하지 못한 자신을 보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토끼와 똑같은 조건으로 경주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자체가 비이성적입니다. 거북이는 어떻게 해서든 토끼를 이겨보려는 영웅심리의 소유자이자 현실을 망각한 몽상가처럼 보입니다.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토끼도 거북이도 다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그걸 투사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토끼는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패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치욕과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거북이 역시 죽을 만큼 힘들었던 경주를 통해 제대로 된 경주였다면 도저히 토끼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 흙수저가 보기에 금수저는 구름 속 세상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금수저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고 싶은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같은 감정들이 있습니다. 흙수저 또한 고단함과 열등감과 패배감 속에 짓눌려 살아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성취와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저는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당신은 토끼인가요? 아니면 거북이인가요?
당신이 토끼라면 거북이와 경주하기 전에 이렇게 제안하는 건 어떨까요?
“공정한 경주를 위해 나는 십 킬로미터를 달릴 테니 너는 백 미터만 달리도록 해.”
당신이 거북이라면 토끼와 경주하기 전에 이렇게 제안하는 건 어떨까요?
“출발선과 결승선은 똑같이 하되 들판이 아닌 강이나 바다에서 경주하는 건 어때?”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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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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