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직장이라는 공간에 있으면 어디선가 드문드문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물론 그 안에는 나의 한숨도 포함되어 있다. 마치 전염되는 것처럼 한숨은 또 다른 한숨을 끌고 온다. 한숨은 뱉어내는 사람이나 주위에 있는 사람이나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당사자는 별 의미 없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것임에도, 주위에 있는 사람은 ‘얘가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고 눈치를 보게 되니 말이다.
직장뿐만이 아니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한숨을 쉬었다가 어른에게 혼나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한숨은 그 사소한 행위로 분위기를 매캐하게 만든다. 자신이 한숨을 쉰다는 걸 의식하면 가슴이 답답해져 더 자주 한숨을 쉬게 된다는 이도 적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인물들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푹푹 내쉰다. 그때, 시청자가 주인공의 기분에 쉽게 공감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한숨은 안도하거나 후련할 때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긍정보다는 부정의 반응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 때 왜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일까?
오슬로 대학의 Teigen, K.H. 가 이에 대해 몇 가지 실험을 진행하였다.
심리학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리서치에서, 자신이 내쉬는 한숨의 의미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한숨은 의사소통의 영역보다 혼자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지각했다. 이때, 한숨을 ‘포기(Giving up)’의 의미로 여기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무료함, 그리움, 피곤함 순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는 의대생을 대상으로 4가지 상황의 지문을 주고(카페, 전화, 공원, 편지), 각각 한숨이 어떤 감정을 의미하는지 리서치하였다. 상황에 따라 한숨에서 느껴지는 감정 순은 이러하다.
1. 카페테리아에 함께 앉아있는 누군가가 한숨을 쉬는 상황: 슬픔, 포기, 피곤
2.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누군가 한숨을 쉬는 상황: 슬픔, 피곤 혹은 만족(동점)
3. 누군가 편지를 읽고 한숨을 쉬는 상황: 슬픔, 포기
4. 친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 친구가 한숨을 쉬는 상황: 포기, 슬픔, 지루함
즉, 타인이 쉬는 한숨은 대체로 슬픔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세 번째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풀 수 없는 문제를 주고,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한숨을 쉬는 구간과 횟수 등을 조사했다. 그 후 참가자에게 왜 한숨을 쉬었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참가자들은 평균 4번의 한숨을 쉬었으며, 한숨 외에도 ‘No!’, ‘Shit!’ 등의 감정적인 표현을 했다. 또한, 주로 자신의 전략이 통하지 않아 포기하고 다른 전략을 세워야 하는 사이에 한숨을 많이 쉬는 결과를 보였으며, 대부분은 좌절감을 표현하는 의미로 한숨을 쉬었다고 보고한다.
위 연구 결과, 자신의 한숨은 ‘포기와 좌절감’으로 인식하지만 타인의 한숨은 ‘슬픔’으로 지각한다는 차이점을 볼 수 있었다.
왜 같은 한숨인데도 자신과 타인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본인이 한숨을 쉬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무의식적으로, 별 의미 없이, 답답할 때, 마주한 난관에 별 뾰족한 수가 없을 때, 잠시 생각을 멈추고 머리를 환기하기 위해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실제로 Leuven대학의 Vlemincx의 연구에서는 한숨은 폐포를 경직된 상태로 유지하지 않고 간간이 한숨을 불어넣어 주면 폐포가 늘어나고, 이러한 부분이 안도감을 제공할 수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닌 타인이 한숨을 쉬는 걸 보면 슬퍼 보이거나 안쓰럽게 느껴지지 않는가. 사람은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생각할 뿐,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타인의 한숨을 볼 때는 다양한 이유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이입하여 안쓰러운 방향으로 보게 된다. ‘뭔가 잘 풀리고 있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이하이 ‘한숨’ 가사 일부)
‘한숨’이란 숨을 길게 몰아서 내쉬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한숨은 뱉기만 하면 끝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한숨을 내쉰 뒤에 우리는 다시 긴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한숨을 쉬는 것은 포기, 종료의 의미만 띄지 않는다. 다음 숨을 들이마시기 위해 즉, 현재를 인정하고 그 다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의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한숨을 쉰다는 것은 숨을 고르는 행위이며,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주는 위로일지도 모른다.
References
Teigen KH (2008). Is a sigh "just a sigh"? Sighs as emotional signals and responses to a difficult task. Scandinavian journal of psychology, 49 (1), 49-57 PMID: 18190402
Vlemincx E, Van Diest I, Lehrer PM, Aubert AE, & Van den Bergh O (2010). Respiratory variability preceding and following sighs: a resetter hypothesis. Biological psychology, 84 (1), 82-7 PMID: 19744538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