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제대로 알고 다스리기 (6)

*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신체적인 질병으로도 발현되는 스트레스. 팬데믹(Pandemic)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 깊숙이 침투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알고 다스릴 수 있도록 새로운 대담을 시작합니다. 대담은 대한정신건강재단 정정엽 마음소통센터장과 영남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명상의학회 이사인 구본훈 선생님이 함께했습니다. 

 

정정엽: 앞서 스트레스에 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실제로 스트레스받는 일이 일어났을 때, 바라만 보고 있기가 힘들 것 같아요.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고 그냥 있으라는 말은 삶을 회피하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요.

구본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저는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정엽: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냥 바라만 보는 게 낫다는 건가요?

구본훈: 스트레스받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포기와는 전혀 달라요. 보통 우리가 선택하는 방식은 피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괴롭기 때문에 아예 받지 않기 위해 벗어나고 피하고 싶은 거죠. 예를 들어 앞에서 직장 상사,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직장 상사와 어머니 자체를 피하는 것과 같이요. 대상을 피할 수 없으면 수동 공격적인 방어를 하죠. 어머니가 청소해라, 하면 “예”하고 대답하고 안 한다든지, 그 상황을 회피한다든지요. 문제는 이렇게 회피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바뀌거나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위에서 말했듯, 제가 말하는 ‘바라보기’ 방식이 “포기해라”, “어쩔 수 없으니 스트레스를 그냥 내버려 두라”는 아니에요. ‘포기’는 말 그대로 지는 것이고 굴복해서 거기에 끌려가는 거잖아요. 어머니의 지시에 포기하게 되면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거나, 아니면 끌려가지 않더라고 수동 공격적으로 반항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원초적인 갈등은 계속되고, 고통도 반복될 수밖에 없겠죠. 제가 말하는 ‘바라만 보라’는 말은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것과 달리 말 그대로 지켜보라는 겁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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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엽: 그렇다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좋은 영향이 될 수 있나요?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구본훈: 지켜보는 건 포기하는 것도, 회피하는 것도 아니에요. 어머니와의 갈등 문제를 포기하게 되면 ‘아 어머니는 이런 사람이니까 어머니 말에 따라야지’라는 생각으로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되겠죠. 하지만 바라본다는 건 어머니에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내 감정이 이렇게 되는구나’, ‘열이 받는구나’, ‘화가 나는구나’ 이런 것들을 아는 거예요. 우선 알게 되면 그런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거리가 생겨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점점 그 후에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관한 선택의 기회가 커지는 거죠.

그전에는 단순히 감정 속에 있다 보니까 단순하게 피하거나 싸우거나 그대로 어머니 말에 끌려가거나 이런 선택밖에 할 수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내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원하는 게 뭘까?’, ‘어머니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걸까?’, ‘어머니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걸까?’, ‘내가 정말 원하고 좋아하는 건 뭘까?’를 알게 되면서 다양한 해결법에 접근할 수 있어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아무도 알 수 없거든요. 본인이 원하는 게 독립인지, 관계 개선인지도요. 이전에는 감정적 대처에 기울어져 끊임없이 갈등이 커졌다면, 이제는 스스로 객관적으로 보게 되며 감정적인 대처를 덜 하게 되겠죠. 그러면 상대에 대한 피드백 또한 달라집니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점차 좋아질 여지가 있고요.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바라만 보는 것도 맞지만 포기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정정엽: ‘지켜본다’ 라거나 ‘바라본다’라는 태도를 생각했을 때, 어차피 고통스럽다면 “굳이 내가 이 삶을 영위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해석을 잘못한 경우예요.

구본훈: 네. 그건 오히려 포기와 같은 이야기죠. 염세주의에 빠지는 거고요. 예를 들어 불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 진리 중 하나가 “삶은 고통”이라는 겁니다. 그걸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염세주의로 빠지는 거예요. 삶은 고통인데 왜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야 하는가,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죠. 스스로 더 괴롭게 만드는 거예요. ‘삶이란 힘든 것’ 임을 받아들인다는 건 염세주의적으로 ‘아휴 살아서 뭐 하겠어 어차피 고통인데’라는 의미가 아니라, 괴로움을 줄이자는 겁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괴롭고 그래서 피하고 없애려고 저항하다 보면 더 큰 괴로움이 생기니까요.

 

정정엽: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으로 ‘명상’을 제시해주시기도 하셨잖아요? 명상을 하면 뭐가 바뀔까요?

구본훈: 명상을 하다 보면 저 같은 경우 숨 쉬고 있는 것 자체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호흡을 의식하지 않잖아요. 의식하지도 않고 24시간, 1년, 365일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옛날에 일이 굉장히 많고 바쁠 때, 집에 들어가서도 일을 해야 하면 짜증이 났어요. 보통 그런 상황에서 모두 짜증이 나죠. 그런데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살아가는 게 힘들지만 그전에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행복이나 즐거움을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바쁜 일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줄고, 그에 따른 미세한 고민도 같이 줄어드니까 일상의 순간들이 조금 더 즐거워지는 거예요. 본인이 스스로에 관한 생각이나 고통,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저항하는 것들을 줄이고 나면 오히려 일상의 평범한 부분들이 즐겁고 재밌는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명상 체험을 통해 조금씩 의미를 얻는 건 머리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연습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수영을 잘하고 싶은데 수영을 배우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과 같이요.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들 또한 유튜브를 보고 기사를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지요. 일상생활에서 조금씩 적응하고 체험하면 됩니다. 직접 체험하며 바꾸어나간다면 분명한 변화가 생길 거예요.

 

구본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영남대병원 교수
국립부곡정신병원 및 울산기독병원 공중보건의사
시몬병원 정신과 과장 역임, 영남대학교병원 정신과 전임의 및 임상교수
미국 UCSD 불안장애연구소 방문교수 (2012.8.~2013.7.)
미국 샌디에고 정신분석연구소 정신분석프로그램 연수 (2012.8.~2013.7.)
미국 UCSD Center for mindfulness MBCT & MBSR 과정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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