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사연)

얼마 전 중소기업에 입사한 20대 청년입니다. 사실 합격하리라 생각도 못 했고, 간절히 원하던 회사도 아닙니다. 그래도 일을 해야 뭐가 달라지겠지라고 입사를 결정하니 지인들은 괜찮겠냐고, 너무 성급히 입사 결정한 거 아니냐고 하네요. 

아니나 다를까 입사한 지 한 달째인데 도무지 업무에 적응도 안 되고 스트레스 때문에 매일 퇴사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만두자니 취업도 힘든 시기에 주변에서 더 말릴 것 같고, 못 버티고 나가는 게 너무 나약한 것 같아서 망설이게 됩니다. 아무 선택도 못하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답변)

사연자님, 안녕하세요. 서대문봄 정신과 이호선입니다. 마음우체국에 보내주신 사연 잘 읽어보았습니다. 

간절히 원하던 회사가 아니고, 차선으로 덜컥 들어가게 된 회사라서 불만족감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셨겠네요.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벌써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일어나면, 아무래도 업무에 집중도 어려울 테니 성과를 내서 성취감을 느끼기도 어려울 겁니다.

 

먼저. 사연자님! 퇴사는 언제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당장 퇴사해야 하는 이유와 지금 퇴사하지 않고 다녀야 하는 이유 둘 다 본인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심에 대해 파악해야 하지요.

욕심은 보통, 심리학적 용어인 ‘욕구’ ‘니즈’라고 많이 씁니다. 우리가 회사에 소속되면 개인의 욕구(needs)가 더 분명해집니다. 자신의 노동력을 대가로 욕구를 채우려는 심리가 생기기 때문이지요.

사람마다 채우고 싶어 하는 아주 다양한 욕구가 있는데요, 돈이 주는 금전적인 안정감은 기본이고, 그 외에도 정말 많습니다. 만일 내 능력치가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면 성장 욕구를 채워주는 직무를 바랄 거고요, 인정 욕구가 큰 분이라면 타인들의 평가나 칭찬 등이 중요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소통에 대한 욕구가 큰 분이면 수평적인 업무 환경을 원하게 되고, 반대로 혼자 일하거나 권위적인 하달식 업무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경험하겠지요.

 

대표적인 것들만 몇 가지 말씀드렸는데요, 여러분 생각보다 욕구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격려/지지      안정성       자기 보호     휴식/잠      따뜻함     즐거움/재미     인정

질서   자기표현   이해   평등   새로움     수용        운동      존중     개성    놀이

돌봄   명료함   성취     배움    스킨십/신체접촉     정직     건강     전문성/숙달

우정   신뢰      깨달음/통찰     여유      평화       독립/자립      성장      영감/영성

조화     혼자만의 시간   회복/치유       사랑       안전        감사         소속감

존재감(현존)    아름다움   기여       창조성       성실       애도    자율성/자유    

공감     협력       소통         확신/자신감      일관성/예측가능성

연결     유능감    친밀함  

엄청 많지요? 이 욕구들은, 우리가 채울 수 있는 장소도 대상도 상황도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사연자님이 현재 직장이 불만족스럽고 당장 퇴사하고 싶으면,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것인지 분석하셔야 합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먼저, 내 삶에서 포기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욕구 다섯 가지만 추려보세요. 그리고 이 중에서 직장에서 꼭 채우고 싶은 중요한 욕구 한 가지를 추려봅니다. 그러고 난 후 꼭 체크해야 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이 직장이 아닌 다른 직장에서만 채울 수 있는 욕구인가? 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빠른 시일 내에 옮기는 것이 좋겠죠. 당장 이직이 어렵다면, 적어도 현재 직장에서 그나마 채워지고 있는 욕구들을 떠올리고, 어느 시일까지 버틸 것인가, 디데이를 정합니다.  그리고 디데이를 목표로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으로 할 일은 다 한 겁니다. 어차피 퇴사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 더 이상 선택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단, 현재 입사한 지 한 달이라 누구라도 한창 적응 스트레스가 많을 때입니다. 그러니 본인 스스로 적응하고 소화할 최소한의 유예 기간은 주시는 게 필요합니다. 낯선 일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일정 시간이 반드시 걸립니다. 그런 시간조차 스스로에게 안 주고, 빨리 적응 못한다고 자책하거나, 나약하다고 평가하는 건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지름길입니다. 

두 번째로 내가 포기 못하는 중요한 욕구가 사실은 직장이 아니라 다른 영역, 이를테면 취미나, 다른 활동, 대인관계에서 채우는 것이 더 쉽고 빠른 욕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겁니다. 굳이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여기서 내 욕구를 다 채워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채워야 할 욕구를, 대인관계에서 30퍼센트, 취미활동에서 40퍼센트, 직장에서 30퍼센트 이렇게 여러 영역으로 나눠서 채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유능감’을 느끼는 것이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욕구라면? 당장 신입사원으로서는 채워지기 힘든 욕구가 되어서 스트레스가 되겠죠? 실수도 많고 업무에 시행착오를 겪는 신입이니까요. 그러니 직장 말고 다른 영역에서 유능감을 채워주는 게 더 쉽고 빠릅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보통 퇴사를 망설이는 이유는 퇴사하고 더 후회할까봐입니다. 물론 후회를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덜 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퇴사하는 선택의 바탕에, 사연자님에게 중요한 욕구들이 정리되어있으면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사연자님께서 자기 삶에서 중요한 욕구들을 명확히 정리하시고, 어디서 이를 채울 건지, 직장에서는 어떤 것만 기대하고 요구할지 그 선을 현실적으로 정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참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사연자님이 원하는 방향을 잘 고려하셔서 후회가 적은 선택을 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매번 감사합니다.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
    "너무 좋은 글이라는 걸 느끼고 담아갑니다. "
    "이런 글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