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다시 봄. – 봄의 속말은 ‘괜찮아, 다시 시작해.’
봄이 왔다. 양력 1월 1일의 결심을 애써 무시했던 우리는 음력 첫날에도 살짝 찔리지만 작은 목표만을 세워 둔 채 그저 그런 비슷한 날들을 살아간다. 괜찮지 않죠? 외출 시에 마스크는 잊지 않았는지, 어느 매장이든 올 때마다 찍으라는 큐알코드는 왜 그렇게 가까이 가야 찍히는지. 짜증 나고 답답한 삶이 계속된다. 언제까지인지도 모르는 채로.
괜찮지 않을 겁니다. 답답한 일상, 묵은 다짐, 나도 모르겠는 나의 마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어제의 나쁜 기억을 잊고자 노력하며, 내일의 행운과 불행을 미리 저울질하며 살아간다. 봄은 새 것 같다. 몇 년을 맞이했는데, 늘 새 것 같다. 새 공기가 들어오고, 햇살도 질과 양이 달라졌다. 우리는 봄을 늘 새 것인 것으로 삼으려 서로 약속이나 한 것 같다.
나는 봄이 늘 힘들었다. 그 빛의 밝아 오름이 무서웠다. 나도 같이 밝아져야만 할 것 같은 그 의무감이 무거웠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입지 못하는 옷들도, 붙잡고 있지만 점점 사라지는 겨울의 바람도 서운했다. 자꾸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니 지금은 무척이나 좋아져 있을 것 같을 테다. 나는 지금도 무섭고 두렵다. 무겁고 서운하다. 다만, 내게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올 테면 와봐라.’라는 마음을 먹은 것과 식물의 새싹을 보며 반성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지금 집에는 투과율이 좋은 얇고 하얀 커튼을 주 커튼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암막 블라인드를 사용하던 시절도 있었다. 24시간 중 지금이 언제인지 시계를 보지 않고 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튼튼했고 든든해졌다. 그런데 이사를 오면서 나는 잠을 자도, 식물들에게는 일정 빛을 주어야 했다. 그래서 희고 얇은 커튼으로 바꿨다.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집은 환해졌고, 나도 조금 달라졌다. 일찍 일어나야 했으니까.
늦은 새벽까지 잠을 헤매다가 해가 살짝 뜨는 시간이면 지쳐 잠에 들곤 했던 생활은 완전히 부서졌다. 지금은 낮잠이 필요할 때면 잠깐 안대를 끼곤 하는데, 그 잠도 두 시간을 넘어가지 않는다. 암막 커튼을 안대처럼 둘러쓰고 낮에도 죽은 듯이, 죽고 싶은 마음으로 억지로 잠을 청하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이다. 이제는 낮에 해에게서 받은 비타민D와 병원에서 받은 약을 양분 삼아 밤에 잠을 잔다. 아주 일찍 잠에 든다. 밤 열 시에는 꼼짝없이 침대에 붙어 있는다. 밤 열 시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려면, 많은 것들을 낮에 해 두어야 한다.
식물의 물은 이른 오전에 주는 것이 좋다. 낮에 주면 여름에는 물방울이 확대경 역할을 해서 잎이 타버릴 수도 있다. 너무 밤에 주면 식물도 하루 주기가 있는 친구들인데, 잠에 들 시간에 야식을 많이 먹어 좋을 것이 없다. 물론 나도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물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전날 물병에 받아 둔 침대 곁 수돗물을 들고 여기저기 헤매며 마른 아이들을 구해준다.
처음엔 그 시간이 참 낯설었는데, 이제는 은근히 즐기기도 한다. 요즘은 일어나자마자 내 물부터 충분히 먹고 기지개를 켜고, 여유롭게 물통을 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그리고 엄청난 참견을 한다. ‘넌 왜 여기에 피었니. 고달플 게다.’ ‘넌 참 착하구나 물을 이렇게나 안 줘도 잘 참아왔네, 미안.’ 하는 말들을 속으로 밖으로 번갈아가며 하곤 한다.
지난해에 바깥에 뒀던 식물들을 사실 나는 포기했다. 포대자루라도 둘러줬어야 이 추운 나라의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을 텐데…, 그 시기의 어둠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냥, 나 때문에‘, ‘나라도 살려고’ 포기했다. 겨울엔 본래 식물들이 아주 적은 양의 물 만을 뿌리에 남겨두고 그대로 멈춘다. 실내 식물 친구들도 조절해 줘야 한다. 그런데 물 한 번 준 적 없는 ‘바깥’ 식물들이 가끔 오는 눈을 녹여 먹고, 가끔 오는 비를 마시고, 살아냈다. 새싹이 움틀 자리를 보여줬다.
난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뭐든 나는 이게 문제다. 일이 일어나면 멈추고 본다. 그리고 가만히 관찰했고, ‘경이로움’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경이로웠다. 모든 게 새로 시작됐다. 나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봄의 해를 마음껏 맞이했다. 마침 공기도 좋은 날이었다.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믿을 것이다. 부족하고, 이기적인 나 일지라도 한 번의 기회를 다시 주는 계절, 다정하고 따스한 계절이 다시금 돌아왔다. 봄, 여러분 주변에도 크고 작은 경이로움이 함께 하길. 간절히 바라겠다.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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