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두 팔 벌려, 콩고
나에겐 콩고라는 식물이 있다. 콩고의 학명은 Philodendron 'Congo'이다. 필로덴드론류는 보통 브라질, 서인도제도를 원산으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고, 열대 아메리카에도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키우기 아주 까다로운 편은 아니다. 온대에 자라는 식물인데, 심지어 내한성도 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게 있는 콩고는 ‘레드 콩고’인데, 처음부터 중-대품으로 들였다. 레드 콩고는 새 잎이 아주 매혹적인 붉은빛을 띠고 있는데, 구엽이 되면서 초록색으로 변한다.
별생각 없이 들어간 식물 가게에 너무 멋진 붉은색을 보고 정말 별생각 없이 집에 들였다. 콩고가 얼마나 커질지 상상도 못 한 채. 정신 차리고 보니 콩고는 사방으로 잎을 내는 멋진 식물이었다. 잎 손바닥보다 커서 관엽식물이라 하기에 딱 알맞은 식물이다.
다만 내게 주어진 부동산이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콩고 잎이 하나하나 날 때마다 위쪽을 쳐다볼 줄로만 알았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가로로 눕는 것 아닌가? 사방으로 펼쳐진 콩고 잎은 정말 멋있었지만, 동시에 나는 발등에 불붙은 사람 마냥 속이 타 들어갔다. 식물을 콩고 하나 키우고 말 것이 아닌데, 공간을 너무 차지하는 식물을 골라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있는 것 팔을 벌린 아이 같은 식물, 콩고가 되시겠다.
나는 어릴 적부터 키가 무척 컸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미 중학생 평균 키를 넘어섰고, 고등학교 때도, 20대 초반에도 느리지만 키가 컸다. 그렇다고 2m가 넘는 장신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 길 바란다. 대체로 키가 큰 아이들은 2차 성징도 빨리 오기 마련인데, 가슴이 먼저 그 사실을 알렸다. 나는 내가 또래보다 키가 크다는 사실도 정말 이상하고 싫었다. 심지어 가슴이 커지는 것을 느낀 순간, ‘이건 정말 아니야!’라고 외치고 싶었다. 엄마 친구분이 선물해주신 브래지어를 받고 돌아갈 수 없는 길을 시작하는 것 같은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너무 큰 내가 싫고, 너무 빨리 자라는 내 마음도, 몸도 버거웠다.
콩고를 보고 브래지어 얘기까지 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너무 큰 콩고가 감당이 안된다는 느낌이 든 순간, 선물 받은 브래지어를 받아 든 내 손이 기억 저 편에서 떠올랐다.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되는 작은 화분, 회전하면서 올라오는 큰 잎들, 자꾸 잎을 치고 다니게 되는 작은 집. 처음엔 보고 또 봐도 우리 집 식물로는 아닌 것 같아서, 나눔을 보낼까, 팔아볼까 생각도 했다. 마음 한편에 저렇게 두 팔을 쫙 벌리고 누구든 안아줄 것처럼 서있는 식물을 보며, 과거의 내 한 순간이 떠올라버려서 어디도 못 보내게 돼 버렸다.
생각이 생각을 부르는 버릇은 타고나는 건가 보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으로 끝나야 하는데, 더 깊은 잡생각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의미부여도 마음대로 마구 한다. 콩고를 보고 내 어린 손이 떠오르고, 나를 두 팔 벌려 사랑해준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며, 나는 그것을 양분 삼아 비로소 자랄 수 있었다. 만약 내 인생에 그들이 없었다면, 난 커다란 결핍 속에서 괴로운 채 살아갔을 것이다.
때 마침 콩고 새 잎이 난다. 붉게 말린, 아직 펴지지 않은 새 잎을 보고 있자면 또 얼마나 예쁜 색을 내줄까 기대가 가득이다. 두 팔을 벌려 열심히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내가 빌린 품이 소중했음을 떠올리며 괜히 안 볼 것 같은 이 자리에 감사함을 남긴다. 나는 당신이 품어주고 나를 빛내 줘서 자랄 수 있었다고.
** 매주 2회 수, 금요일 글이 올라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