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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외로움이 너무 두려워서 이별을 견딜 수가 없어요
김준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6.13 06:12

[정신의학신문 : 정신과의사협동조합 김준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제가 가진 문제 때문에 고민 끝에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20대 초반, 여대생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의 가장 큰 문제는 타인과의 이별을 견딜 수가 없다는 거예요.

얼마 전 100일 정도 사귄 남자 친구가 ‘너무 집착한다’며 헤어지자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러면 ‘성격이 맞지 않는구나’ 생각하고 쿨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저는 그게 안 돼요.

이별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울며불며 휴대전화에다 사정을 하고 있더군요.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라고요.

그리 오래 사귀지도 않은 친구라, 지금 생각해보면 사정할 것 까진 아닌데, 그 순간 너무 무서웠어요.

 

제가 만났던 남자 친구들, 친한 친구들 모두 ‘집착’이라는 단어로 저를 표현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좀 심한 것 같긴 해요. 친한 친구나 남자 친구가 조금만 연락이 되지 않으면 너무 불안해져요.

그 순간에는 온갖 생각이 다 나요. 일부러 헤어지려고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인지, 이대로 관계가 끝나는 것인지. 이제 정말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는 것인지…

이런 제 모습에 사람들은 금세 질려하고 많이들 떠났어요. 그러면 다시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 합니다.

저도 제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평상시에는 무난한 성격이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쉽게 친해지는 편이거든요.

 

이런 제가 너무 싫어요. 다른 친구들을 보면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는데, 저는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싫어요. 외롭고 쓸쓸한 느낌이 정말 고통스럽거든요.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진_픽셀

 

A) 참 안타깝습니다. 외로움,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이 뿌리가 깊어 보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애인을 만나도, 친한 친구와 함께 있어도 관계에 대한 무의식적인 욕구가 충족되기가 어렵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이별 후에는 또 만남이 있을 것이라는 인간지사를 외면하고, 금세 다른 사람을 찾아야만 두려움이 가라앉는 패턴을 반복하고 계시네요.

 

유독 혼자 있는 것, 타인과 멀어지는 것, 연인과의 이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거부당하는 시그널을 감지하면,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짓거나, 화를 내고, 매달리기도 하죠. 혹은 오히려 자신이 '당하기 전에 먼저' 이별을 고하기도 합니다.

이별의 순간이 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반응이 너무 과도하고, 심지어 기존의 관계를 해칠 정도라면,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별, 헤어짐을 연상시키는 상황을 제외하면, 평상시에는 무난한 성격이라 하셨지만, 표면적으로는 외로움과 약간의 위축이 나타날 뿐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랑받고 싶은 외로운 아이가 지금도 사랑을 갈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자극하는 상황, 이를테면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받거나, 이별을 통보받는 순간에 감정이 폭발하는 거죠.

 

단순한 그 상황에 따른 반응이 아닌, 대부분의 인간관계에 있어 헤어짐을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은 성격적 특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격적 특성 (personality trait) 은 뿌리 깊은 문제입니다. 성격이라 함은, 자신, 타인, 이를 둘러싼 세상,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점은 한 번 고정되면 잘 바뀌지 않습니다. 덫에 걸려 있는 것과 같아요.

 

질문자님의 경우는 '버림받음의 덫, 정서적 박탈의 덫'에 걸려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버림받음의 덫>은, 내가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인간관계가 깨어지지는 않을지, 가까운 사람과 멀어지지는 않을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말합니다.

이 덫에 걸려 세상을 바라본다면, 자신도 모르게 관계를 맺고 친밀해지는 과정을 회피하게 됩니다.

질문자님께서 표면적으로는 타인과 잘 친해질 수 있어도, 더 깊은 관계로 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속내를 드러내면, ‘저 사람이 내 실체를 알고 나를 떠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여, 그저 적당한 선을 유지하려고 하지요.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려워집니다.

<정서적 박탈의 덫>이라는 것은, 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에게서 받는 사랑과 관심이, 언제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며, 진심으로 나를 공감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지속됨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의 덫 모두 어린 시절에 충족되지 못한 욕구에서 기원합니다. 어린 시절에 중요한 대상(특히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애정, 사랑, 안정감, 안전함의 느낌을 받지 못한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이 덫들이 현재의 삶에 큰 지장을 미칩니다.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던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죠.

사진_픽셀

덫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성장 과정부터 학습해 온 자신의 생각, 행동, 감정, 대인관계의 패턴은 한순간에 바뀌기는 참 어려워요.

그래도 변화를 위한 이정표를 설정하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1) 자신의 어린 시절의 덫의 기원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은 과거 수 십 년간의 경험이 쌓인 탓입니다.

마주 하고 싶지 않은 과거라도, 성격 특성의 기원을 알아보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심리치료를 할 때, 과거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죠.

어린 시절의 힘들었던 자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현재 자신에 대한 충분한 위로로 이어집니다.

 

2) 또한, 과거의 덫이 지금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있음을 인정하고 매 순간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는 ‘덫’이 자신을 자동 조종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신과의 대화는 단절된 채로, 말 그대로 ‘살던 대로 살아가는’ 상태라는 거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관계의 순간, 자신에게 떠오르는 생각, 감정, 기억이 무엇인지 잘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고, 울며불며 매달리던 과거의 행동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를 토대로 생각, 감정, 행동들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는 과정이죠.

그러면서 뿌리 깊은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두 방법 모두 혼자 힘으로 해내기는 참 힘이 듭니다. 정신건강의학과든, 상담센터든 든든한 치료자와 함께 치료를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 변화가 조금씩 나타날 겁니다.

질문자님의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시길 바랍니다.   

 

 

김준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pdco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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