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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내게 무언가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김준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6.08 04:54

[정신의학신문 : 김준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어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20대 대학생입니다. 제 삶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있어요. 이상하게도 늘 불행이 저를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 이유도 모르겠고, 벗어날 방법도 없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바로 알아듣지 못했어요. 흔히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표현하죠.

말을 듣자마자 반응하지 못하고, 한참 머뭇거리다 반응하곤 했어요.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놀림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죠.

학창 시절이 늘 괴로웠습니다. 아이들은 나와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하고, 조금만 입을 열면 ‘멍청이, 찌질이’로 불렀으니까요.

새 학년이 되어도, 긴장하고 위축된 탓에 아이들과 친해지기 힘들었어요. 나에게 큰 문제가 있으니 나를 언제 또 따돌릴지 몰랐으니까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도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은 늘 혼자였어요. 가족들도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몇 번 도와주려 하다가 결국 포기하더군요.

성인이 된 지금도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나와 몇 마디 해보곤 금세 등을 돌립니다. 이제는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만난 친구들도 없다시피 합니다.

 

집중력의 문제인가 해서 병원도 많이 다녔습니다. 혹 청력에 이상이 있나 해서 청력 검사도 수 차례 했었고요. 내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어 지능검사도 여러 곳에서 받았습니다.

결과는 다들 큰 이상이 없더군요. 그래도 안심이 되질 않습니다. 원인이 있고, 그것을 치료하기만 하면 내가 가진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 생각이 들어요.

무슨 검사를 더 해야 할까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질문자님의 긴 사연 잘 읽었습니다. 자신의 결함과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눈물겨운 과정이 참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우선 힘내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우선, 자신이 가진 결함의 실체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마 가능한 검사는 다 해본 것이 아닌가 싶네요. 어떤 검사는 두세 번도 하셨다고 하니까요.

아마 스스로도 문제의 실체를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 같네요. 그리고 그 결점을 찾으면, 치료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계실 겁니다.

물론, 수십 가지의 검사를 더 해서 조금이라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현 상태에서는 쉽지가 않을 겁니다. 비용이나 시간의 문제도 있을 거고요.

 

질문자님의 글만으로는 추측할 따름이지만, 아마 그 문제라는 것이 유형의 실체를 가지고 있거나,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성질의 대상이 아닌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현재 질문자님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타인과의 의사소통의 문제라기보다,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결함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관점의 문제>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결함이 있고, 큰 문제가 있다는 인식의 뿌리는 상당히 깊습니다.

성장과정에서 겪은 경험들(부모-친구들과의 관계에서의)이 점차 자라나 자신과,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을 만듭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서 자라난 관점은 내가 하는 생각, 느끼는 감정, 행동들에 큰 영향을 미쳐요.

이를테면, 결함에 초점을 둔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잘했던 것은 다 무시해버리고 내가 못했던 것들,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봤던 상황들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리고 질문자님의 학창 시절처럼 한없이 위축됩니다. 나에게 나타날 수 있는 희망찬 미래는 무시하고, 어두운 앞날만 떠올리게 만들죠.

 

부정적인 관점은, 여러 상황을 피하도록 만들었을 겁니다.

자신에게 결함이 있으니,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이라는 생각이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상황, 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피하지는 않았을까요.

즉, 지금 질문자님의 모습은, 과거 형성된 관점이 지속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겁니다.

관점이 생각, 느낌, 행동을 만들고, 자신도 모르게 모든 상황을 자신의 결점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_픽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자신의 현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포기와는 다릅니다.

과거의 자신의 삶, 그로 인해 생긴 '관점', 그리고 그 관점의 영향 등을 면밀히 살피고 이해할 수 있어야 자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안타까웠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애도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뒤죽박죽이 된 문제들의 뿌리를 점차 발견해나가는 과정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 좀 더 건강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 또한 생겨납니다.

현재의 문제 상황들에 대한 원인을 어떻게든 찾아보려 애쓰시지만, 이를 조금만 내려놓으시고 다른 곳을 바라볼 여유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여유도 결국 자신에 대한 통찰에서 조금씩 자라납니다.

자신의 과거를 반복적으로 되새기고 후회하는 행동이 지금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과거에 묶여 있는 삶이 현재의 자신에게 도움이 될까요?

자신의 현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현재'에 기반을 둔 건강한 행동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결함이 가득하다는 관점도, 삶의 경험에 의해 학습된 것이죠. 그러니 건강한 행동과 대처도 학습할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의 측면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함'에 초점을 맞춘 관점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매 순간 자신이 어떠한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지, 지금 내 마음은 어떠한지, 내 몸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피로 점철되었던 행동을 답습하지 말아야 하겠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자신이 겪었던 부정적인 상황, 그 순간의 감정, 생각 등 지엽적인 문제보다는,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았나'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그리고, 그 지점에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겁니다.

질문자님의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준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pdco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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