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중반 남성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얼마 전부터 생긴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상담을 받아봐야 할지 걱정되어서 문의드립니다.

저는 지금 IT 관련 기업에서 취직해서 5년차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외국계 기업이고, 보수나 조건도 꽤 좋아서 능력에 비해 과분하게 취직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회사에서도 큰 문제는 딱히 없이 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쯤 회사에서 한 번 크게 사고를 친 뒤로 회사에서 발표하거나 결재받는 등의 일을 맡게 될 때마다 너무 불안해서 견디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조금이라도 중요한 일을 맡아서 처리하게 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되거나 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뭔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발표를 시작해야 하는데 식은땀이 흐르면서 멍해지고 아예 머릿속에 비어버리는 거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래서 발표 자료를 준비하거나 결재받는 파일 등을 점검할 때도 예전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하려고 두 번, 세 번 자료를 확인하다 보니 업무 속도도 많이 느려지고, 스트레스도 더욱 심하게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올해 초쯤 쳤다는 사고는, 바이어들이 여럿 모인 아주 큰 회의에서 제가 맡은 프레젠테이션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었는데, ppt 파일을 잘못 저장해서, 절반도 다 못 만든 미완성본을 들고 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발표는 못했고, 구두로 대강 내용을 전달하려 했으나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서 어버버만 했었습니다. 이후 크게 질책을 받았는데 그 뒤로 더욱 이런 것들이 불안해진 것 같습니다. 그 뒤로는 다시 그런 사고가 난 일은 없지만 불안함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원래 평소에 좀 내성적이고 꼼꼼한 성격이긴 했지만, 그래도 전에는 큰 사고 없이 비교적 회사일도 잘 했고 친구관계도 다툼이나 문제는 없이 지내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된 게 너무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회사에서의 능률과 성과도 떨어지기 시작하니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회사에 내가 계속 있어도 되는 존재인지 싶은 생각도 들게 됩니다. 애초에 능력에 맞지 않는 회사를 들어왔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공황장애가 생긴 걸까요?

병원에 가봐야 할지, 상담을 받아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사진_픽셀

 

A) 네, 최근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계시군요. 공황장애가 아닐지, 병원에 가야 할지 걱정되신다고 이야기하실 정도로 말씀하신 최근의 불안이 질문자님을 상당히 많이 괴롭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최근의 불안이 그렇게 심하다고 하시니, 또 심지어 발표 전에는 머릿속이 멍해질 정도로 불안해진다고 하시니 약간의 공황 발작 증세를 보이고 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자님께서 글에 표현해주신 것만 가지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불안 발작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흐르거나 머리가 아프고, 혈관이 터지거나 심장이 멈춰서 죽을 것만 같은 공포와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러한 갑작스러운 불안은 공황 발작으로 나타나는 증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황발작이 있다고 하여 모두 공황장애로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질문자님 같은 경우에는 명확한 스트레스 사건 이후에 그것과 관련된 내용에서 발생하는 불안감들을 경험하고 계시고, 갑작스러운 공황발작의 반복이나 그 발작에 대한 두려움 등이 직접적인 고통의 근원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이후로 회의에서의 발표 실수 사건 이후로 생긴 발표나 평가에 대한 불안, 두려움 자체가 주된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비교적 회사일이나 사회관계에서 큰 문제없이 지내오던 질문자님께서 이번 발표 사건 이후로 왜 이렇게 심하게 불안을 겪게 되셨을지를 한번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올해 초의 사건이라는 것이 분명 당시로서는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당황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잘 넘어갔고 또 그 뒤로는 다시 예전처럼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에 질문자님께서 지금 겪고 계신 불안이 분명 과도한 부분이 있긴 하기 때문입니다.

 

짧은 질문글로 파악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지만, 답변을 드리고자 저희의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어쩌면 질문자님께서는 그 이전부터

"나는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떨어져."

"나는 실패했어. 나는 굴욕스러워."

"사람들은 실제의 나보다 나를 과대평가하는 면이 있어."

와 같은 무의식적인 불안이나 생각을 품고 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무의식적인 생각들은 위에 말씀드린 것과 같은 것들 말고도, 굉장히 다양하게 각기 다른 종류의 생각들로 굳어져서 사람들마다 마음속 깊이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정확하고 합리적인 현실에 대한 판단을 가리고 무조건 이런 생각들로 걸러서 판단하게 만드는 이런 생각들은 때로는 우리가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덫’처럼 작동하곤 합니다.

위에 예시로 말씀드린 바와 같은 덫들은 심하게 활성화되어서 매사에 언제나 그 덫에 매이게 될 경우, 사회 공포증이나 사회불안장애, 회피성 인격장애 등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님과 같은 경우에는 그동안 그래도 인격장애나 사회불안장애 등과 같은 모습을 보이진 않고 지내왔다고 하시니 마음속의 덫이 아주 커다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사진_픽셀

 

그러나 평소에는 마음속 깊이 숨어서 보이지 않던 덫은, 그 덫을 작동시킬만한, 정확한 스위치가 될 만한 사건이 크게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순간 다시 활발하게 작동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님께서 평소에는 실수를 하거나, 상사에게 비난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정말 실패한 사람인가" "나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은 올라왔더라도,

"아냐, 지금 실수는 누구나 조금씩 할 수 있는 거고, 나는 그래도 지금까지 비교적 잘해왔잖아"

하는 생각처럼 현실적인 상황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지만, 얼마 전 실제로 내가 크게 실패하고 비난을 받는 일이 생긴 뒤로는 그런 무의식적인 생각들이 더욱 강렬해졌고, 거기에 반박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신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속의 덫에 걸려 불안해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저희가 제안드릴 수 있는 해결책은 우선은 공황발작이 올 정도로 심한 불안이 있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회사생활이나 업무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우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보시는 것을 권유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렬한 불안과 공황은 초기에 스스로 조절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약물을 통한 조절을 시도해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말씀드린 ‘실패의 덫’이 질문자님을 옭아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지금 질문자님을 괴롭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생각들이 어떤 것인가를 차분히 정리해보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생각들 때문에 이렇게 불안해지고 있는지, 정말로 이것이 그렇게 불안해할 만한 상황인지를 되돌아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 ‘덫’이 작동하고 있다면 그것이 진짜 정확한 것인지, 아니면 뭔가 왜곡된 것인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지금 질문자님께서 처하신 상황이 어떠한지, 그동안 이루어온 성취들은 어땠는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어느 정도의 실패와 성취인지를 일목요연하게 적어서 정리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님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만한, 스스로의 성취와 재능들을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 덫이 왜 질문자님 무의식 깊은 곳에 새겨졌는지, 어떤 불안과 어떤 실패에서 자라난 덫인지, 또 그래서 이 덫이 그동안의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이번 회사 사건만이 아니라 또 어떤 사건들에서 되풀이되었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이러한 덫에 대한 대응책들도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지도 아래에서 천천히 시작해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내용들이 온라인 문답이라는 형식 때문에 아주 짧고 단편적인 내용들에 대한 답변만 드리다 보니 다소 무리하거나 포괄적인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질문자님께서 지금 겪고 계신 고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겠습니다. 모쪼록 빠른 호전과 문제 해결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언제든지 도움을 구하시면 최선을 다해 답변드리겠습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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