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대생 시절, 동기들과 함께 하던 농담이 있다.

 

“너 코끼리를 어떻게 냉장고에 넣는지 아냐?”

“그게 뭐야, 엄청 큰 냉장고를 만들면 되나?”

“병원에서 인턴을 데려와서 시키면 된대!”

 

사진_픽사베이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 누구도 이 말을 ‘농담’이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한다. 일주일에 144시간을 일했다. 일주일에 내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은 24시간뿐이었다. 나머지 144시간은, 밥을 먹던 중이든 밤에 잠을 자던 중이든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중이든 무조건 전화를 받아야 했고, 뛰어가야 했다. 그렇게 일해서 한 달에 받는 돈은 400만원을 넘지 않았다. 애인과 데이트? 일 년 동안 열 번 했으며, 그 중 절반은 병원을 산책하는 것이 전부였으며, 결국 헤어졌다. 의대 동기들도, 선배들도 모두 같은 삶을 살기에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이런 인턴 수련이 끝날 무렵에는, 다들 몸이 편한 전공에 끌리게 된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같이 정말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과는 정말 인기가 없다. 당장은 수련 과정이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레지던트 1년차는 인턴보다 더 힘들기 때문이다.

 

사진_픽사베이

 

외과계열 과가 가지고 있는 더 큰 문제는 전문의가 되고 나서다. 몇 시간씩 걸리는 개복 수술을 해봤자, 남는 돈이 없다. 정말 죽을 수 있는 환자를 수술하기 때문에, 수술에 실수가 없더라도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환자 보호자들은 소송을 걸고, 의사는 적게는 수 천 만원에서 많게는 몇 억을 배상하게 된다.

 

산부인과에 관심이 있다고 선배를 찾아갔던 날, 선배가 나를 말렸다. 의사 실수가 없어도 소송에 걸리면 보상을 해 줘야 하는 법이 생겼고, 십 년동안 번 돈을 한 번에 날리는 일도 있다면서. 모든 인턴들은 이런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외과계열 과의 지원율은 늘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이런 과에 지원하는 동기들은 ‘참의사’라고 불렸다. 세상 물정 모르는 동기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동시에 내가 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존경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16일.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이국종 교수와 세 시간이나 면담을 했으며, 그 결과 권역외상센터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 외과계 레지던트를 권역외상센터에서 수련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사진_픽사베이

 

“외과도 없는 집인데, 그 집을 털어서 도와준다고?”

 

외과 인력난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해결된 것인가. 혹시 이국종 교수가 있는 아주대학교 병원은 외과가 인력이 많아 이런 상황을 모르는 것인가. 하지만 2017년 아주대학교 병원 외과 지원률은 0%. 4명 정원에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아주대학교 병원 외상센터도 외과 레지던트를 빌려올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방안이 발표된 것인가. 이종국 교수가 정말 저런 대책을 요청했을까. 또, 국민은 정말 이런 방안을 원했을까.

 

“난 지금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고 있어.”

 

외과 레지던트이던 한 선배가 술에 취해 말했었다. 대학 병원에서는 외과에서 수익이 생기지 않으니, 인력을 추가로 뽑을 수 없다. 외과로는 수익을 낼 수 없으니, 개원할 수도 없다. 개원해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신규 레지던트가 지원하지 않는다. 신규 레지던트가 지원하지 않아서 인력은 더 없어진다. 없는 인력으로 밀려들어오는 환자를 수술하다 보면, 의료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다. 참의사이던 그 선배는 범법자가 되었고, 이후 보통 의사가 되었다.

 

이대목동병원 소아과 전공의 총 정원은 14명이지만, 5명이 사표를 내고, 사건 당시에는 6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남아있던 전공의는 과실치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한 죄다. 결과적으로, 사표를 내고 나간 5명이 옳았다. 적어도 현재 그들은 범죄자는 아니니까 말이다.

 

의사가 수가를 정상화 시켜달라고 간청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재 국내 중증 질환을 담당하는 곳은 대학병원이며, 핵심 인력은 인턴, 레지던트 같은 전공의다. 이 인력들은 전공의 때 받는 월급이 아니라, 미래 삶의 질을 예상하고 전공과를 결정한다. 전공의 생활은 길어야 5년이지만, 다음 수십년은 그 과 전문의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아무리 조언해도, 정부가 의사에게 하는 요청은 늘 한결같다. 전일 박능후 장관이 발표한 권역외상센터 대책 결정 과정을 보면, 국민건강과 의료계에 대한 현 정부의 태도를 알 수 있다.

 

사진_픽사베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어라.”

 

왜냐하면 국민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고 싶기 때문이다. 예산과 인력 같은 복잡한 얘기를 하면 국민의 지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일단 의사에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라고 한다. 이번 박능후 장관의 발표처럼 말이다. 만약 의사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지 못하면, 의사가 무능력하거나, 노력하지 않거나,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정부가 그렇게 비난하기 때문에, 국민들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지 못하는 의사를 비난한다.

 

그렇게 의사는 정책실패의 원인이 되고, 정부는 사악한 의사를 징벌하는 정의의 사도가 되며, 국민건강은 계속 위협받으며, 의료는 무너지게 된다. 결국, 국민은 단기적으로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그들의 자녀에게 지금보다 더 나쁜 의료시스템을 물려주게 된다.

 

현실에서 코끼리를 냉장고에 정말 넣고 싶다면, 큰 냉장고를 만들어야 한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시급한 응급의료, 중증환자, 감염관리에 대해 정부의 올바른 정책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의사 혹은 의료진을 비난하는 것으로 국내에서 벌어지는 의료사고가 감소하고 의료수준이 높아진다면, 대부분의 의료진은 비난을 감수할 의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미없는 비난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방안은 반드시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2018.1.17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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