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킹스맨 - 당신은 몇 년도에 죽을 예정입니까? (하)

[정신의학신문: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사 집단이 어떻게 되든 정부가 어떻든간에 의료비가 증가하면 건강보험료가 늘어나는 건 맞는 얘기이다. 국내 의사의 수는 이제 십삼만 명 정도인데, 나머지 수천만의 국민을 위해 희생을 하면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종종 들려온다. 의사의 인건비를 줄이면 의료비가 일부 줄어드는 것도 맞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건강보험료도 줄어들 수 있다. 아마,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건강보험료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여기에 추가로 국민연금보험료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건강보험료와 연금보험료가 줄어들게 되는 과정은 여러분의 예상과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이 모든 문제는 인구 노령화에서 시작한다. 세금을 낼 수 있는 젊은 인구는 줄어들지만, 세금이 들어가는 고령인구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높여 젊은 인구를 늘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방법이겠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바로 고령인구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고령인구를 감소시키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물론 방법이란 합법적인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바로 고령인구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를 조절한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병에 더 빈번하게 걸리는데,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면 당연히 수명이 줄어들게 된다. ‘신 포괄수가제’를 통해 의사에게 줄 치료비를 조절함으로써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을 정부가 직접 조절할 수 있다. 적은 치료비를 의사에게 주면, 경제 원리에 따라 의사가 알아서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을 낮출 테니 말이다. 동시에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를 통해 적시에 진료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어느 병원을 가든 큰 차이 없이 저렴한 가격에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특정 병원에 몰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모든 진료와 수술은 예약순서대로 진행이 될 것이며 이로 인해 환자는 적절한 시기에 진료를 보는 것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병이 중증인 사람을 의사가 먼저 진료하고 수술을 하면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김영란 법’으로 인해 의사가 특정 환자를 빨리 진료하고 수술하게 하는 것이 이미 불법이 됐다. 법대로 진료해도 범죄자가 될지 모르는데, 어떤 의사가 환자를 위해 법을 어기면서 진료를 하겠는가.

 

의료서비스의 질이 낮아지게 되면 치료 결과도 당연히 좋지 않게 되고, 환자들은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환자들의 불만이 의료비를 통제하는 정부에게 쏟아지는 것을 막아주는 최후의 우산이 바로 ‘신해철 법’이다. 환자가 사망하거나 의식불명 1개월 이상인 경우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신청만하면 의사의 동의 없이도 자동으로 조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떤 치료를 했을 때 환자가 사망하는 이유가 원래 병이 자연히 악화 돼서 인지, 의료사고 때문인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의사는 강제로 법적 조정을 당한다. 이 법은 의료행위를 한 뒤 환자의 경과가 악화되는 것은 모두 의사의 과실 때문이라는 선입견을 만들어, 의료서비스 질 저하가 정부가 의료비를 통제해서 생기는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파악하게 어렵게 한다. 또한 의료서비스 저하로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경제적인 책임도 의사 집단에게 넘길 수 있기도 하다.

 

이 ‘신해철 법’으로 인해 이미 의사는 더 방어적인 치료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2월부터는 의사가 대처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생긴다. 그게 바로 ‘연명의료결정법’이다. 의사가 자신의 치료로 환자가 살아날 가능성이 50%라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치료를 해서 실패를 한다면 ‘신해철 법’에 의해 의료분쟁조정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치료대신 연명의료만 하는 것으로 결정하면, 자신은 신해철 법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환자가 법을 근거로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했을 때, 과실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호전되고 악화되는 병의 진행 과정이, 전부 의사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보호자의 정성스러운 간병, 삶에 대한 환자의 의지,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기적 등이 분명히 병의 진행에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인명은 재천이라고 한다. 치료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법과 환자를 고통 없이 죽게 하는 것을 허락하는 법이 동시에 있다면, 의사는 인간적인 결정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즉,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고, 고통 없이 죽게 하는 것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노인인구가 줄어들게 되면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와, 연금이 모두 줄어들게 된다. ‘연명의료법’ 하나만 놓고 본다면, 개인적 차원의 고려장에 대해서만 고민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보건의료계에 몰아치고 있는 모든 정책과 법을 동시에 보면, 정부의 암묵적인 바람과 산발적으로 만들어진 법들이 합쳐져 사회적 차원의 고려장이 시작되고 있다.

 

사진_픽셀

 

물론 지금 이 글의 내용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처해있는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정치인의 특성에 대해 고민해 본다면 아주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먼저, 인구구조를 바꿀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해법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출산율이 지금 당장 증가하더라도, 올해 출생한 아이들이 경제활동을 하는데 까지는 적어도 20~30년이 걸린다. 외국인을 귀화시키는 것도 젊은 인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들을 귀화시켜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보다, 그들을 우리 사회에 통합시키는데 필요한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을 미국과 프랑스를 통해 배웠기에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마법 같은 정책이 머릿속에 있다 한들, 20~30년 뒤에 효과가 나타나는 정책에 어떤 정치인이 공을 들이겠는가.

 

집안에 중증 환자가 있다면 한번쯤은 이런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어차피 완치가 안 된다면, 고통스럽지 않게 빨리 가셨으면 좋겠다.’ 오랜 기간 앓을수록 환자의 고통만큼이나, 경제적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인이라고 가정해보자. 나라의 곳간을 채워줄 사람을 구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중증 환자가 점점 많아진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은가. 정치인은 국민 개개인의 행복만큼이나 집단의 행복을 고민해야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우리보다 더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건국 이래로 다양한 정권이 우리 곁에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최근 십 수 년 동안은 정권과 관계없이 의료 정책의 큰 방향은 일정하다. 인구 노령화로 인해 증가하는 의료비 총액을 억제하는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특성상, 국민들이 외국과 국내의 의료서비스를 쉽게 비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적절히 국내 의료서비스의 수준을 낮추면, 큰 정치적 부담 없이 의료비 증가세를 낮출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의료서비스 저하로 인해 중증 노인환자가 입원해 있는 시간을 줄여, 추가적인 의료비와 연금의 지출을 막을 수도 있다. 이를 통해서 인구 구조와 건강보험, 연금 재정이 모두 건전해 질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정책의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의사 집단에게 넘길 수 있으며, 국민의 편에 선 정의로운 정권으로 기억될 수 있다. 어떤 정권이 이런 달콤한 유혹을 쉽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사진_픽셀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일 년 뒤 혹은 내일,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 사회가 삶과 죽음의 가치에 대해 관여하는 것은 오늘 날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종은 소 한 마리보다 저렴했다. 또 주인이 종을 죽여도 큰 벌을 받지는 않았다. 종은 주인의 죄를 관아에 알리기만 해도 벌을 받았다. 이렇게 사회는 우리의 삶과 죽음의 가치에 대해 그 사회적 기준을 근거로 관여해왔다. 하지만 그 종들의 삶과 죽음이 소의 그것보다 무가치하다고 누가 얘기할 수 있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가 자신의 삶과 죽음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당신의 삶과 죽음의 가치를 결정할 것이다. 이제 질문한다. 당신은 몇 년도에 죽을 것인가.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가. 당신의 결정이, 정말 당신에 의한 결정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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