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대 의과대학 부속 목동병원(이대목동병원)에서 숨진 신생아들은 사망 전 똑같은 수액을 맞았다. 사망한 4명의 아이들 중 3명이 ‘시프로박터 프룬디’가 검출됐으며, 각각의 염기 서열도 일치한다고 한다. 병원 측 조사결과, 숨진 신생아 모두는 16일(토) 종합영양수액(TPN)과 비타민K 주사제를 투약 받았다. 이후 조사 방향은 의료진의 위생관리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사진_픽사베이. 사진은 이미지로 기사와 무관합니다.

 

하지만 의료진의 미흡한 위생관리가 유일한 원인이라고 보기는 아직은 어렵다. 의료진이 손을 씻지 않아서, 의료진 손에 있는 균이 신생아에게 감염을 일으켰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손에 살고 있는 균이 신생아의 혈액에서 검출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프로박터 프룬디’는 피부 상재균이 아니다. 즉, 손에 사는 균이 아니라는 말이다. 알려진대로 이 균은 물, 흙 등 자연 환경이나, 장 속에 사는 균이다. 하지만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당연히 이런 자연 환경이 없다. 누군가 장 속에 있는 균을 뿌릴 리도 없다.

 

만약, 어떤 의료진이 산책을 나갔다가 ‘시프로박터 프룬디’를 손에 묻혀왔다고 하자. 하지만 우리 손에는 이미 많은 상재균이 살고 있다. 이 상재균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텃세를 부려 ‘시프로박터 프룬디’를 죽인다. 따라서 사망한 신생아의 혈액에서 배양되어 나온 균이 ‘시프로박터 프룬디’이기 때문에, 의료진의 위생관리가 아닌 다른 원인도 같이 조사해야 한다. 바로 수액과 주사제 내용물이 애초에 오염되어 있었을 가능성, 즉 ‘의약품 제조 사고’이다. 현재는 이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사진_픽사베이

 

병원에 들어오는 물품이나 약제들은 멸균공정을 거친다. 하지만 멸균공정을 거친다고 해도, 모든 균이 다 죽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 손 소독, 수술부위 소독 등으로 쓰이는 클로르헥시딘에서도 ‘시프로박터 프룬디’가 속해있는 그람음성간균이 나와 회수조치 된 적이 있다. 먼 옛날 일이 아니다. 2014년 1월 ㈜휴니즈가 판매하는 ‘헥시올액 0.5%’에서 균 혼입이 발견되어 회수·폐기 명령을 받았다. 2015년 1월에는 성광제약 ‘헥시타 0.5%액’에서 같은 균 혼입이 발견되어 출고된 4만여 개의 제품을 회수조치 했다. 이 두 회사는, 이름을 바꾼 뒤 아직 같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 2017년에도 사건이 있었다. 서초구의 한 이비인후과에서 근육주사를 맞은 41명의 환자가 비결핵 항산균에 감염된 것이다. 비결핵 항산균은 ‘시프로박터 프룬디’와 마찬가지로 물과 흙 같은 자연 환경에 사는 균이다. 아직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의료진의 위생관리가 유일한 문제일 가능성은 낮다.

 

수액과 주사제 내용물이 애초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건들에게서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기승전-의료진’의 문제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수액에 벌레가 들어있었던 석달 전 사건도 그렇다. 의료진이 수액에 벌레를 넣었을 리가 없다. 명백히 공정 과정의 결함이다. 또, 유통기간이 5일 밖에 남지 않은 약품을 써서 문제가 생겼다며 의료진을 비난하기도 한다. 편의점 삼각김밥도 유통기간 동안은 먹을 수 있는데 말이다. 유통기간 동안 약품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약품 자체의 결함이다. 하지만 어떤 언론도 문제가 되는 의약품을 만든 회사를 비난하지 않는다. 언론이 의료진에 대한 비난을 할수록 국민들은 열광한다. 추가적으로 의료진을 비난한다 해서 언론의 광고 수익이 줄지도 않는다. 이런 사정 때문에 언론도 기꺼이 의료진을 비난하는데 동참한다.

 

사진_픽사베이

 

문제가 생긴 제약회사를 조사해야하는 질병관리본부나, 허가를 내주는 식약처 역시 의료진에게 책임을 돌린다. 유통기간이 너무 짧게 남은 약품을 썼다며 법에도 없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유통기간이 너무 짧게 남은 약품을 쓰는 것이 문제가 되는 줄 식약처가 미리 알았다면, 약품의 유통기간을 줄이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정책을 만들지 않았다면 식약처의 직무유기다. 유통기간이 너무 짧게 남은 약품이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면, 그 약품을 허가해 준 식약처의 과실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질병관리본부나 식약처는 의료진의 잘못으로 사건을 몰아가곤 한다.

 

이런 이유로 질병관리본부가 잘못된 원인을 가정하고 조사하는 동안, 제약회사들은 문제가 되는 제품과 공장을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된다. 제약회사의 과실을 밝힐 골든타임이 지나가게 된다. 그 이후에는, 의료진의 청결문제만 남을 수밖에 없다. 의료진은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고,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_픽사베이

 

물론 이 사건이 종합영양수액(TPN)을 조합하는 병원 내 무균 시설의 문제나, 낮은 가능성으로 의료진의 술기 실수 때문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말 그대로 중환자가 모여 있기 때문에, 온갖 균과 내성균이 모일 수밖에 없다. 웅덩이 자체를 없애지 못한다면, 웅덩이에 물이 고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물을 막는 벽을 설치하거나 사람이 물을 계속 퍼내야 한다. 물을 막는 벽이나 퍼내는 사람을 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신생아 중환자실은 전국 모든 병원 내에서 유명한 적자 덩어리다. 추가로, 감염 관리료는 하루 500원이며, 수액세트는 마진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신생아에게 어떤 감염관리와 수액 관리가 가능할까.

 

2002년 월드컵 이전에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한국 축구의 장점을 물어보면 대부분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축구팀은 기술은 문제가 없다. 체력이 문제다.’

 

반복되는 ‘의약품 제조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를 ‘의료사고’로 규정하고, 의료진에게만 책임을 미룰수록, 사고는 반복될 뿐이다.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료사고’가 아니라 ‘의약품 제조 사고’ 혹은 ‘낮은 감염관리료로 인한 감염 사고’ 혹은 ‘식약처의 미숙한 관리로 인한 사고’로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현재 우리나라에 빈발하고 있는 환자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원인이 밝혀져야, 사고 피해자들의 한도 풀릴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지난 16일 사망한 신생아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적자 덩어리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는 의료진도 힘을 내길 바란다. 또한 소아청소년과에는 ‘이국종 교수’가 나오질 않기를 기도하겠다. ‘이국종 교수’가 나왔다는 것은, 그 과가 극한의 어려움 속에 있다는 뜻이니까.

 

이런 절망 속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의료진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그대들을 손가락질 하더라도 신생아들은 그대들의 손가락에 매달린다는 것을.

2017.12.21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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