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는 제이콥 레비 모레노(Jacob Levi Moreno)라는 미국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가 창시한 즉흥 연극이자 치료이다.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서는 정신치료극이란 이름으로 건강보험 수가가 등재된 집단정신치료(group psychotherapy)로 알려져 있고, 일반 대중에게는 심리극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것이 바로 사이코드라마이다.

저자는 1995년부터 사이코드라마와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무대에 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정신의학신문에 연재되는 내용을 통하여 사이코드라마의 실제를 독자들과 함께 경험하고 나누고자한다.

 

충분히 워엄-업(warm-up)으로 준비된 주인공은 사이코드라마의 행위화 단계에서 빠르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가는 작업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날의 주인공은 돌아가신 아빠를 만나고자 하는 욕구가 충분히 올라와 있기 때문에, 첫 장면에서 바로 아빠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진행에서는 핵심 대상과의 만남을 극 초반부에서 바로 시도할 경우, 심각한 저항(resistance)에 부딪히게 됩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거나, 역할 바꾸기(role reversal)시 상대 역할로 연기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드라마의 진행은 분명 사이코드라마 디렉터의 실수 또는 미숙함이 주된 원인입니다. 주인공의 내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디렉터의 (과한)욕구에 따라서 극이 진행될 때,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게 됩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일차적으로는 ‘주인공을 위한 드라마’입니다. 디렉터는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보다 잘 느끼고 통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주된 임무입니다.

 

다행하게도 이날의 주인공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욕구가 충분히 올라와있었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바로 돌아가신 아빠를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디렉터는 돌아가신 아빠가 ‘5년’ 만에 딸을 만나러 온 것으로 장면을 설정하였습니다. 주인공은 아빠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빠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사진_픽셀

 

“아빠, 왜 나를 버리셨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내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알아?” 주인공의 이야기에 아빠 역할의 보조자아는 그 답변을 주어야합니다. 이 때 디렉터는 딸(주인공)과 아빠(보조자아) 사이에 역할 바꾸기를 시도합니다. 이제 주인공은 돌아가신 아빠가 되어서 자신의 딸에게 대답해주어야 합니다.

“미안하다, 00야! 아빠가 너무 힘들어서 큰 실수를 했구나, 절대 너를 버린 게 아니란다.” 아빠는 딸에게 힘들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아빠 역할을 하고 있었던 주인공은 이미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직접 아빠를 만나서 그 대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 만남을 사이코드라마가 연결해준 것입니다.

 

사이코드라마의 잉여현실(surplus reality)는 상상이상으로 효과적이고 강력합니다.

‘진짜 아빠도 아니고,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현실로 돌아와서 딸을 만나?’ 이런 허황된 장면 연출이 주인공에게 효과가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논리적으로는 허황된 내용이지만, 주인공의 절실한 욕구와 감정이란 측면으로 바라보면 이러한 만남의 의미와 효과가 실질적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딸)과 아빠의 대화가 지속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아빠의 마음을 확인하고자 계속해서 되물었고 아빠는 반복해서 대답해주었습니다. ‘내(아빠)가 버린 것은 내 자신의 힘든 인생이었지 결코 너(딸)는 아니라고 그리고 그 결정을 후회한다고...’

 

사진_픽셀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와 딸은 좀 더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아빠의 진심어린 이야기가 주인공의 빈 마음을 채워주었습니다. 이제 주인공은 아빠를 향한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고 싶어졌습니다. 디렉터는 아빠에게 딸을 안아주시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빠에 대한 원망과 분노감이 사라진 그 빈 마음에 따뜻한 아빠의 사랑이 느껴질 수 있도록 꼬옥 안아주시길 아빠에게 요청드렸습니다. 주인공은 뜨거운 눈물을 아빠 품에 안겨서 흘렸습니다.

 

이후의 장면들은 주인공에게는 보너스와 같은 의미였습니다. 주인공에게 아빠와 함께 해보고 싶은 것을 물었고, 주인공은 아빠와 단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아빠가 운전하는 자가용의 조수석에 앉은 딸은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늘 동생들에게 치어서 양보만을 해왔던 주인공이 아빠를 독차지해보는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즐거웠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이제 아빠는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빠와의 헤어짐은 다행하게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이코드라마는 막을 내렸습니다.

 

사진_픽셀

 

극이 끝난 후 주인공이 소감을 나눌 때,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요. 지금까지 치료받아온 것 보다 오늘 이 시간이 더 효과가 큰 것 같아요!” 웃으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가벼워진 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날의 주인공은 지난 6개월 이상 치료를 진행해오다가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하고 사이코드라마를 실시한 다소 특이한 사례입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치료(심리 및 약물 포함)와 사이코드라마가 각각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날의 주인공과 같은 사이코드라마의 효과를 일반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절하게 진행된 사이코드라마적(행위화) 방법은 매우 강력한 치유력을 갖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이코드라마의 행위화(enactment) 과정은 주인공과 디렉터간의 조화가 일차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관객 사이의 연결을 디렉터가 조율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물 흐르듯이 진행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제는 사이코드라마 행위화 과정의 기본 원칙과 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지난 글 보기

[김주현의 Psychodrama] 사이코드라마 만들기 - 행위화(Enactment) 1

 

 

필자 약력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저, 정신과 전문의

現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원장

現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및 現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

現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월간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 '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참여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