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는 제이콥 레비 모레노(Jacob Levi Moreno)라는 미국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가 창시한 즉흥 연극이자 치료이다.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서는 정신치료극이란 이름으로 건강보험 수가가 등재된 집단정신치료(group psychotherapy)로 알려져 있고, 일반 대중에게는 심리극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것이 바로 사이코드라마이다.

 

사이코드라마는 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이다. 같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느끼고 알아가는 초반 작업인 워엄업(warm-up)을 통하여, 서로 조금씩 낯선 느낌을 줄여나가고 동질성을 높여간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자발성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자연스레 친해져가는 것이 사이코드라마의 첫 미션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대부분 외롭다. 가족, 부부, 친구 관계 안에서조차도 그 외로움은 떨쳐버리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미 이 문제를 약 100년전 모레노는 알고 있었고, 인간의 고독이란 문제를 한 개인이 풀기보다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대명제 아래 집단 안에서 함께 풀어가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사진_픽사베이

 

이렇게 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익숙하고 편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바로 자발성을 높이는 과정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그동안 잊고 지내온 또는 잃어버린 삶의 에너지인 ‘자발성’을 느끼고 끌어올리는 경험을 나누게 된다. 즉 점점 파편화되고 분절화 되어가는 현대의 인간관계망에서, 사이코드라마는 자발성의 회복이라는 방법을 통해 인간의 관계 욕망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또 다른 사이코드라마의 강력한 원리가 즉흥성이다. 즉흥성은 사이코드라마를 예술이면서 치료적 도구로 기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기도하다. 즉흥성은 말 그대로 순간적으로 솟아나는 힘이며, 어떤 상황에 대하여 대비됨 없이 발휘되는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현대인들을 규정하는 속성들 중 하나가 즉흥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현 시대의 속도감과 연결 지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말 그대로 ‘광속’으로 변해가는 사물과 가치관들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따라가려고 애쓴다. 특히 ‘빨리빨리’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속도감의 부정적 요소를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열광하고 또한 쉽게 지지를 접기도 하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즉흥성은 사이코드라마에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행위화(acting-out)를 통하여 즉흥성은 나타나고, 자발성에 의하여 더욱 촉진된다. 단지 말이 아닌 행동 즉, 역할 연기(role playing)를 통하여 자신의 내적 상태-생각과 감정-를 표출하기 때문에 사이코드라마는 즉흥성을 통하여 참여자들-주인공과 관객 모두-에게 자신의 내적 세계에 좀 더 저항(방어)없이 도달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사진_픽사베이

 

사이코드라마에서의 즉흥은 일종의 무아지경(無我之境)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자아가 없어지는 경지는 기존의 익숙한 자아를 내려놓고 ‘새로운 참자아’를 만난다는 것을 사이코드라마에서는 의미한다. 익숙한, 방어적인 나를 역할연기를 통해서 알게 되고, 역할 바꾸기(role reversal)를 통해서 새로운, 숨겨져 있었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즉 사이코드라마는 즉흥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삶의 진실에 도달하도록 이끌어주게 된다.

 

사이코드라마는 자발성과 즉흥성을 기반으로 하여, 역할 연기라는 도구를 가지고 행위화 (acting-out)를 이끌어낸다. 그 행위화는 단순한 충동의 표출이 아닌, 숨겨진 내면의 진실을 세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어(defence)와 저항(resistance)은 필연적이며 이러한 방어와 저항을 자발성과 즉흥성 그리고 역할 연기를 통하여 적절히 다루면서 사이코드라마는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코드라마는 그 과정 자체로 ‘치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코드라마는 마음(psyche)과 연극(drama)가 만나서 이루어진다. 마음을 다루는 치료적 요소와 연극이라는 예술적 요소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이는 사이코드라마의 강점이자 또한 약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치료와 예술을 동시에 이루어낸다면 정말로 환상적(fantastic)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둘 중 어느 하나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진행할 수밖에 없다. 만약 중증의 정신질환자 집단과 사이코드라마를 실시한다면 아마도 치료적인 면에 좀 더 치중하게 될 것이고, 일단 대중과의 만남이라면 예술적, 미학적인 측면을 좀 더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면들을 실제 진행 상황에서 잘 고려하고 탄력적으로 적용한다면–이러한 상황을 사이코드라마에서는 ‘적절한 자발성’이라고 표현한다- 아마도 멋진 사이코드라마가 탄생할 것이다.

 

저자는 1995년부터 사이코드라마와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무대에 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병원과 소극장 그리고 강의실 등 주어진 환경에서 다양한 집단과 사이코드라마를 진행해왔다. 이제 앞으로 연재되는 내용을 통하여 사이코드라마의 실제를 독자들과 함께 경험하고 나누고자한다.

 

 

저자소개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저, 정신과 전문의
現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원장
現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및 現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
現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월간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 '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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