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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의 Psychodrama] 사이코드라마 만들기 - 행위화(Enactment) 1
김주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7.09.11 23:09

[정신의학신문 : 김주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발성의 극장(theater of spontaneity)은 사이코드라마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잃어버린 현대인의 자발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시작된 사이코드라마는 이제 치유와 힐링의 아이콘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이코드라마의 치유와 힐링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아마도 공감(empathy)과 나눔(sharing)이라는 사이코드라마의 가치가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원천적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코드라마가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을 일으켜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사이코드라마의 행위화(enactment) 작업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행위화 작업은 보통 사이코드라마 본극 단계라고도 하며, 당일 회기의 주인공이 나와서 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즉흥적인 역할 연기(role playing)를 통해 장면을 만들고 진행해나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일반인들 중에는 이러한 행위화 작업만을 사이코드라마라고 잘못 알고 계신 경우도 많습니다. 역할 연기라는 눈에 보이는 작업을 통해서 주인공의 내적 세계를 드러내고, 이를 이해하고 공감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행위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_픽셀

 

이러한 작업은 좁게 보면 주인공과 사이코드라마 디렉터 사이에서 주고받는 과정이고, 보다 넓게 보면 주인공과 사이코드라마 디렉터 그리고 관객 모두와 상호연결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이코드라마의 행위화 작업을 통해 발생하는 주인공의 새로운 인식 또는 깨달음을 행위 통찰(action insight)이라고 부릅니다.

 

행위 통찰은 사이코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치유 인자이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에서 해석(interpretation)을 거쳐서 정서적 통찰(emotional insight)에 이르는 과정을 사이코드라마에서는 보다 빠르게 진행시켜 행위 통찰(action insight)이라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사이코드라마의 장점인 언어와 행동이 동조화(synchronized)되어 진행되는 과정이 바로 행위화 과정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신의 내적 현실을 회피하지 못하고 직시하게 되고 관객들은 주인공의 내적 현실이 무대 위에서 행위화 되기 때문에 좀 더 빠르게 공감과 이해에 다다르게 됩니다.

 

최근에 진행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이코드라마 공연에서 필자는 사이코드라마의 치유력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생기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날 사이코드라마는 쉽게 다루기 어려운 과제를 지닌 분이 주인공으로 올라오셨습니다. 수년전 자살하신 아빠에 대한 원망을 가진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필자와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사진_픽셀

 

보통 주인공은 사전에 정하지 않으며, 당일 워엄-업을 통하여 자발성이 올라와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구, 즉 행위 갈망(action hunger)이 생기신 분이 자연스레 그 날의 주인공이 되십니다. 헌데 이날의 주인공은 사실 내정된 것과 같은 상황에서 공연에 참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성은 이미 반년 이상을 치료받아온 저의 내담자(client)였기 때문입니다. 돌아가신 아빠를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었던 딸이었고, 아빠 사후에 벌어진 일 – 엄마가 전적으로 자신을 의지하며 힘들게 하시는 것 –로 말미암아 서서히 지쳐가다가 도움을 요청하며 필자의 클리닉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치료자와 내담자 관계가 어언 반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어느 정도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아빠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필자는 사이코드라마에 참석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언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전통적인 심리치료에서 주기 어려운 해결책 – 돌아가신 아빠를 만나서 직접 애기하는 것 –을 사이코드라마가 줄 수 있다는 확신아래, 참여를 권유했던 것입니다. 물론 당사자는 망설였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주인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이코드라마 당일에 주인공으로서 준비되어 있어서 스스로 무대 위에 올라올 때만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쳐서 사이코드라마에 주인공으로 그녀가 드디어 올라왔습니다. 다행하게도 워엄-업을 마치고 주인공을 모시는 기다림의 시간에 아무도 무대에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 그녀가 주인공으로 자원하였습니다. 비록 사이코드라마 주인공으로 권유받았지만 당일에 그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면, 주인공의 기회는 누군가에게로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행위화 작업으로 들어갑니다. 이미 충분히 준비된 주인공은 첫 장면에서 바로 돌아가신 아빠를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극은 시작부터 빠르게 핵심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이코드라마가 만드는 현실인 잉여현실(surplus reality)이 주인공을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이끌어 갑니다.

 

 

필자 약력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저, 정신과 전문의

現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원장

現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및 現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

現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월간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 '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참여

 

 

김주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goya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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