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의 시작, 워엄-업(warm-up) 1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는 제이콥 레비 모레노(Jacob Levi Moreno)라는 미국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가 창시한 즉흥 연극이자 치료이다.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서는 정신치료극이란 이름으로 건강보험 수가가 등재된 집단정신치료(group psychotherapy)로 알려져 있고, 일반 대중에게는 심리극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것이 바로 사이코드라마이다.

저자는 1995년부터 사이코드라마와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무대에 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정신의학신문에 연재되는 내용을 통하여 사이코드라마의 실제를 독자들과 함께 경험하고 나누고자한다.

 

사이코드라마를 처음 접하는 분들은 대개 혼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마도 행위화(enactment), 즉 본극 과정을 사이코드라마라고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인공과 함께 역할 연기(role playing)을 진행하면서 장면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사이코드라마의 제2단계’인 행위화 단계라고 하는데, 아마도 일반 사람들이 사이코드라마를 처음 접하는 흔한 상황인 ‘tv시청 도중에 사이코드라마의 장면을 경험하는 것’이 그 주된 원인인 것 같습니다.

 

tv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에서 사이코드라마를 도구로 사용합니다. 가족관계의 갈등을 다루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사이코드라마의 갈등 재연 및 해결 장면입니다. 갈등 관계의 두 사람-대개 부부 또는 가족–이 고함치고, 때로는 소도구를 사용하여 자신의 분노감정을 표출합니다. 이는 시각화되기 좋은 구도이며 시청자들에게도 보다 쉽게 장면을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이코드라마를 단지 감정 표출의 수단이라고 단순화시켜 시청자들을 이해시키는 단점을 가질 수 있으며, 사이코드라마를 긴 과정(long process)으로서 인지하지 못하는 왜곡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방송 매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보면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보통 최소한 2시간 이상 소요되는 한편의 사이코드라마를 방송 매체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편집해줄리는 만무하고, 아쉽지만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 방송 프로그램에 종속됩니다.

 

사진_픽셀

이러한 일반 대중들의 사이코드라마에 대한 첫 경험 때문에 손해보는 작업이 다름 아닌 사이코드라마의 첫 단계인 워엄-업(warm-up)입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자발성(spontaneity)을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그 목적으로 갖습니다. ‘잃어버린 현대인의 자발성을 회복하자는 것’이 모레노(Moreno)의 사이코드라마에 대한 목표였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고민했던 모레노는 그 해법으로 인간의 자발성 회복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자발성의 회복이 더 나아가 창조성(creativity)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이러한 원대한 목표를 위한 매우 중요한 모레노의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자발성이 말 그대로 ‘스스로 발생’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위적인’ 작업을 통하여서 이러한 자발성을 높여가는 사이코드라마의 제1단계 작업을 워엄업(warm-up) 또는 준비 단계라고 합니다. 사이코드라마에서는 이러한 첫 작업을 통하여 한 자리에 모인 집단원을 말 그대로 ‘준비’시키고, 이를 통하여 제2단계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역할 연기를 진행시켜나가는 행위화(enactment)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워엄-업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사이코드라마가 시작되는 첫 순간부터 진행되는 것이 익숙한 답이지만, 필자는 보다 포괄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이코드라마의 워엄-업은 사이코드라마 디렉터가 차기 사이코드라마 연출(directing)을 구상하고 준비하는 시점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당일의 집단과의 만남부터가 아닌 사전 준비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워엄-업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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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드라마 디렉터가 향후 시행될 드라마를 위해 사전에 준비하는 것들, 즉 모이는 사람들의 수와 특성 등 집단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나가는 것이 워엄-업의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 수집에 맞추어 디렉터는 당일 워엄-업 작업의 구체적인 내용들-어떤 주제로 어떤 방법들을 사용하여 작업할 것인가?-을 미리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작업을 토대로 하여, 당일 디렉터는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사이코드라마 집단의 상황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즉 디렉터는 ‘이미 높은 자발성을 지닌 상태’로 당일 현장에서 집단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이코드라마 디렉터의 워엄-업, 즉 ‘디렉터의 스스로 준비됨’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디렉터의 ‘몸과 마음의 상태’입니다. 사이코드라마는 디렉터의 몸과 마음 상태가 그대로 당일 극에 투영(projection)됩니다.

 

만약 사이코드라마 실시 주간에 육체적으로 많이 지치거나 아픈 상태라면, 분명 사이코드라마의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최소한 2시간 이상의 시간을 집단의 리더가 되어서 극을 이끌고 나가야할 책무를 지닌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는 체력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필자의 경우, 사이코드라마 실시 주간에는 술자리 등 만남 약속을 가능하면 줄입니다. 비축된 체력으로 단단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집단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보다 더 지쳐 보이는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를 의지하고 신뢰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진_픽셀

디렉터의 심리적 상태 역시 강력한 요소입니다. 집안의 우환, 가족 갈등 등 디렉터의 심적 상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들이 만약 사이코드라마 시행 시점에 근접해서 발생하였다면 아마도 디렉터가 극에 자연스레 몰입하는데 방해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사이코드라마 디렉터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모두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디렉터로서 역할을 수행하는데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스스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정신분석적 시각으로 보면, ‘치료자의 역전이(counter transference)’ 문제에 대한 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에 들어가기 전에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는 자신의 신체적, 심적 상태를 면밀히 검토하고 대비하여, 이러한 요소들이 극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이코드라마 워엄-업의 출발점입니다.

 

 

저자소개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저, 정신과 전문의
現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원장
現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및 現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
現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월간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 '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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