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잠이 오지 않는다. 도대체 잠들지를 못하겠다. 분명 졸리긴 한데 말이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이 얼룩덜룩 묻은 몸을 침대에 내던지듯 뉘여 고단했던 하루를 달콤하게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침대에 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눈만 꼭 감고 있을 뿐이지 잠은 도통 올 생각을 않는다.

12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한참을 뒤척이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2시다. 지금 자면 내일 7시에 일어나니 5시간밖에 못 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얼른 잠들어야 한다. 내일은 아침 브리핑이 있는 날이다. 5시간이라도 자야 말끔하게 발표를 할 수 있을 텐데 걱정이다. 그런데 잠이 오질 않는다. 하도 뒤척였더니 허리도 아파오는 것 같다. 불 끄면 칠흑 같이 어두웠던 방안도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에는 방안 가구 하나하나까지 거슬리게 눈에 들어온다. 째깍거리는 시계소리마저 거슬린다. 시계를 보니 또 3시다. 지금부터 잠들면 4시간이다. 자야지, 자야 하는데...

하루 중 유일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인, 잠 자는 시간마저도 고통의 시간으로 만드는 불면증은 현대인의 일상을 좀먹는다. 하루 24시간을 수십 번도 더 쪼개어 칼 같이 나눠 쓰는 현대인들에게 불면증이란, 안 그래도 부족하고 소박한 휴식을 빼앗는 중증의 질병이다. 낮에 일할 때는 그렇게 눈꺼풀을 천근만근 내리누르던 잠이 밤에는 감감 무소식이니 답답함에 복장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불면증은 분명히 고쳐야할 병이다. 그렇지만 불면증에 고통 받고 있는 당신이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생각들이 당신을 더욱더 불면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주범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소중한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잠에 대한 오해’ 중 대표적인 4가지를 소개해 본다.

 

1. 잠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

특별한 의학적인 근거도 없이, 혹은 근거 없는 낭설을 믿고 매일 몇 시간 이상을 자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는 숙면을 취하기 위해선 밤에 한 번도 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자다가 2-3번 잠깐씩 깨는 것만으로 밤새 설쳤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대나 목표는 비현실적일 뿐더러 특별한 근거도 없다. 수면의 질이나 시간에 과도한 목표나 기대를 세우는 것은 점점 더 당신을 중증의 불면증 환자로 몰아갈 뿐이다.

 

2. 불면증에 대해 잘못된 사실들을 믿고 있다.

불면증에 대한 걱정은 더욱더 불면증을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걱정을 더욱 키우는 악순환을 이루게 된다. 잠을 푹 자지 못하는 것은 몸에 큰 이상이 있다는 징후라고 생각한다거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항상 상쾌하고 머리가 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잠이 안 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아침에 머리가 맑지 못하면 하루를 전부 망칠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불면증을 키우는 근거 없는 걱정일 뿐이다.

 

3. 잘못된 불면증 치료법에 대해 맹신하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전날 잠을 설치면, 하루 동안의 잠자는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낮잠을 자야 한다고 믿기도 한다. 또는 잠이 안 올 때는 잠을 청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더 잠을 잘 잘 수 있을 거라고 믿기도 한다. 사실은 그 정 반대에 가깝다. 이와 같은 잘못된 생각들은 어떻게든 스스로의 수면 위생을 개선하고자 하는 나름의 노력들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잘못된 행동들로 당신의 수면의 질은 더욱 나빠지고만 있다는 것이다.

 

4. 잠을 못 잔다는 것에 대해 과도한 걱정을 하고 있다.

불면증에 대한 걱정은, 걱정이 걱정의 꼬리를 물고 덩치를 키워 파국의 결말을 미리 단정지어 버리게 되곤 한다. 이렇게 잠을 못자고 회사에서 졸다간 결국 불면증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게 될 것이라는 재앙적 걱정이나, 불면증이 지속되다간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미쳐버릴 것 같다는 강렬한 답답함과 걱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런 최악의 결론은 가능성도 희박할 뿐더러 대부분 잘못된 생각이다. 만약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지름길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 걱정과 믿음에 매달리는 것일 뿐이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은 4가지 생각들은 대부분의 불면증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인지 오류이자, 불면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잠을 설쳐 고민해본 적이 있는 많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이다. 물론 나름의 근거와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상기한 내용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이, 그 믿음이 불면증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불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이 스스로를 더욱 늪 속 깊숙이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올바른 수면 위생에 대한 교육 이전에, 이러한 잘못된 오해와 과도한 걱정에서 한 발짝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꿀잠’을 위한 생각보다 긴 여정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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