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국내 사례

 

사진_픽셀

 

외국의 경우 정신의학과 예술의 접목의 역사가 150년 정도 되었는데, 국내의 경우는 그 역사가 짧아서 50여년에 이른다. 국내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예술 분석

일찍이 프로이트가 시도했듯이 국내에서도 정신의학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술분석이 실시되었다. 사실 정신과 의사 중에는 다른 어느 과 보다도 예술적 소양이 깊고 또 관심이 높은 분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1957년 서울의대 유석진 교수의 <이상의 정신세계>를 시작으로 1963년 고려의대 이병윤 교수의 <한국 신화의 정신분석적 연구>, 1965년 서울의대 이부영 교수의 <한국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심리학적 제문제>, 1977년 서울의대 조두영 교수의 <이상 초기 작품의 정신분석 - ‘12월 12일’을 중심으로 하여> 까지 주요한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는 융 학파 분석가이자 민화, 전래동화, 신화 위주의 분석을 해 오신 이나미 선생, 정신분석학파 분석가이면서 고전에서 현대까지 문학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분석을 시도하는 한림의대의 이병욱 교수, 건국의대의 하지현 교수를 들 수 있으며, 필자도 ‘변강쇠전’, ‘찰스디킨스’, ‘토니 모리슨의 <술라>’,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를 소재로 하여 정신분석적 분석을 시도한 바가 있다.

 

2) 사이코드라마

사진_김주현

국내에 사이코드라마가 도입된 것은 1975년 김유광 선생에 의해서였으며, 뒤를 이어 최헌진, 김수동, 김주현, 강상범선생이 그 명맥을 이어가며 발전, 확장을 시켜나가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산하에 있는 ‘한국임상 예술학회’(회장 김주현선생)는 1982년 설립되어 예술분석, 사이코드라마를 주도하였을 뿐 아니라 인접한 분야인 무용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기타 예술치료 전문가와 함께 하며 예술치료를 더욱 발전시키고 확장하는데 기여하였다. 매년 학술대회와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고 일반 대중을 위한 사이코드라마 공연을 하고 있으며 전문의를 위한 사이코드라마 교육을 하는 등 예술을 정신의학에 접목시켜 활발히 활동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3) 미술

예술이 실제 임상에 접목된 분야 중 가장 빨리 접목된 곳이 바로 미술 분야였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작업치료의 한 가지로 미술이 정신병원에 도입되었다. 의욕을 증가시키고 활동을 권장하며 사회화 및 라포 형성에 도움이 되고자 진행되는 작업요법의 하나로 미술활동이 권장된 것이었으며 주로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등 치료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990년대 들어 예술치료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미술치료사가 현장에서 직접 임상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작업요법과의 차이점은 기존의 작업요법이 병원 치료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사회화나 활동증진에 목적을 두고 가능하면 미적인 완성 자체를 강조한다면, 미술치료는 전문적인 미술치료를 공부한 미술치료사에 의해 이루어지며 보다 구체적인 치료적 목적, 즉, 진단과 평가와 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예술성 자체보다는 예술을 통한 치료적 목적을 더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치료나 미술치료는 주로 임상현장에서 이루어졌고 환자들을 위한 보조치료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었다. 이들 환자들의 작품 중에는 예술성이 뛰어나고 매우 독창적인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외국에선 이미 150여 년 전부터 정신질환자의 예술성에 관심을 가지고 이 작품을 모으고 전시를 하여 널리 알리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그런 시도가 거의 없었다. 본격적으로 정신질환자의 예술작품을 모으고 널리 알리는 시도가 이루어진 것은 2008년에 이르러서였다.

사진_픽셀

용인정신병원에서는 2004년부터 전문적인 미술치료가 이루어지도록 연결하였고 이후 상당수의 예술성이 있는 작품이 모이고 예술가로 평가받기에 마땅한 정신질환자도 발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정신질환자의 작품을 더 많이 모아서 일반인들에게 알린다면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 있고 아울러 살면서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 환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전시장에 걸리고 칭찬을 받는 주인공의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2008년부터 시작된 <G-Mind 정신건강 미술제>는 국내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정신장애인 예술을 널리게 되었다. 2008년 <정신, 그 내면의 세계> 전시에는 4개 도시 순회전시가 있었고, 2009년 <마음을 그리다> 전시에는 8개 도시 순회전시, 2010년 <예술, 가능성을 말하다> 전시에는 13개 도시 순회전시 및 일본과의 공동 전시, 2011년 <행복을 그리다> 전시에는 12개 도시 순회전시와 호주 시드니 전시, 2012년 <희희낙락> 전시에는 9개 도시 순회전시와 이탈리아 밀라노 전시가 있었다. 이 전시는 정신장애인의 미술에 관심이 없던 국내에 최초로 정신장애 예술을 알렸다는 점,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해소에 일조를 했다는 점, 정신장애인이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제공했다는 점, 그리고 일부 정신장애인이 전문적인 예술가가 되도록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13년 이후 이 전시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했지만 이 전시가 갖는 그 의미는 결코 무시될 수 없기에 앞으로도 정신건강 영역에서 이 전시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기를 희망한다(필자는 독자적으로 2013년 이후 현재까지 매년 1-2회 정도의 <정신건강 미술제>를 개최하면서 작은 규모라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6년 <리빙 뮤지엄 코리아>가 용인정신병원에 생긴 것은 미술 영역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리빙 뮤지엄>은 미국 뉴욕 크리드모어 병원에 있으며 많은 환자들이 이용하는 미술가 공동체이자 미술 스튜디오이다. 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환자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며 서로가 예술적인 자극을 주며 발전하는 자발적 예술공동체인 <리빙 뮤지엄>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치료 모델 중 하나이며 네덜란드와 스위스에 브랜치가 생겼으며 <리빙 뮤지엄 코리아>는 아시아 최초, 세계에서 4번째로 생긴 브랜치이다. 이곳에서는 향후 정신질환자의 예술 활동이 자유롭게 보장되고 또 예술가로서 발전하도록 지원할 것이며 예술을 즐기는 과정과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더 많은 환자가 치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4) 새로운 시도

사진출처_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지금까지 예술분석, 사이코드라마, 그리고 미술 영역에서 정신의학과 예술의 접목을 살펴보았다. 최근에는 연극, 뮤지컬 등에서 정신의학적 콘텐츠를 접목하여 국민 정신건강에 기여하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2012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후원한 연극 <아내들의 외출>, 경기도 정신보건사업지원단과 경기도정신건강증진센터가 기획 제작한 트로트 음악극 <뽕짝>, 2016년 필자 기획의 감성치유 뮤지컬 <뽕이와 코코>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사례는 외국에서도 거의 전례가 없는 새로운 시도로써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대중적인 예술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섬으로서 정신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편견을 줄이며 심지어는 작품 감상을 통해 치유까지 받을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맺음말>

지금까지 정신의학이 근대화된 이후부터 함께 해온 정신의학과 예술의 접목에 대해 살펴보았다. 국내의 경우 점차 생물학적 치료가 대세가 되면서 예술분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아쉬움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외국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시도를 선도하고 있는 장점도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예술과 관련하여 정신의학계에 몇 가지 당부와 제언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첫째, 예술은 정신세계에 매우 중요한 영역이며 치유적인 가치가 높기에 향후 정신의학계에서는 예술에 대한 관심을 늘리길 바란다.

둘째, 예술 분석 영역에선 문학작품, 영화를 넘어서 뮤지컬, 국내외 드라마, 웹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작품까지 그 분석대상의 영역을 넓히길 바란다.

셋째, 예술을 접목한 치료 분야에서 대상자는 환자 뿐 아니라 스트레스나 심리적 상처와 갈등이 많은 일반인을 위한 치유의 영역으로 확장해나가길 바란다.

넷째, 다양한 예술 영역에 정신의학이 접목된 새로운 콘텐츠의 창조를 선도하기 바란다.

 

 

저자 약력_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겸임교수 역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미술치료학과 겸임교수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장
대한임상예술학회 부회장
저서) 포은 정몽주(맵씨터, 희곡)
역서) 하버드 의대가 밝혀낸 100세 장수법(싸이언스북스)
       증오(황금가지)
KBS 팟캐스트 <힐러들의 수다> 진행 중

 

*이 글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Issue paper 2016년 12월 (제4호)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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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예술과 정신의학 - (1) 예술의 치유적 효과

[연재] 예술과 정신의학 - (2) 정신의학과 예술의 접목_외국 사례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마라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병원 정신과 전문의, 외래교수 역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예술치료학과 겸임교수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역임,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장
대한임상예술학회 부회장, 농심, CJ, 기업, 소비자전문가협회, 한국소비자원 자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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