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국 사례

 

그림_Dr. Philippe Pinel at the Salpêtrière, 1795 by Tony Robert-Fleury_ 필립피넬이 여성 정신질환자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풀게끔 지시하고 있다. (출처_위키미디어 공용)

정신의학계에서도 치유적 효과가 있는 예술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있어왔지만 그 역사는 길지는 않다. 200여 년 전 필립 피넬(Phillip Pinel, 1745~1826)은 정신장애를 이해하려 노력했고 환자들과 면담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 치료를 그는 ‘도덕적 치료’라고 불렀다). 피넬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정신과 의사들 중에는 이야기를 나누고 병의 근원이 되는 감정을 이해하려는 것 이외에도 예술적 활동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예술은 정신의학에 접목되었다.

 

1) 예술 분석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증례발표와 이론 정립을 위한 <수요회>라는 모임에서 프로이트는 즉흥적으로 예술가나 예술작품 속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그것이 예술 분석의 효시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예술이란 꿈과 비슷한 것으로 무의식에 있는 소망이 의식세계에서 받아들여질 만하게 교묘히 왜곡, 위장되어 나오는 것이며, 성적 에너지가 승화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다양한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소개하였다.

사진_픽셀

 

2) 사이코드라마

루마니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 ‘모레노(Jacob Levy Moreno, 1889~1974)’는 치료 공간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다. 그는 ‘자발성 극장’이라는 것을 운영하면서 자발적으로 찾아온 일반 사람들과 함께 즉흥적인 심리극을 시도하였다. 이런 즉흥극은 일정한 대본이 없이 등장인물인 환자에게 역할과 상황을 주어 연기하게 하는 역할 연기(role-playing)를 통해 갈등의 해소와 자기 통찰을 이루도록 돕는 기능이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즉흥극이 발전하여 사이코드라마가 되었다.

사진_모레노가 사이코드라마를 진행하는 모습들 / 사진출처_http://www.korn.ch/solutionstage/moreno-biographie/index.htm

사이코드라마는 일반적인 진료실 공간이 아닌 무대가 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능했고 일대일이 아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참여가 가능하며 심각한 정신병리가 아닌 일상의 스트레스 같은 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치료법과 차별성이 있는 치료법으로 발전하게 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3) 미술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체사레 롬브로소(Cesare Lombroso, 1835~1909)’는 <천재와 광기>라는 책을 통해 정신질환과 천재성을 연결하는 시도를 하였다. 이후, 정신과 의사이자 미술사학자인 독일의 ‘프리츠혼(Hans Prinzhorn, 1886~1933)’은 <정신질환자의 예술세계(Artistry of the Mentally Ill>라는 책에서 조현병 환자 작품의 특징을 비롯하여 예술과 정신병리를 연결하는 시도를 하였다. 특히 놀이, 표현, 장식, 모방, 정리정돈, 상징적 욕구 같은 6가지의 근본적인 욕구가 예술에 영향을 준다는 그의 설명은 지금도 유효한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모은 12,000여점 작품들은 하이델베르크 정신과 병동에 있는 ‘프리츠혼 컬렉션(Prinzhorn Collection)’에 소장되어 지금도 전시가 진행되고 있으며 로비 전시장에는 ‘칼 겐젤(Karl Genzel, 본명 Karl Brendel, 1871~1925)’의 나무 조각 <예수>를 볼 수 있다.

사진_Prinzhorn 로비 조각상 Genzel - Jesus (출처_http://www.kunsthaus-kaufbeuren.de/ausstellungen/kunst-und-stigma/)

미술과 정신질환을 연결한 시도는 당대의 클레, 뒤뷔페, 에른스트 같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화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는 프린츠혼의 영향을 받아 정신질환자의 작품을 추종하며 실험적인 시도를 하였다. 그는 거칠고 원시적인 예술이라는 뜻의 아르 브뤼(Art Brut)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하며, 아르 브뤼컴퍼니를 만들고 아르 브뤼 컬렉션을 구성하였다. 초기에 아르 브뤼는 거의 정신장애인의 작품을 의미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예술, 다듬어지지 않은 예술, 상업적 목적이 아닌 예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예술로 그 뜻이 확대되었다. 이렇게 모여진 작품이 5~6,000점에 이르렀고 뒤뷔페는 스위스 로잔에 ‘아르 브뤼 컬렉션(Musee Collection de l'Art Brut)’의 둥지를 틀었다.

사진_collection de l'art brut 내부 (출처_위키미디어 공용)

그후,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레오 나브라틸(Leo Navratil, 1921 ~ 2006)은 <조현병과 예술>이라는 책을 통해 구체적이고 미적인 측면에서 조현병 환자의 예술의 특징을 발표하였다. 나브라틸 사망 후, 정신과 의사 요한 페일라허(Johann Feilacher)는 나브라틸이 운영하던 스튜디오와 숙소를 이어받아 ‘구깅 아트센터(Gugging Art Center)’를 설립하였다.

사진_Gugging Art Center(출처_위키피디아)

구깅 아트센터는 정신장애인이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하고 예술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우며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도 예술성이 탁월한 13명이 이곳에 입소하여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곳 출신 유명 작가로는 방 전체를 그림으로 꾸민 어거스트 왈라(August Walla, 1936~2001)와 양극성장애 환자이며 성적인 표현, 특히 여성의 유방과 성기를 과장해서 그리는 요한 하우저(Johann Hauser, 1926~1996) 등이 있다.

이후 미국 뉴욕 크리드모어 병원(Creedmore Kospital)의 ‘리빙 뮤지엄(Living Museum)’과 같이 소수의 뛰어난 환자 뿐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치유적인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크리드모어 병원은 한 때 8,000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었으나 현재는 300여명이 입원해 있다. 예술가인 Bolek Greczynki와 정신과 의사인 Janos Marton 박사는 자연스럽게 버려진 병원 건물을 이용하여 나브라틸의 구깅 아트센터를 표방한 ‘리빙 뮤지엄’을 설립하였다.

사진_The Living Museum(출처_http://thisisartlab.com/2014/04/01/living-museum/)

이곳에서는 천여 명의 환자들이 예술적 활동을 통해 의미 있는 회복을 보였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생산된 미술작품 중 상당수가 교육받지 않아 제도권에서 자유로운 이른바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의 걸작이라고 평가 받았다. 리빙 뮤지엄은 예술가인 당사자에 의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치료공동체라는 점과 치료자들의 개입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으며, 공간 그 자체로 탁월한 임상적 및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문화운동 공간으로 탈원화 이후 빈 건물을 예술 활동 공간으로 바꾼 훌륭한 선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곳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슈퍼맨 같은 영웅들을 주로 그리는 Issa Ibrahim과 철사작업을 주로 하는 John Tursi 등이 있다.

 

 

저자 약력_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겸임교수 역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미술치료학과 겸임교수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장
대한임상예술학회 부회장
저서) 포은 정몽주(맵씨터, 희곡)
역서) 하버드 의대가 밝혀낸 100세 장수법(싸이언스북스)
       증오(황금가지)
KBS 팟캐스트 <힐러들의 수다> 진행 중

*이 글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Issue paper 2016년 12월 (제4호)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연재] 예술과 정신의학 - (1) 예술의 치유적 효과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마라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병원 정신과 전문의, 외래교수 역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예술치료학과 겸임교수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역임,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장
대한임상예술학회 부회장, 농심, CJ, 기업, 소비자전문가협회, 한국소비자원 자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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