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픽사베이

 

뭔가 아닌 것 같은 모호한 불안감

 

40대 중반의 남성이 진료실에 들어섭니다. 어떻게 오셨냐는 질문은 남성은 머뭇거리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글쎄요, 꼭 뭐가 문제가 있어서 온 것은 아니에요. 잠을 못 자는 것도 아니고 우울한 것도 아니에요. 직장생활도 무난히 하고 있고 집에서도 별다른 걱정은 없어요. 그냥 뭐랄까?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뭔가 빠진 것 같고 무의미한 것 같아’,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왜 사는 거지?’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이것도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요?” 이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년층의 심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중년층,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오셨나요? 태어나서 스무 살 때까지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따르며 살았고 대다수는 성인이 되어도 결혼 전까지는 진정한 독립은 하지 못하죠.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여도 돈을 벌기 위해 애들을 키우기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가죠.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잠시 숨을 고르며 돌아보니 신체는 예전 같지 않고 젊음은 사라지고 주름이 늘어나며 부모는 병들고 떠나가고 일찍 쓰러지는 친구들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귀엽기만 한 아이들은 커가면서 점차 멀어져만 가고 있고 배우자와도 거리가 멀어져 집에서도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게 아닌데 같은 모호한 불안감이 생깁니다.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지금 이런 불안감이 생기냐고요? 그건 마치 호랑이에게 쫓겨 도망치다가 겨우 벗어나서 쉬고 있으니 그때서야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앞만 보고 달릴 때는 몰랐지만 이제 좀 쉴 만하니 그동안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열심히 살아왔지만 정작 중요한 자신을 챙기지 못할 때 마음속 깊은 내면에서는 이런 식으로 나 자신에게 ‘이젠 너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의 삶은 누구의 자식으로, 누구의 부모로, 누구의 배우자로 살았지 정말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산 것은 아닌 것 같군요.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나를 찾으라’는 내면의 메시지는 흔히 40대에 경험합니다. 분석심리학의 대부인 융(C.G Jung, 1875~1961)은 ‘40’이라는 나이를 ‘인생의 정오’라고 표현했습니다. 산술적으로 보면 80까지 사는 인생에서 40이란 숫자는 정확히 중간에 있으며 인생의 반환점을 되는 시점입니다. 산을 올라 정상에 오르면 내려가야 하듯이 지금껏 앞만 보고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가 잠시 숨을 고리며 내리막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융이 말하는 인생의 정오는 ‘진정한 자기 찾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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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지금껏 찾지 못했던 진정한 자기를 찾으라는 말은 아주 멋진 말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거기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도움이 될 만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젊어 보이려고 하기 보다는 건강하려고 노력하라

중년의 나이에 거울을 보면 예전과 다른 자기를 보게 됩니다. 피부의 탄력이 떨어져 살이 처지고 주름이 늘고 검버섯이 생기기 시작하고 배 둘레는 계속 늘어만 갑니다. 왕년의 자기를 떠올리며 현실의 자기를 부정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이상한 건강음식을 섭취하고 성형수술에 집착하는 식의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젊은 사람과 힘 겨르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나이에 맞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젊음이란 외모와 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신체와 마음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며 자신을 발전시키려는 정신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젊음 자체보다는 건강에 노력을 기울이기 바랍니다. 하버드 대학의 베일런트(G. Vaillant) 교수에 의하면 중년의 행복은 신체적 건강과 관련이 높다고 합니다. 사실 건강해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중년은 자식을 키우고 있는데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오래 살지 못하면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담배를 끊고, 과도한 음주를 피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중년의 건강의 비결이자 행복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젊어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나이가 드는 것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건강한 중년을 위해서는 나이가 드는 것을 인정하되 우아하고 품위 있고 경험과 지식이 넘치도록 나이가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나이가 든다면 오래된 와인이나 위스키가 좋은 것처럼 연륜이 있는 멋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2) 내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보자.

중년의 나이, 뭔가 빠진 것 같고 무의미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즉 우리의 내면에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선 <의미 치료(logotherapy)>의 창시자인 프랑클(Victor Frankl, 1905~1997)의 이론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유대인이었던 프랑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평균 재소 기간이 3개월이고 그 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망하던 절망의 장소에서 그는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였고 다음의 세 가지의 가치를 실현한다면 그 인생은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창조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창조적 가치란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작가가 글을 쓰고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고 프로그래머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같은 창조적인 일은 그 사람만의 독특한 과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매우 의미 있는 삶이 됩니다. 창조적 가치는 뛰어난 예술가나 천재들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일기를 쓰거나 아이들과 새로운 방식의 놀이를 만들어서 하는 것도 창조적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누구나 가능합니다.

두 번째는 ‘경험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경험적 가치란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는 것처럼 이 세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를 즐기고 남녀의 사랑, 부모 자식의 사랑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아주 소중한 경험적 가치입니다. 최근 밝혀진 연구에 의하면 다른 사람과 관계가 좋은 사람, 친구가 많은 사람은 노년기에 행복을 누리고 장수할 가능성도 올라간다고 하니 다른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더욱 가지길 권합니다.

세 번째는 ‘태도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태도적 가치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마주쳤을 때 그 운명을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실패와 좌절, 상실과 헤어짐, 병과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서도 때론 의연하게 때론 고통마저 즐기며 때론 인생의 교훈을 얻고 때론 더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인간의 태도야말로 더욱 가치 있는 의미가 됩니다. 이렇게 의미를 찾아가 본다면 우리 인생에서 여유 있게 창조하고나 경험하는 상황뿐 아니라 역경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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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언가에 깊이 빠져보자

중년의 삶은 지금껏 내가 원해서 살았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조금이나마 진정으로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물론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시간의 일부, 내가 가진 돈의 일부라도 써서 나 자신을 위해 투자를 해보세요. 그러면 내가 더 행복해질 겁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즐기는 사람이 더 고수라는 것을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나의 재능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답니다. 꼭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좋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즐거울 테니까요. 무엇인가 새로 배우고 익히고 시작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일본의 시바타 도요(1911-2013) 할머니는 좋아하는 시를 써서 99세에 <약해지지 마>라는 시집을 처음으로 내기도 했어요. 99세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것은 아니죠?

 

무엇인가 너무 좋아서 깊이 빠지게 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때 우리는 흔히 ‘삼매경’에 빠졌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경험을 ‘flow’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flow’를 ‘몰입’이라고 해석합니다. ‘flow’는 원래 물의 흐름이란 뜻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한 번 흐름을 타면 역으로 거스르기가 어렵죠. 그래서 너무 좋은 것을 만나게 되면 헤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쭉 가버리는 거라는 의미에서 몰입이 된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에 의하면 이런 ‘몰입’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니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있던지 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 그것을 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것 하나쯤 가지고 있다면 인생은 훨씬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권유를 했는데요, 많은 분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합니다. 살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살다 보니 시간과 돈이 남아도 즐기질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즐겨야 할지 모를 때 시도해 볼 예시를 들겠습니다.

 

먼저 움직임과 통제기술을 익혀보세요. 내 몸의 운동 감각과 컨트롤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 것의 예로는 다양한 운동, 춤, 요가 같은 것이 있고 악기를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두 번째로 감각적인 즐거움을 느껴 보길 권합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귀가 즐겁고 좋은 그림을 보면 눈이 즐거우며 좋은 음식을 먹으면 입과 코가 즐겁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며 우리 몸의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에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지적인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얻어 보라고 권합니다.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한 자료를 찾고 관련된 정보를 뇌에 입력하고 응용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입니다.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점점 많이 알게 되면 그 분야에 고수가 됩니다. 요즘 말로 ‘덕후’가 되는 것이지요. 덕후가 되면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고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의 친교도 늘어납니다.

제가 드린 예시 이외에도 많은 즐거운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씩 시도해보며 정말 재미있는 나만의 놀이를 찾아 남은 인생의 기간이 즐거운 놀이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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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은 쇠퇴의 시작이 아닌 인생의 황금기

 

중년은 인생의 후반이기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가장 많은 것을 이루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직장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나이인 경우가 많으며 자식을 키우며 흐뭇하게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의무와 책임 그리고 인생의 유한함을 느끼며 당황하기도 하지만 지금껏 이룩한 성취와 지혜, 그리고 리더십을 가지고 후대를 이끈다면 중년은 쇠퇴의 시작이 아닌 인생의 황금기가 될 것입니다. 젊음에 집착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을 한다면 더욱 찬란하게 빛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 신동근 

마마라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정신과 전문의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겸임교수 역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미술치료학과 겸임교수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장

한국소비자원, 기업소비자전문가협회, 농심, CJ 자문의사

KBS 2TV 아침뉴스타임 <신동근의 힐링타임> 진행 (2015.7 ~ 2016.4)

KBS 팟케스트 <힐러들의 수다> 진행 중.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마라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병원 정신과 전문의, 외래교수 역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예술치료학과 겸임교수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역임,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장
대한임상예술학회 부회장, 농심, CJ, 기업, 소비자전문가협회, 한국소비자원 자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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