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영국의 작가인 골즈워디(John Galsworthy, 1867-1933)가 쓴 단편소설인 <두 야심이 빚어낸 비극>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편부 슬하에 두 아들과 막내딸이 살고 있었는데, 그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인데다가 폭력을 일삼곤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 자라주어서 두 아들은 좋은 직장을 갖고 가정을 잘 꾸리고 살게 되었고 막내도 예쁘고 참하게 자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막내딸이 집안도 좋고 장래가 총망한 남자와 혼담이 오가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이 더욱 심해진데다가 상대방 집안에서는 신부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몰랐던 까닭에 아버지로 인해 결혼이 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해결책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폭풍과 함께 엄청난 비가 내렸고 마을의 강은 범람하게 되었다. 그 날도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던 아버지가 그만 물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 옆에는 두 아들이 있었다. 아들들은 아버지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고 결국 아버지를 구하지 않았다. 그 후 아버지는 익사하고 장례를 치른 후 딸은 무사히 결혼은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도덕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이런 상황이라면 아버지를 구하겠는가 아니면 내버려두겠는가? 이 두 아들에 대해 우리는 비난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냥 모른 척 할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정답은 없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두 아들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마도 골즈워디 자신도 이해와 동정이 가지만 그래도 잘못이라는 것을 바로 소설의 제목에서 ‘비극’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 잠깐 아동학대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하여 아동의 건강,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폭력, 가혹행위 및 유기와 방임을 말한다. 아동학대의 종류로는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는 ‘신체학대’,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성폭행 등의 ‘성학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양육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방임’ 등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학대를 받은 아이들은 신체적으로는 여러 상처와 골절 등 신체적 손상 뿐 아니라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하며, 정신적으로도 잘 놀래고 지나치게 긴장해 있으며, 자존감이 낮고 불안하고 우울하며 공격적인 행동을 잘 보이고 또래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고 학업 능력이 떨어지며 자해나 자살시도를 하는 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 따라서 아동학대는 단순한 ‘가정 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적극적으로 도와서 해결해주어야 할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림_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1577-1599)_출처 위키미디어공용

 

오늘은 아동학대와 관련된 그림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인 시라니(Elizabetta Sirani, 1638-1665)는 학대의 피해자이자 학대자에게 살인으로 복수한 한 여인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녀가 바로 그 유명한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1577-1599)이다. 그녀의 한 많은 인생은 이러하다.

 

"이탈리아 로마에 프란체스코 첸치(Francesco Cenci, 1549-1598)라는 지체 높은 귀족이 있었다. 그는 매우 포악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두 아들과 딸이 있었고 아내를 사별한 후 재혼한 부인을 두고 있었다. 큰 아들 지아코모와 딸인 베아트리체는 첫째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었고 막내아들인 베르나르도는 둘째 부인인 루크레치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었다.

그의 딸인 베아트리체는 너무도 예쁘게 자라서 절세의 미인으로 성장하였다. 프란체스코의 사악한 성품은 아내와 자식들을 폭행하는 것을 넘어서 딸을 강간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나이 14살 때의 일이었다.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기 어려워 외부에 아버지의 학대를 알리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아버지는 잠깐 감금되었다가 풀려나서 더욱 더 폭행하곤 하였다. 딸과 아내가 또 다시 학대를 외부에 알린 것에 분개한 프란체스코는 결국 딸과 아내를 페트렐라 살토 성에 가둬버렸다. 감금이 된 때는 베아트리체의 나이 18살 때의 일이었다. 그 후로도 그는 계속해서 딸의 몸을 탐닉했다. 반복적인 성학대는 베아트리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분노와 복수심에 불탄 베아트리체는 계모와 오빠와 남동생과 두 명의 하인의 도움을 빌려 1598년 9월 9일 아버지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아버지를 독살하려던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자 이들은 망치로 아버지를 때려죽이고 실족사로 위장하기 위해 그를 발코니에서 밀어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 사건은 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졌다.

사실 아버지의 폭행과 반복적 성학대가 빚어낸 비극이었던만큼 정상 참작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고 또 프란체스코의 악덕을 잘 알고 있던 시민들의 탄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황 클레멘트 8세는 부모와 남편을 죽인 패륜으로만 정의하고 가담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교황에겐 이들을 죽여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어 면죄부까지 팔아야했던 교황청의 입장에서 첸치 가문의 엄청만 재산은 결코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고 이들 모두를 처단하면 그 재산이 모두 교황청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건이 있은 후 일 년이 지난 1599년 9월 11일 베아트리체와 그 가족들은 로마의 산탄젤로 다리에서 처형을 당했다. 큰 아들 지아코모는 사지가 찢기는 죽임을 당했고, 루크레치아와 베아트리체는 참수를 당했으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인 베르나르도는 재산을 몰수당하고 현장을 억지로 목격하고 다시 장기복역을 치르는 벌을 받았다.

당시 처형현장에는 절세의 미녀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넘쳤다고 하며 그 가운데에는 당대 유명한 화가인 카라바지오(Caravaggio, 1571-1610)와 구이도 레니(Guido Reni, 1575-1642)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카라바지오는 침수장면에서 영향을 받아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유대역사의 위인으로 우리나라의 논개처럼 적장을 죽인 용감한 여인이다)를 그렸다고 하며 레니는 아름다운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남겼다고 한다."

 

그림_카라바지오의<유디트>_출처_http://www.giornaledipuglia.com/search/label/Arte

 

원래 이 작품은 레니의 작품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여 레니의 작품이 아니고 레니의 제자였던 시라니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시라니가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를 보고 복사한 모작인 것이다. 작품 속의 베아트리체는 사형장에 끌려가다가 잠깐 뒤를 돌아다본 모습 같다. 큰 눈과 오똑한 코와 통통한 입술의 소녀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두려움보다는 포기한 듯 담담한 채 우수를 띠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을 그린 화가가 잘못 알려졌듯이 또 한 가지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 바로 ‘스탕달 신드롬’에 대한 것이다. ‘스탕달 신드롬’이란 뛰어난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각종 정신적 충동이나 분열 증상을 말하는 것으로 두산 백과사전에 보면 그 유례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Stendhal)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성당에서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던 중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경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일기에 적어 놓은 데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내용은 잘못된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이 작품이 레니의 작품이 아니란 사실을 둘째 치더라도 이 작품은 현재 산타크로체 성당이 아닌 로마 고예술 국립박물관(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에 있으니 논리가 맞지 않고, 또 스탕달이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감명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곳의 천장화와 벽화를 본 후의 느낌으로 이는 산타크로체 성당에 있는 볼테라노의 <시빌들>이란 작품 아니면 지오토의 벽화를 본 후의 감동일 가능성이 훨씬 많다는 것이 정설인 점에서 보면 이 유래가 틀렸다고 볼 수 있다. 스탕달과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가 연결된 것은 아마도 스탕달이 쓴 소설 <첸치가의 사람들(1839)> 때문에 그렇게 잘못 연결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잘못된 정보가 국내를 대표하는 백과사전에도 실리고,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소개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평론가는 이 작품을 보고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에 버금갈 정도의 명작이라고 하지만 이런 평가는 너무 과분하다. 베아트리체의 서글픈 삶으로 인해 동정심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은 나머지 이 작품을 너무도 감성적으로 본 것이다. 이 작품은 레니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색채와 인물의 생생함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속의 베아트리체가 명작으로 가슴 속에 남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과 함께 폭정과 학대에 대항한 여인이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약력_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겸임교수 역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미술치료학과 겸임교수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장
대한임상예술학회 부회장
저서) 포은 정몽주(맵씨터, 희곡)
역서) 하버드 의대가 밝혀낸 100세 장수법(싸이언스북스)
       증오(황금가지)
KBS 팟캐스트 <힐러들의 수다> 진행 중

 

 

신동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마라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병원 정신과 전문의, 외래교수 역임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예술치료학과 겸임교수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역임,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장
대한임상예술학회 부회장, 농심, CJ, 기업, 소비자전문가협회, 한국소비자원 자문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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