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의 향연

사진 픽사베이

과히 지금은 자기를 드러내는 맛에 사는 세상이다. 겸손과 겸양이 미덕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나를 누군가에게 어필하고 누군가로부터 호응을 얻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나를 낮추는 것보다 과감히 드러내야 인정받는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렇듯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바야흐로 나르시시즘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커머셜미디어의 대중화로 나르시시즘이 정당화되고 합리화되기에 적절한 구조도 한 몫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 고유의 개체성과 관련한 설명도 들어볼 만하다. 정신건강의학에선 특별히 개체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자기(self)’를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그 반대 극으로서 ‘대상(object)’이라는 표현도 자주 사용된다. 즉 기본적인 대인관계는 자기-대상으로 위시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이란 리비도, 즉 인간본성의 에너지가 대상보다는 자기에게 투자되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보다는 나에게 더 사랑을 주고 관심을 두며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상태인 것이다.

자기심리학을 주창한 Kohut는 나르시시즘을 리비도의 성숙되지 못한 단계로 보았다. 풀어 말하면, 어린아이의 리비도는 온전히 자기에게 향해 있어야 정상이나, 어른의 리비도는 자기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어느 상당한 양이 나뉘어 향해 있어야 정상이다.

즉 리비도가 성숙될수록 그 투자되는 방향이 서서히 자기에게서 대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 자기만 최고이고 자기만 인정받아야 하며, 심하면 자기를 위하여 타인을 기꺼이 착취하기까지 하는 껄끄러운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숙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대상,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상인 부모로부터 받는 공감empathy이다.

양육과정에서 적절히 공감 받은 사람은 성장하여 타인에게 공감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공감 받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인정받아야 살아갈 수 있으며, 자기만족을 지나치게 추구해서 결국에 가서는 대인관계를 망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페이스북에 자기의 일상-가장 화려하거나 관심을 촉발할 만한-의 모습을 올리고 타인의 반응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이 시대의 공감의 부재를 읽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김일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차병원 교수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조교수
한양대학교 뇌유전체의학(자폐) 석사
KAIST 뇌유전체의학(자폐, 조현병)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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