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과 나르시시즘

KBS 뉴스 화면 캡처

최근 정부가 감정 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의원들의 협조를 요청하였다.

기업이 고객의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감정 노동자라는 말은 흔히 일반인들이 쓰고 있는 말이다. 정부에서는 이번 개정안에서 직접 '감정 노동자' 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고객 응대 업무에 주로 종사하는 근로자' 를 실질적인 감정노동자로 보았다.

감정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항상 감정적인 노동에 노출된다. 사실 얌전한 손님들만 상대한다손 치더라도 기분을 맞추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피곤해질 법한데, 손님들이 소위 갑질을 하여 감정노동자들을 괴롭히는 경우도 빈번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재벌이 비행기를 개인적인 이유로 회항시키더니, 백화점 손님이 직원을 무릎 꿇리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사실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군인이 후임병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대기업이 하청업체에게 업무를 떠넘기고, 손님이 직원에게 억지를 쓰는 건 이전부터 지속되어 온 문제이다.

최근에 더 관심을 끌고 있을 뿐이다.

KBS 뉴스 화면 캡처

왜들 이리도 갑질을 하는 것일까?

어느 서적에서는 한국 사회의 위계질서가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 뿐 아니라 사람 자체의 높고 낮음을 내포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한다. 사회 전체에 남아있는 봉건적인 잔재들 말이다. 군대가 그렇고, 학교가 그렇다. 외형적으로는 서구에서 베껴 온 합리적인 시스템이 보이지만, 전근대적인 신분 관념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행태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갑질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12년에 이미 갑질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었다.

연구의 결과는 사회경제적 위치가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상을 받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부정행위를 저지른다든가, 교차로에서 보행자가 건너가는 것을 덜 양보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갑질의 창궐은 특정 사회구조의 문제 뿐만이 아닐 수도 있다.

갑질을 하는 사람들 개개인은 어떠한가?

주위를 둘러보자.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확인시켜야만 안심을 한다.

행사에서 앉게 되는 자리의 위치, 소개할 때 불리는 이름의 순서가 조금만 바뀌어도 화가 난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자신이 받고 있는 대우가 형편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자기애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병적인 자기애를 자기애적 성격장애라고 하며, 영어로는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라고 한다.

이 용어의 원형이 되는 narcissism(자기애)은 프로이드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버린 그 청년)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자신은 특별하고,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과장된 느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사람들은 아주 쉽게 자존심의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과대성과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하게 되며, 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타인이란 단지 만족과 끊임없는 찬사를 제공해주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이들이 더 가혹하게 타인을 착취하고 거리낌없이 갑의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애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권력자들도 상당 수 있다.

하지만 크게 성공하더라도 이들은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해 충만감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특권의식만 커지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환경적인 문제가 있을까?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근래 각광받고 있는 자기심리학을 보면 자기애가 심한 사람들은 대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욕구를 제대로 충족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가 적당한 공감적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자라나면서 과도하게 좌절스러운 일들을 겪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충족받지 못한 결핍이 성인까지 남아있어, 단단한 자기가 형성되지 못해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받는다.

누구나 사연은 있다. 자기애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도 결국은 어린 시절부터 상처받은 자기를 보호하는 성숙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남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표현방법이 갑질이라는 결과로 이슈가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참고문헌>

1.서민. "갑질의 추억." 인물과사상 (2015): 6-9.

2.김찬호. "갑을관계의 감정사회학." 안과밖 38 (2015): 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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