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에 대하여

사진 : KBS2

'여혐(여성혐오)'이 유행인 요즘이다.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냈던 모 연예인은 사람들의 기대 혹은 우려와는 달리 여전히 승승장구 하고 있고, 몇 달 전에는 남성잡지 `맥심'에서 여성을 납치, 살해하는 컨셉의 화보를 실어 거센 항의를 받아도 개의치 않다가 미국 맥심 본사의 비난을 받고나서야 전량을 회수하는 소동이 있었다.

여성이라면, 그다지 유별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조차도, 일상에서 직간접적으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의해야 하는 상황을 시도 때도 없이 마주한다. 쏟아지는 여성혐오 관련 뉴스들 가운데에서 정작 가장 무력감이 들었던 소식은 몇 달 전 달라이라마가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 여성 혐오발언("여성이 달라이라마가 되려면 매우, 매우 매혹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쓸모가 없을 것")이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상징적인 성인(聖人)조차도 가부장제로 물든 캔버스 위에서 진리라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진리에서 여성은 과연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여혐 이슈가 뜨거운 만큼이나 페미니즘 관련 책들도 많이 출간되고 있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새하얀 속옷 몇 개가 빨랫줄에 걸려있는 표지의 <빨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책은 페미니즘과 관련한 중요한 고전들을,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캐롤 길리건의 <다른 목소리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등 원전을 쉽게 독파하기 어려운 페미니즘의 대표작들에서부터 프로이트의 <도라>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저자이며 저널리스트인 스테파니 스탈은 갑작스레 찾아온 임신과 양육, 남편의 무관심, 그로 인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면서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에서 고뇌하던 중, 다시 모든 것의 처음으로 돌아가 페미니즘 고전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저자는 자신이 오래전 졸업한 바너드 여대로 돌아가 자신보다 훨씬 어린 대학생들과 함께 페미니즘 고전 수업을 청강한다. 그리고 수업에서 접한 20여 권의 페미니즘 저서들을 자신이 삶에서 직접 마주하는 갈등과 연관 지어 풀어낸다.

수업에서 살펴본 첫 고전은 초기 기독교가 창세기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다룬 일레인 페인절스의 <아담, 이브, 뱀>인데,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어머니되기'의 과정과 의미에 대하여 고민한다. 인간의 원죄를 속박과 타락의 상징으로 보고, 이를 벗어나 구원받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복종과 회개를 주장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는, 인간 고통의 이유와 해결방법을 제시하였다는 점과 권력자들에게 매력적인 주장이라는 점에서 교회의 선택을 받아 기독교의 중심교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의 의견을 따르게 되면 인간은 죄책감을 반드시 짊어지게 되지만, 고통의 지속을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막을 수 있다는 통제감(a sense of control)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통제감은 인간의 근원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인간이 혐의를 돌릴 수 있는 무언가-원죄, 특히 이브-가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인간들 스스로를 희생자의 위치에 놓는 자기연민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온전한 죄책감만 느끼는 것보다는 삶을 좀 더 견딜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와 함께 출산과 월경 등 먼 옛날에는 설명되기 어려웠던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들은 자연화, 신비화되어, 이브의 '원죄'로 인해 모든 여성들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으로 규정되었다.

그래서 '어머니되기'는 여성이 '자연스럽게' 수행해야 하고, 또 수행할 수 있는 역할처럼 여겨진다. 마치 '어머니되기'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아담, 이브, 뱀>을 소개하면서, 자신 역시 딸 실비아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갓난아이를 다루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엄청나게 느꼈음을 고백하며 '어머니'라는 역할이 자신에게 얼마나 맞지 않는 옷 같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저자가 양육을 해내는 것은 당연히 여기면서도 남편 존이 양육에 조금만 기여해도 대단하다고 칭송할 때 얼마나 허탈했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페미니즘의 어머니로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권의 옹호>를 통해서는, 오랜 세월 지속된 여성의 속박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성에 대한 교육권의 필요성이 최초로 제기된 배경을 살펴본다. 울스턴크래프트는 교육이야말로 여성 속박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자신이 속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순응하게 된다. 또한 인지하더라도 그 기제와 극복방법을 알기가 어렵다. 문맹을 포함한 지적 무능은, 부당함의 해결을 위한 도구를 손에 쥐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교육받지 못한 결과로 인해) 단순한 일만 수행가능하다는 사실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여성에 대한 억압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어 악순환에 기여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를 간파하여, 억압당하는 여성이 물고기 한 마리-여자가 즉각적으로 얻지 못하고 있는 것-를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기 낚는 법-부당함을 극복하고 권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즉 교육-을 요구하여 억압 극복의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저자가 청강한 페미니즘 고전 수업에서는 프로이트의 <도라> 등 정신분석 영역과 관련한 페미니즘 주제들도 다룬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가 내놓은 남근선망, 도라의 증상에 대한 해석 등은 수강생들의 분노를 산다.

그러나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 축적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은, 프로이트의 생전에도 스스로에 의해 수정이 거듭되었으며, 이후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비판, 발전되어오고 있다. 남근선망의 경우, 이를 본질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여성의 유전자에 각인된 수정될 수 없는 속성처럼 여기는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포착' 했다고 하는 남근선망은, 인간이 애초에 가지고 있는 특성이 아닌 가부장제의 문화적 결과물중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가부장제의 공기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살면서 남성에게 마치 당연한 것처럼 주어진 특권을 갈망, 질투하거나 벗어나려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에 남근선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면 이 개념은 예를 들어 라깡이 페니스(penis)와 팔루스(phallus)를 구별했듯이 앞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에서 다루는 저작들이 서문에서 정희진이 지적한대로 백인 주류 페미니즘에만 집중하고 다른 다양한 페미니즘을 다루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이 책이 미국에 거주하는 백인 여성인 스테파니 스탈이라는, 자기 자신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자전적으로 돌이켜보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고민을 덧붙여 나간 작업이므로 이를 다소 감안해야 하겠다. 저자가 자신의 삶을 재료로 하여 페미니즘에 대한 효과적인 성찰을 하였듯이 각자 어느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스스로의 고민과 페미니즘을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삶에서 지속적으로 해나가고 `나의 페미니즘'을 만들어나간다면, 수없이 다양한 형태의 페미니즘`들'이 꽃을 피우며 개인의 성숙, 그리고 타인과의 연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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