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29살 사회 초년생 여자입니다. 저는 특별한 이유 없이 늘 울적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힘들 때면 남들보다 더 크게 우울해합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왕따나 폭력을 당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제 기질이 우울하고 남을 많이 신경 쓰고, 슬픈 기분을 많이 느끼는 기질인가 보다 하고 살았습니다. 좀 예민한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최근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성향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생각 강박증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싹싹하지 못해서 주변 사람들이 저를 안 좋게 볼까 봐 늘 위축되어 불안감 속에 매일을 보냅니다. 리액션하거나 말하는 것도 늘 조심스럽고 힘듭니다. '사회생활은 다 그런 거지 하며.' 스스로 다독이다가도 누가 말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눈치를 주면 그 사람이 너무 싫어집니다. 상대방이 크게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 순간에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뜨거워지면서 그 마음을 다스리는 데 온 신경을 끕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해야 하는 그 상황이 너무 싫어요. 

직장에서 사람들 기분을 파악하느라 늘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여기에서 그쳤으면 괜찮았을 텐데 미래에 대한 걱정이 함께 들어 더 힘듭니다. 지금까지 삶이 우중충한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 내가 앞으로 똑부러지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더 우울의 늪에 빠진 게 문제입니다. 

매일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저 사람은 저런 것도 하네. 멋있다. 난 게을러서 못하고 있는데. 아니 앞으로도 영영 못 할 수도 있겠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의 직장생활이 두렵고, 오지 않은 미래인 결혼, 육아, 죽음까지 상상하다가 차라리 누워만 지내는 환자가 되고 싶다는 아주 무력하고 바보 같은 생각도 종종 합니다.

또 이 세상이 사실 가상현실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합니다. 현실이 힘들어서 부정하는 제 마음이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로 이어지는 거겠지요. 몸이 피곤할 때는 자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밝고 삶이 술술 풀리는 것 같은 사람을 보면 저랑 아예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 비해 저는 현실적으로 뒤처져 있는 것 같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아서 슬픕니다.

저는 지금 저를 겨우 붙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혼자 둥둥 떠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삶만을 구경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일상에서의 소소한 즐거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모래알 잡든 흘려보내는 느낌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런 느낌이 꽤 오래된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기가 힘듭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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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직장생활에서 느끼시는 타인에 대한 의식으로 인한 에너지 고갈, 현재의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 우울과 무기력한 느낌으로 많이 힘드신 상황이군요. 삶이 늘 회색빛 같은 느낌이었는데 삶에 드리운 먹구름이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아 막막하고 길을 잃은 느낌이실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은 사람이 긴장과 불안을 경험합니다. 사회생활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면서 모르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이고 잘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며 늘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평가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도 적고 업무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나이와 경험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평소 긴장이나 불안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회사생활에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불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구나 평소에도 다른 사람보다 불안을 더 많이 느끼고 예민하거나 섬세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더 긴장하고 에너지를 많이 쏟게 되겠지요. 

막내 신입사원으로서 싹싹한 이미지를 줘야 한다는 부담감, 업무에서도 최대한 실수하지 않고 빠릿빠릿한 인상을 심어 줘야 한다는 부담이 마음에 자리합니다. 그래서 본인의 원래 성격이나 기질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회에서, 조직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부합하고자 애쓰기도 하지요. 이렇게 원래의 나와는 다른 회사에서의 자아를 갖고 사는 것을 요즘에는 ‘사회적 페르소나’, 즉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산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연자님도 아마 이런 페르소나를 쓰고 평소의 사연자님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많이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내가 좋은 것, 원하는 것보다 직장생활에서 타인들로부터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느끼면서 그분들이 원하는 기준에 본인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계시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사연자님의 마음속에는 ‘사회 초년생은 이래야 해.’라는 생각 혹은 ‘성공적인 직장인의 모습’,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연자님이 그 모습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 같을 때는 실망스럽기도 하고, 내가 그 기준을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기력감, 자괴감에 빠지시는 것입니다. 남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자신을 낮게 평가하고 더 위축되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성공한 삶, 모범적인 직장인의 모습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고 도달할 수 없는 기준점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지는 않으신지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치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여러 단계를 거치는 연속적인 것이 아닌, 한 번에 순간 이동하거나 점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이런 비현실적인 기대감이나 목표 설정은 ‘완벽주의적 성향’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삶이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맡겨진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부여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무기력해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또, 앞으로도 삶의 단계마다 말씀하신 것처럼 결혼, 육아, 죽음 등의 중요한 사건들이 있을 텐데 그때도 본인이 원하는 기대치나 이상적인 모습에 결코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우울과 불안이 함께 찾아오게 됩니다. 삶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 내 삶을 잘 감당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삶이 언제나 완벽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능력이나 자원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아 계획이 틀어지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에는 노력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찾아오는 사고나 사건,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삶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고, 불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이 그런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 역시 삶의 한 부분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삶이 완벽하고 쉽게 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연자님께서 비교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삶이 술술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의 어려움이나 삶의 무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록 그 무게나 종류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요. 사연자님께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삶은 자신의 삶만큼 내밀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언뜻 더 쉽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의 삶이 현재 정말 쉽게 풀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흐름 속에서 누구나 언젠가는 자신만의 파도를 맞이하고, 파도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때로는 맞서 싸우기도 하면서 삶의 여정을 이어 갑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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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삶의 본질적 속성을 이해하고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삶을 과정적, 연속적인 것으로 보시면 어떨까요. 현재 내 모습이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아기들이 첫걸음마를 시작할 때도 결코 한 번에 걸을 수는 없습니다. 조금씩 일어나는 연습을 하고 엉덩방아를 수없이 찧고, 다리 힘을 기르며 두 발로 섰다가 마침내 한 발씩 내딛습니다. 이렇게 넘어지고 엉덩방아를 찧는 과정이 실패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장과 배움의 과정이지요. 실수와 시행착오가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연자님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할까 봐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지 않으신가요? 실수나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더 잘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과할 때는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고 행동과 생각을 제약하는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실패할 바에는 아예 도전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연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차라리 누워만 지내는 환자가 되고 싶다.’라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현재 경험하는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하시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막연하게 ‘싹싹하고 일 잘하는 신입사원’보다는 ‘상사분들의 이야기에 한마디만이라도 리액션하기’, ‘아직 친하지 않은 팀원에게 먼저 점심 먹자고 하기’처럼 현실적이고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목표로 삼고 실천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업무적, 관계적으로 도움받을 수 있을 만한 분을 살펴보시고 관계적 자원을 만들어 가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동료든 선배든, 회사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긴장감과 불안이 줄어들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미래의 일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관련해서는, 지나치게 먼 미래에 초점을 두지 마시고 지금 주어진 일상과 현실에 더 집중하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운동,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독서나 자기 계발,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취미생활 등을 통해 현재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 지금의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나가시는 것은 어떨까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일을 너무 깊이 생각하다 보면 불안은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최선을 다한 오늘의 하루에 만족하고 언젠가 이 하루가 나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되리라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이나 삶에 대한 불안, 무기력감이 계속되신다면 인지행동치료나 상담을 통한 도움을 받으시는 것을 고려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는 불안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사회적 상황에서 경험하는 비합리적 신념을 살펴보고 건강한 생각과 행동으로 바꾸는 데 효과적인 치료법입니다. 사연자님이 불안과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고 활기찬 일상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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