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20대 중반이고, 2년 전 제가 인생에서 각별하고 가장 친하다 생각되는 형과 다른 분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 형은 잦은 출장으로 인해 한국에 많이 없던 분이라서 한 번 오면 더욱 각별하게 생각되곤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과거 2년 전 연인에 대한 죄책감과와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힘들어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날 술을 마시다 친한 형 분께서 노래를 하러 가자고 하셨고 그곳은 다름이 아닌 다른 이성 분들을 불러 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막연한 호기심과 언젠간 한 번쯤 일어날 일이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안일한 생각으로 다시 술자리를 이어 갔고, 갑작스러운 제안이지만 형들의 의견을 듣고 괜찮다고 말하며 승낙했습니다. 하지만 심적으로는 거부감이 들었고 그 때문인지 제대로 된 관계를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저는 남자로서의 자존심과 성기능에 대한 불안함과 불만족, 이 상황에 대한 호기심과 유혹, 죄를 짓고 있다는 죄책감 등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후로 그 형은 또 다른 유흥을 권유하였고, 저는 거절하기엔 너무 먼 강을 건넜다 생각하며 한 번 더 형의 권유에 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역시 심리적인 거부감이 들면서 그 순간부터 모든 게 다 혐오스럽게 느껴지고 구역질이 났습니다. 결국 거기서도 제대로 된 관계는 시도도 하지 못한 채 나왔지만, 그런 일을 시도했다는 그 자체에 역겨움과 혼란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그런 유흥 쪽은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게 새로운 인연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인연이 생긴 기쁨도 잠시, 잊혔던 그날의 기억과 후회가 다시 물밀 듯이 휘몰아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싫고 화나고 역겹고, 짜증 나는 그 상황 때문에 제 삶의 모든 순간, 일 분 일 초를 죄악감과 죄책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여 애인이 그런 경험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가도, 그 후에 겪게 될 상황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런 과거의 일들과 지금의 심정을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마음만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를 했다는 거 자체가 저를 죄책감과 죄악감에 시달리게 하고, 특히 애인에게 죽도록 미안합니다. 그래서 더욱 잘해 줘야지 하면서도 시시때때로 죽음이 생각 날 만큼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우며 스스로에게 화가 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사람을 속이는 것도 죄책감이 들고, 저를 믿어 주는 신뢰 관계를 이미 깨 버린 것만 같아 너무 미안합니다. 한편으론 이런 사실을 다 털어 놓고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빌고싶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 같아 속으로만 묵혀 두고 있지만, 너무 괴롭습니다. 문득문득 이 인생의 큰 오점을 지울 수 없다는 생각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하고도 어떻게 평온하게 살아가는지 이해도 안 되고요. 애인에게 너무 미안하고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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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사연자님께서 올려 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현재 20대 중반의 혈기 왕성한 나이로, 2년 전 처음으로 유흥을 접했던 경험으로 인해 깊은 죄책감과 함께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느끼시는 듯하여 걱정이 됩니다.

사실 사연자님께서 고민하시는 문제가 굉장히 사적인 성적인 영역이고, 개인의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라 뭐라고 조언을 드리기가 조심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또한 개인의 도덕적 수준이나 판단 기준, 행위 등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자신의 도덕적 기준이나 양심에 비추어 스스로가 판단할 문제에 가깝기 때문에 과연 객관적인 입장에서 답변을 드리는 것이 가능할지 자문해 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연의 답변에서는 감히 사연자님께서 고민하시는 부분에 대해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거나 사연자님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다’ vs. ‘그르다’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사연자님께서는 이미 유흥이나 성을 돈으로 거래하려 했던 과거의 행위 자체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 비도덕적이고 잘못된 행위였다는 뉘우침과 판단을 하고 계신 상황이기에, 여기서 사연자님의 도덕성을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일은 딱히 의미도 없을뿐더러 그럴 만한 자격 또한 필자에게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그러한 접근보다는 고전적이지만 워낙에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S. Freud)의 성격 구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통해 사연자님 스스로의 성격이나 심리 상태, 행위 동기 등에 대해 돌아보고 이해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프로이트는 우리 인간의 성격이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우리의 인격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그중 먼저 원초아에 대해 살펴보면, 원초아란 충동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원초적 욕구로서 쾌락 원리를 추구한다고 봅니다. 즉, 본능에 충실해서 즉각적인 만족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차적 사고나 자기중심적 사고, 비논리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되죠.

다음으로 현실 원칙의 지배를 받으며 정신계의 중심에 자리한 에고는 위로부터는 초자아의 감시와 명령을 받고, 아래로부터는 원초아의 충동과 욕구, 그리고 외부로부터는 현실 세계의 요구 사이를 중재하고, 이성적으로 판단 및 행동하며 현실에 적응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초자아란 개인의 양심이나 도덕성 등의 사회규범을 내재화한 것으로, 양심과 자아 이상(ego-ideal)의 하위 체계를 가지며, 그중 양심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 처벌이나 비난받는 경험을 통해 죄책감을 내면화하고 본능적인 욕구를 억제하도록 발달되며, 자아 이상은 옳은 행동에 대한 긍정적 보상을 받는 경험으로 형성됩니다. 

이렇듯 인간은 학습한 사회 가치와 규범을 내재화하면서 초자아를 구성하는 양심이나 도덕, 이상적 자아 등을 발달시켜 나갑니다. 그러면서 인간이라면 ‘해야만 하는 것’, ‘해서는 안 되는 것’, ‘스스로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습’ 등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세워 나가게 되고요. 그리고 스스로가 세웠던 도덕적·이상적 기준이나 가치, 양심 등에 비추어 못 미치거나 어긋난 행동을 하려 할 때, 혹은 하게 됐을 때 이를 감독·통제하고 비판하며 처벌하기도 하는 것이죠.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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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우리의 성격과 인격, 행동 등은 원초아와 자아, 초자아가 각각 어떻게 기능하고, 서로 상호작용하며, 균형을 맞추어 가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두 기능에 비해 초자아가 너무 거대하거나 그 기능이 과도하게 작동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조차 너무 엄격한 도덕성이나 이상적 기준 등을 적용하며 심판하려 들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거나 그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난 경우에도 ‘나쁨’이나 ‘흑(黑)’으로 규정하고 공격하거나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죠.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자신이 되었을 때, 스스로를 더 이상 ‘백(白)’이 아닌 ‘흑(黑)’으로 규정하고, 자기 존재 가치까지 뿌리째 흔들리면서 회의감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흑’ 아니면 ‘백’, ‘나쁜 존재’ 아니면 ‘좋은 존재’로만 양분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관점이나 올바른 접근법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인간의 성격 구조가 원초아와 자아, 초자아 의 세 영역으로 구성되고, 인간 자체가 개별적인 유전적 특성이나 양육 환경,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인간관계 경험, 사고와 감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존재이듯이, 우리의 내면 안에는 좋기도, 좀 별로이기도, 안 좋기도 한 수많은 결들이 켜켜이 쌓여서 이루어진 총체적인 존재로 인식하려는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 어떠한 빈틈이나 흔들림, 미성숙함과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존재, 완벽한 인간을 나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로 설정해 놓는다면, 매 순간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고 검열하며 스스로를 심판대에 세우고 가혹한 처벌만을 기다리며 살 수밖에 없을 테지요. 

 

비록, 사연자님께서 그동안 세워 놓았던 도덕적 기준이나 자아 이상에서 어긋난 행위를 한두 번 했을지언정 사연자님의 존재 자체와 그간 일구어 왔던 모든 인생의 순간을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너무나 가혹한 자기평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사연자님의 초자아가 그동안 어떠한 성격 발달을 거치며 형성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초자아나 사회적인 규범이 어떻게 내재화되었는지, 그리고 사연자님의 삶에서 어떻게 기능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보는 계기로 삼으신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너무 엄격하고 완벽해서 그것에 미치지 못하면 그 대상이 누구든 너무나 공격적이고 파괴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좀 더 적응적이고 현실적이며 유연한 방향으로 초자아의 기능을 한번 조정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연자님께서 지나간 과거에 너무 매몰되어 스스로를 과도하게 자책하기보다는 과거의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데 초점을 맞추신다면 어떨까 합니다. 즉, 이제부터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욕망을 다스리고, 또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을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실행에 옮겨 보는 것이죠.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말이죠. 그렇게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서 성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부족한 스스로와 타인을 가혹한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포용할 수 있는 가슴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사연자님께서도 스스로를 조금 더 포용해 주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게 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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