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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이웃, N번방과 박사의 비밀 - 2편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3.26 07:59

[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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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하나. 사적인 하나. 그리고 비밀의 하나."

영화 [완벽한 타인]의 마지막 장면에 떠오르는 의미심장한 글귀이다. 영화는 40년지기 친구들의 부부 모임이, 술자리에서 우연히 시작한 스마트폰 공유하기 게임을 통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과정을 숨 가쁘게 보여준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비밀이 있었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각자만의 비밀의 삶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삶을 세 개로 분열시키는 힘은 타인으로부터 나온다.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본능적인 욕구를 포기하거나 감춰야만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화해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면의 양심조차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타인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와 역할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위험한 환상을 분리시켜야만 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각자의 위험한 환상을 분리시키는 수단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이다. 용인될 수 없는 욕구와 환상은 스마트폰이라는 놀라운 도구를 통해 분리되어, 일상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안전하게 우회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은 각자에게 제3의 삶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박사와 N번방의 범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억압된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던 수단 역시 스마트폰이었다. 텔레그램의 강력한 보안성과 익명성 밑에서 그들은 비밀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공적인 삶의 평범성을 간직한 채, 분열된 비밀의 삶 속에서 뒤틀린 욕구를 배설하고 있었다.

일상 속 사회적 관계와 철저히 분리될 수 있는 그 공간, 철저히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현실에 닿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그 공간에서는, 억눌린 욕망이 살아있는 악귀로 현현할 수 있었다.
 

사진_픽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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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피해자들의 비밀을 이용해 착취했다. 그는 먼저 속임수와 사기를 이용해 피해자들로부터 개인정보와 민감한 영상을 얻어냈다. 그런 다음 그것을 지인들에게 공개하겠다며 협박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영상을 공개하지 않는 대가로 피해자들로부터 얻어낸 것은, 더 민감하고 수치스러운, 더더욱 공개할 수 없는 영상들이었다. 그야말로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N번방과 박사방은 탈출할 수 없는 지옥에 다름없었다.

박사는 피해자들에게 정말 차마 상상조차 힘든 일들을 지시했다. 피해자들이 자신의 말에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사는 피해자들이 영상 유포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것, 공적이고 개인적인 삶이 파괴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실 박사 스스로가 그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비밀의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박사는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여전히 익명성 밑에 숨고 싶어 했다. 박사라는 자아로 분열시켜뒀던, 자신의 수치스러운 비밀이 조주빈이라는 공적인 삶을 무너뜨릴까 두려워했다. 실상은 이미 검거되어 끌려가고 있는 와중인데도 말이다.

이번에 언론이 그의 개인 신상을 낱낱이 공개한 것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 의해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한 행위였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사회적 존엄성을 파괴하겠다는 협박의 논리로 그들을 착취했던 박사의 행적을 돌이켜보고 있노라면, 언론의 신상공개가 사뭇 후련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조주빈이라는 인물의 사회적 존엄성을 무너뜨림으로써, 그간 피해자들이 느꼈을 공포를 아주 조금이나 되갚아 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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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텔레그램과 비트코인 거래가 자신의 이중생활을 완전히 지켜줄 것이라 착각했었다. N번방의 수많은 이용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일상 속 사회적 관계를 N번방의 철저한 보안이 완전히 보호해줄 것이라 착각했다. 그 착각 속에 갇혀, 그들은 풀어놓아서는 안 될 뒤틀린 욕망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렇다면 텔레그램이 문제였던 것일까. 스마트폰에 익명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일까. 결코 그럴 수 없다. 그건 살인 사건의 범인을 식칼로 지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화 [완벽한 타인]을 다 보고 나면 왠지 모를 서늘한 공포가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영화가 어떤 진실 하나를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폭로하고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비밀의 삶이 있다-같은 뻔한 사실이 아니다. 그보다 이 영화는 우리의 착각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를 무섭게 폭로한다. 우리가 위험한 비밀을 몰래 감추고, 개인적인 삶과 완전히 분리했다고 믿는 그 착각이 얼마나 허술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불과 하루 저녁만에 모든 것이 산산이 파괴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비밀을 안전하게 분리시켰다고 믿었던 그 알량한 수단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날카롭게 짚어준다.

영화에서 문제의 근원이 스마트폰이 아니었듯, N번방 사건도 텔레그램이 범인이라고 할 수 없다. 핵심은 그들이 텔레그램 속에서라면, 비트코인 거래를 통해서라면 자기들 마음대로 욕망을 드러내도 된다고 착각했다는 사실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품은 욕망이 '걸리지 않을 것'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희생자들을 집어삼켰던 것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박사, 갓갓 같은 몇몇의 어떤 무서운 괴물이 난데없이 나타났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그들, 평범한 수만의 회원들, 평범한 우리 곁의 누군가가 품었던 어리석은 착각 속에서 빚어진 비극이었다. 

이번 사건이 드러낸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면, 아무 일이나 할 수 있다" "걸리지만 않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와 같은 반사회적 인습이 평범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습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텔레그램 강간방 사용자들에게 그들의 착각이 얼마나 알량했는지를 폭로해줄 차례이다. 익명성의 비호 아래에서라면 마음껏 악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부숴줄 차례이다. 상세한 신상공개와 자비 없는 엄정한 처벌로, 그들의 비밀을 그들 스스로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장판 밑에 숨겨둔 더러운 쓰레기는 결국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명확히 되돌려 줄 차례이다. 

 

인류의 역사는 수천 년간 잔혹함과 함께 해왔다. 아마 앞으로도 잔혹한 범죄가 영원히 사라지리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슬프게도 우리에게 잔혹한 파괴의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결코 그 본성을 점점 더 크게 키워오는 방향으로 흘러오지 않았다. 인류는 인종청소와 핵전쟁을 겪으며, 제대로 갈무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본성이 우리 존재를 완전히 파괴하고 말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성숙해나간다는 과정은, 우리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번영할 수 있는 존재, 즉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콜버그(Kohlberg)는 도덕성 발달 이론을 이야기하며, 유아의 처벌받지 않기 위한 윤리가 점점 나이를 먹으며 타인의 관점을 내면화하는 윤리로 나아가야 하고, 그래야만 최종적으로 보편적인 양심과 사회적 윤리에 의거한 도덕성으로 발달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적 윤리를 확립해가는 과정은 인간 존재가 통합하고 번영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 윤리의 획득은 결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덮어놓기에 있지 않다. 반사회적 욕구를 몰래 숨기고 감춰서 분열시키는 데에 있지 않다. 성숙해나가기 위해서는 감춰둔 욕망을 직시하고 반드시 제대로 갈무리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운영자에 국한한 수사가 아니라,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라며 광범위한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필요하다면 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외에도 특별조사팀을 구축해야 한다"라며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N번방과 박사방을 비롯한 성 학대 사건은, 시대를 역행하는 우리 사회의 검은 면을 보여주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구토와 두려움을 참아가며 취재한 언론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제는 분명히 드러난 이 추악한 비밀을 향해, 그리고 아직도 채 드러나지 않은 비밀들을 향해 우리 사회가 분명한 모습을 보여줄 때에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은 이런 음성적이고 반사회적인 욕구의 장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야만 한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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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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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3123 2020-04-17 23:32:37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비밀, 이중적인 생활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사생활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꼭 지켜져야하는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런 사생활의 영역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비밀번호가 달린 일기장 정도. 이 글에서 나온대로 텔레그램이나 다른 매체가 잘못이었다기 보다 그것을 악용한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국민이 사회적 윤리를 갖기 어렵다고 하지만 그 이상이 실현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삭제

    • 조윤주 2020-03-28 03:11:42

      너무 멋진 통찰력이십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자기 안의 그런 파괴적 본성을 익명성과 비밀에 내어주지 말고 잘 다스려나가아 하고 본성대로 행동한 자들은 책임을 져야겠죠 완벽한 없으니까요.   삭제

      • 주이 2020-03-26 12:48:47

        공감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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