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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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조직을 안전하게 느끼고 계신가요? 우리 사회에는 대형 재해나 조직에서 일어나는 대형 산업 사고, 직장 내 괴롭힘, 성범죄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미디어의 발달로 다양한 사고들을 더 빠르고 강렬하게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정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데요, 당사자의 정신적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가 2차 후유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오늘은 조직에서 발생하는 트라우마에 대해 알아보고 그 대처법을 나눠 보고자 합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간접적으로 참사를 경험한 이들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내용이 전해졌습니다. 유가족과 지인, 목격자, 사고 대응을 위해 현장을 지킨 경찰, 소방, 응급요원, 봉사자들, 기자, 인근 상권의 시민들은 물론, 미디어나 메신저를 통해 현장의 정보를 간접적으로 접한 많은 시민들도 우울, 불면 등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트라우마는 자연재해나 사고, 폭력 등 생명에 위협이 되는 사고를 겪은 후에 겪는 신체 정서적 반응입니다. 스트레스를 넘어 정신적인 충격으로 남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트라우마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지는데요, 큰 사고를 겪은 후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고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며, 사건 후에도 계속해서 해당 경험이 떠오르는 재경험을 통해 우울, 불안, 공포, 슬픔 등을 느끼게 됩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한 달 반쯤 됐을 때, 사회부 기자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괜찮아?”하는 내 질문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거나 밤마다 악몽을 꾼다는 얘기를 들려준 후배들이 있었다. 다른 아이템을 취재하다가도 갑자기 관련된 생각이 밀려오면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아 울었다는 동료도 있었다. 당시 이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 심리적 ‘트라우마’의 증상일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 방송기자 2023년 1·2월호 제70권 中

 

조직에서도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조직원 전체가 정서적인 충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고 간접적으로 소식을 접한 경우에도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으며, 직장 내 괴롭힘, 성범죄 등 개인이 경험하는 충격이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외상 경험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어 업무 수행 능력과 생산성이 저하되거나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강력한 감정이 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심리학자 Gibbs는 이러한 사건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을 때, 사건의 빈도와 영향력이 증가됨에 따라 만성적인 건강 문제가 야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Nishith, Mechanic, & Resick은 트라우마가 예민함, 불안, 초조, 분노, 무력감, 우울감과 같은 심리적 반응에서부터 소화 불량, 두통, 면역계 질환 같은 신체 증상,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등의 인지 증상까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지요.

 

§트라우마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재경험’하는 것

트라우마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재경험’하는 플래시백 과정에서 생겨나는데요, 예측하지 못한 충격적 사건이 우리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의지로 조율하기 어려운 뇌의 신경물질의 변화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죽음, 심각한 상해, 성폭력 등 생명이나 신체, 정신의 안위를 위협하는 충격적인 사건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정신적 항상성이 깨지기 때문이지요. 

2006년 미국국립보건원(NIH)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트라우마는 뇌의 세 영역인 뇌간, 대뇌변연계, 대뇌피질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뇌변연계에 있는 해마와 편도는 기억과 감정을 처리하고, 해마는 우리가 겪는 수많은 경험 중 시간과 공간, 감정을 중심으로 기억할 만한 일을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의 뇌에서는 해마의 부피가 줄어들고 해마의 활동이 감소해 뇌는 실제 사건과 기억을 구별하기 어렵게 된다고 합니다. 편도체에 저장되는 감정적 기억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파편화되어 저장되기 때문에, 편도체에 저장된 기억이 자극되면 극도의 불안, 공포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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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직업 환경에서 트라우마를 건강히 다루며, 심리적으로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조직원 개개인이 스스로 마음 건강을 살피고 스트레스를 낮추려는 작은 실천들을 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권하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관리 방법입니다. 이를 응용한 활동들을 계획해 본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째, 근무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체력을 안배해야 합니다. 규칙적인 휴식시간을 접하고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계획해 봅니다. 

둘째, 창조적인 활동(글쓰기, 그림 그리기, 노래하기 등)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독려합니다. 

셋째,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하루 동안 성취한 일의 목록을 만들면 업무의 조절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넷째, 충분한 수면을 위해 수면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합니다. 

다섯째, 하루가 끝날 때 감사한 일의 목록을 적습니다. 감사한 일을 생각하는 것은 회복탄력성을 강화시킵니다.

 

정신분석가 권혜경 박사는 책 <감정 조절>을 통해 트라우마 회복에 도움을 주는 요인으로 ‘사람들의 감정적 지지와 이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조직적 노력’ 등을 꼽았습니다. 해외 연구들((Masten & Narayan, 2012; Sapienza & Masten, 2011)에서는 개인 회복탄력성(personal resilience)뿐만 아니라, 공동체 회복탄력성(collective resilience 또는 community resilience)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심리학자 Wyche은 공동체의 회복탄력성을 ‘위기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강화시키는 공동체의 능력’으로 정의했습니다. 위기에 대해 연구한 Mobula는 개인이 외상 사건에 대처하는 데 ‘공동체적 변인’을 중요한 치료 변인이라고 보았으며, ‘공동체 회복탄력성’은 단순히 위기 대비(emergency preparedness)의 확장 혹은 향상 버전이 아니라, 공동체 참여와 공동체 자산의 범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 일상 업무와 대비 작전(preparedness operations)의 통합 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조직에서는 이러한 공동체적 변인을 활용해 조직원들이 겪은 사건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도록 돕고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기회와 앞으로의 어려움들을 함께 대비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조직에서 겪는 트라우마가 안전한 마음 안에 담아지기를, 어려운 일을 함께 겪어 나가는 ‘재경험’이 조금 더 건강한 의미를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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