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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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이성과 소개팅하는 자리에서, 오랜만에 모이는 동창들 모임에서, 혹은 한집에 살며 매일 얼굴을 보는 가족들과의 식사 시간에 혹시 침묵이 흐르는 어색한 순간을 견디는 게 힘들게 느껴진 적, 있으신가요? 

살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특별히 가깝고 편안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도 있지만, 가끔 마주치는 이웃이나 직장 거래처 사람, 취미나 동호회 모임 등등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서로 대면하거나 함께 어울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요, 이런 모임에서 분위기가 어색해질 때 여러분은 보통 어떤 기분을 느끼고, 또 어떻게 행동하시나요? 

아마도 침묵만이 흐르거나 어색한 분위기가 많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도, 또 유독 긴장하는 분도, 침묵이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말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외향적인 성격의 분이라면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객쩍은 농담을 하거나 공통된 대화 주제를 찾으며 대화를 이끄는 데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반대로 소극적이거나 내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면 머릿속으로 사람들의 캐릭터를 분석하고 있거나 누구라도 먼저 나서서 지금의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아니면 마음 한구석에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대화 분위기를 주도하고 싶지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분도 있으시겠죠.

 

그런데 사실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아무리 어색한 상황이라 해도 말하기 싫은데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우리에게는 말을 할지 말지 혹은 상대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사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어색한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어색한 상황을 참지 못하는 것은, 내가 지금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내 마음을 다른 이들에게 투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역시 누군가 먼저 나서서 이 어색함을 풀어 주기를 바랄 거라고 지레짐작하면서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두려움과 압박감, 책임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색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어색함과 불편함까지 오로지 내가 책임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상대방이 느끼는 불편감은 상대방의 몫으로 남겨 두고, 여러분은 여러분이 느끼는 불편감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되거나 침묵이 길어져도 특별히 불편감을 느끼지 못하는 분이라면 별다른 액션이나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못내 견디기 힘들다면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가벼운 스몰 토크(Small Talk)를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텐데요, 여기서 스몰 토크란, ‘가벼운 대화’를 의미합니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스몰 토크를 나누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이는 일종의 미국 문화로 여겨질 만큼 그들에게는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웃으면서 인사하거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스몰 토크가 좋은 점은, 대화 주제가 거창하지 않아도, 또 말주변이 유창하지 않아도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먼저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 준다는 데 있습니다. 스몰 토크의 주제는 보통은 종교나 정치, 재정적 상황이나 전문적 지식처럼 너무 무겁거나 민감한 주제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대신 오늘의 날씨나 요즘 빠져 있는 취미 생활, 최근 다녀오거나 인상 깊었던 여행지 이야기, 좋아하는 스포츠나 음악, 영화 등의 문화 콘텐츠처럼 공동의 관심사나 흥밋거리 위주로 기분 좋은 대화가 가볍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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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사회적 분위기는 ‘안물안궁(안 물어보았고, 안 궁금하다)’이라는 줄임말이 대변하듯이 사람들 간에 사생활을 묻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여겨지는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굳이 상대에 관해 묻거나 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행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하며 망설이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누군가가 나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고,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과, 또한 상대방에게 대화에 응하지 않을 자유와 불편한 감정을 스스로 책임질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사람들과 스몰 토크를 나누면서 어색함은 줄이고, 친근함은 커지는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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