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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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길고 뜨거웠던 여름도 어느덧 가고,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이 반가운 요즘입니다. 선뜻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왠지 모르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게도 하지만,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아름다운 이 계절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향유하고 싶어집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여러분의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이제 막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분도, 얼마 전 오랜 사랑과 이별하신 분도,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멀찌감치 바라보기만 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혹은 멜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찐한 연애를 하고 있거나,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이 되어 냉탕과 온탕 사이를 오가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아니면, 지독한 사랑에 크게 데여 “두 번 다시 사랑 안 해.”라는 어느 여 가수의 노래만 반복 재생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분도 있으실 테지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사랑.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결이나 방식, 경험 등에 있어서 무척이나 다양하고 저마다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사랑이란 언제나 영원한 숙제이자,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해 주는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남녀 간의 사랑은 때때로 우리에게 커다란 행복감과 기쁨에 젖게 하지만, 어느 때는 지옥의 불구덩이로 우리를 안내하는 듯 우리 마음을 아프고 또 괴롭게도 합니다. 정녕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실연의 아픔이나 슬픔을 겪지 않고 오래도록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는 걸까요? 아마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난관과 실연의 아픔이라는 통과의례를 겪어 온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랑하는 두 남녀의 사랑을, 세상의 온갖 유혹과 때로는 소용돌이치는 혼란스러운 감정에서 조금 더 굳세게 지켜 줄 수 있을까요? 

 

사진_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스틸 컷
사진_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스틸 컷

 

2003년에 개봉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사랑하는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가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도시 피렌체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준세이(남자 주인공)와 아오이(여자 주인공)는 대학 캠퍼스에서 운명처럼 우연히 만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다 어떤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를 오해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채 이별하게 되죠. 서로를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풋풋한 젊음만큼 사랑을 나누는 데는 미성숙했기에, 이별이라는 수순을 밟게 된 준세이와 아오이. 시간이 흘러 두 사람에게는 또 다른 연인이 각자의 곁을 지키게 됐지만, 왠지 모르게 준세이의 눈동자는 공허하기만 하고, 아오이의 눈빛에는 슬픔이 어려 있습니다.

『사랑의 기술』이라는 유명한 저서의 작가 에리히 프롬(Erich S. Fromm)은 오랫동안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천착한 사회심리학자이기도 한데요, 그는 성숙한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치한 사랑은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을 따른다. 미성숙한 사랑은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성숙한 사랑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어떠신가요? 여러분도 이런 프롬의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는 준세이와 아오이의 이별 후로 그들의 곁을 지키는 또 다른 청춘 남녀가 등장합니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명랑한 메미라는 여성은 준세이를 사랑하면서 그와 교제 중에 있지만, 어딘가 초점 없는 준세이의 눈동자에 불안감을 느끼며 그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한편으로는 과거의 연인을 잊지 못한 준세이가 메미를 곁에 두는 것이 자신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이기적인 마음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준세이는 메미에게 차마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 대신 ‘당신이 필요하기 때문에….’라는 말만 할 수 있었을 테지요. 프롬의 말대로라면, 이 역시 성숙한 사랑이라고 볼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럼 아오이와 그녀의 곁을 지키던 마빈과의 관계는 어땠을까요? <냉정과 열정 사이>가 영화화되기 전 그 원작인 소설에서는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는 처음이야.”라는 말로 마빈은 아오이에게 고백해 옵니다. 이 말인즉슨,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해.’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반면 마빈에 대한 아오이의 사랑은, 사랑을 잃고 차가워진 그녀의 가슴에 온기를 불어넣는 마빈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애쓰는 모습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프롬의 말대로라면,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가까운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젊은 남녀들의 사랑하는 모습과 그 방식, 그리고 심리 묘사를 통해 ‘성숙한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사랑과 미성숙한 사랑의 특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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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사랑의 특징

1. 사랑을 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2. 상대에게 자유를 허락한다.

3. 상대를 무조건 신뢰한다.

4. 상대방에게 집중하며 상대의 마음을 살피려고 한다.

5.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현실의 존재를 사랑한다.

 

미성숙한 사랑의 특징

1. 사랑을 주는 것보다 받는 데 연연한다.

2. 상대를 구속하고 집착한다.

3. 상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랑을 테스트한다.

4.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만 꽉 차 있다.

5. 상대방을 이상화하고, 이상적인 모습에서 어긋나면 크게 실망한다.

 

결국 아오이와 준세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준세이는 우연히 오래전 아오이에 대해 오해했던 과거의 전말을 알게 되고,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이 물밀 듯이 밀려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준세이. 그는 뒤늦게나마 아오이에게 절절한 마음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띄웁니다.

 

“나는 너를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진짜 너의 모습은 달랐지. 외로웠고, 강한 척하고. 나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어. 그 시절 우리들은 아직 어린아이였어. 왜 그리 두근거렸을까. (…) 밀라노에 너를 만나러 갔을 때, 내 자신을, 지금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어. 미안해. 그리고 마지막까지, 난 아오이 네가 행복해서 다행이다.”

 

마지막까지 냉정을 지키려 했던 아오이의 마음은 준세이의 편지를 읽으며 떨리는 손보다도 그녀의 마음을 더욱 격렬하게 흔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길고 긴 시간을 지나, 멀고 먼 거리를 건너 10년 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며 재회에 성공하게 되죠.

오랜 시간, 먼 거리를 돌고 돌아 다시 만난 만큼, 이들의 사랑도 전보다는 더 많이 무르익어 가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해 봅니다. 

성자나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우리 모두에게는 조금씩 미성숙한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성숙함은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을 나눌 때, 어떤 모습이나 방식으로 드러나기 마련이죠. 그러나 이러한 미성숙함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우리는 ‘나’라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우리’를 위해 생각하고 또 행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이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하죠. 이러한 사랑의 힘을 믿으며 여러분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한 뼘 더 자란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역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희주 원장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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