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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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모든 걸 해결해 주고 싶은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때때로 상대의 독립성이 무시된 애정은 심각한 갈등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집착과 구속으로 작용해서 뾰족한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고슴고치 딜레마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영국의 소아과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로, 대상관계이론과 발달심리학 분야에 많은 연구 업적을 남긴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양면성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평범한 어머니는 자식을 극도로 사랑하면서도, 싫어하는 모순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양면성을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들은 자녀에게 더 공격적이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자립과 일체감이라는 양면성이 공존하는 모습은 고슴도치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데요, 1951년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이를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표현했습니다. 고슴도치가 서로 모여서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뾰족한 바늘 때문에 서로를 가까이 할 수 없다는 내용이지요. 

 

추운 겨울날,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의 바늘이 서로를 찔러서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추위는 다시 고슴도치들을 모이게 만들었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서로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실제로 고슴도치들은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어 체온을 유지하거나 잠을 잔다고 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저서 <Parerga und Paralipomena>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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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고슴도치들은 체온을 유지하거나 수면을 취하기 위해서는 몸 전체를 접촉하지 않고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댄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슴도치 딜레마는 인간의 내향성과 고립주의를 설명할 때도 자주 사용됩니다. 모든 관계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며 발생되고, 서로가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서는 친밀함에 대한 욕구 안에서 적당한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친밀함을 가지기를 갈구하면서도, 독립적인 존재이고자 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Freud)는 저서 <집단 심리학과 자아의 분석>에서 고슴도치 딜레마를 인용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심리학의 영역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1인 가구의 증가와 코로나로 인해 독립성에 대한 문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남에게 상처 주거나 상처 받는 일이 두려워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리는 현대형 고슴도치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을 ‘히키코모리’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히키코모리는 오랜 기간 사회와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칭하는 신조어로, 정신병리학적으로는 회피성 성격장애 삽화로도 설명됩니다. 국내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라고도 칭하는데, 이들은 회피성 성격장애 증상이 명확하게 보이고, 증상이 심해지면 집이나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적당한 심리적 거리에 대해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어떤 부분에서는 심각하게 병리적인 특징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누군가와의 적절한 거리는 얼마일까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나바호족, 호피족, 에스파냐계 미국인, 트루크족 등과 함께 근접학(proxemics) 연구를 통해, 동양을 고맥락(high context) 사회, 서양을 저맥락 사회(cow context)라고 표현했습니다. 동양의 개인은 비교적 모든 문제에 앞서 인간이라는 개체가 속한 전체 맥락과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 것이며, 인간관계에서 인간 사이의 거리는 네 가지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1.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 45cm(1.5피트) 이하 이내: 밀접한 거리에서 대화가 이뤄지는 사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연인처럼 아주 친밀한 관계가 전제. 

2. 개인적인 거리(Personal Distance), 45~120cm(1.5-4피트):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허용되는 사이. 일상 생활에서 무난하게 활용되는 격식과 비격식의 경계에 있는 관계  

3. 사회적인 거리(Social Distance), 120~366cm(4-12피트): 사회적 활동과 사교적 거리로 보통의 목소리로 말할 때 들을 수 있는 거리. 사회생활, 직업 등의 공식적인 행동을 할 때 많이 쓰이며, 보다 정중한 격식이나 예의가 요구되는 관계. 

4. 공적인 거리(Public Distance), 366cm~762cm(12피트-25피트): 큰소리로 이야기해야 하는 거리. 연설이나 강의와 같은 특수한 경우이며, 말하는 사람은 여러 청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거리여야 하고,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에게 피해 가지 않는 행동을 노출시키지 않는 거리가 일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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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받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거리 유지하기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어떤 거리에서 가장 편안함들을 느끼시나요? 서로에게 가시로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거리는 어느 정도 일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뾰족한 가시는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 가시를 드러내지 않은 채 품고 있고, 누군가는 가시로 경고를 보냅니다. 어쩌면 우리는 상처받기 싫은 마음 때문에 고슴도치처럼 한껏 가시를 세운 채 누군가를 상처 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 연결감을 느끼고 친밀해지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일 것입니다. 마음을 닫고 혼자서 생활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부정적 정서가 더욱 오래 지속되게 만들기도 합니다. 회피라는 방어기제는 때때로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적당하게 상처받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떠오르시나요? 연락을 피했던 사람들,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상 만남도 차단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적절한 거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우리에게는 가시에 찔려 보고, 뒤로 물러나 추위를 느껴 보는 경험들도 배움의 시간이 됩니다. 

마음을 연 시도들을 통해서 적절한 거리의 관계를 잘 맺는 방법을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뾰족한 가시가 조금 부드러워지고, 관계를 통한 온기가 회복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인하대병원 인턴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Master class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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