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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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말을 함께 타고 놀던 친구’라는 말로, 어린 시절 아주 가깝게 지낸 친구를 뜻합니다. 여러분의 죽마고우는 누구인가요? 어릴 적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아직 연락하며 얼굴을 보고 지내시나요?

유년기처럼 먼 과거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혹은 첫 직장이나 이전 직장에서 만났던 동료, 선후배들처럼 기억 속 어딘가에 과거의 한 페이지를 함께 적어 내려갔던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여전히 가까운 사이로 연락하며 만나는 사람도 있고, 어느새 소식이 끊겨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이들도 많습니다. 사실 기억 속 얼굴 중 대부분이 후자에 속하는 경우가 높습니다. 

상급 학교로 진학하거나 거주지가 바뀌면서, 혹은 직장을 옮기고 삶의 패턴이 달라지면서 한때는 거의 매일 얼굴을 볼 정도로 자주 만났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또, 삶의 시기마다 각자 결혼이나 사별, 이혼과 재혼, 출산과 육아, 기혼자와 미혼자로서의 삶 등 다른 환경에 처하며 사는 데 바빠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를 갖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연락처가 바뀌거나 기존 연락처 목록이 사라지면서 연락이 끊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오래된 지인들과 소식이 끊기고, 교류가 없어지는 데 익숙해집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바뀐 생활환경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혹은 일과 삶으로 바빠 관계에 신경 쓸 여력을 갖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하루하루 넘기느라 정신없이 지냅니다. 

물론 그러는 동안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얼굴이 이따금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낼까? 그때 그 사람은 지금 잘살고 있으려나?’하고 궁금해하면서 말이죠.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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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상 오랜만에 연락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연락처를 모르기도 하고, 연락처가 있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서로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울까 봐,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또, 오랜만에 연락한 상대방이 내가 생각하던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면 어떻게 하나, 반대로 상대방이 지금 내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나 하며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그러면서 ‘에이, 지금까지 서로 연락 안 하며 지냈는데 뭐. 이제 와 새삼스럽게.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하며 이내 친구들의 얼굴을 다시 의식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곤 합니다. 

이렇게 오래된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데 많은 장애물이 있기에, 보고 싶은 만큼 쉽게 예전의 인연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흔치는 않습니다. 우연히 어떤 계기로 자연스럽게 다시 연결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상당히 많은 노력과 의지가 요구되는 일이지요. 

또, 오랜만에 갑자기 연락하는 친구나 동창들은 십중팔구 보험이나 다단계일 가능성이 많으니 의심해야 한다는 통념도 우리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됩니다. 오랜 친구가 갑자기 연락해 올 때는 혹시 친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이나 사기는 아닐지, 친구가 보험이나 물건을 팔아달라거나 나를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먼저 하게 되니까요. 워낙 사기도 많고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요즘 시대에는 이런 의심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내가 친구에게 연락하려고 할 때도 혹시 상대방이 나를 경계하거나 의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나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연락했는데 상대방이 오해하거나 반가워하지 않으면 괜히 상처만 받고 실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이렇게 오랫동안 교류하지 못했던 친구와 다시 연결되기 위해서는 많은 허들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굳이 그 친구들과 꼭 다시 만나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연락처라도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공통의 지인들, SNS 등을 통해 수소문하며 친구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과정에서부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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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친구와의 만남이 주는 힘이 있습니다.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했던 그때로 함께 시간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순수했던 예전의 마음을 다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근황을 나누며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각자 어른으로 성장해 있는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교류하지 못하는 동안 겪었던 좋은 일, 나쁜 일들을 함께 나누며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이해관계에 의해 만난 것이 아닌, 순수한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게 될지도 모르지요. 

물론 예전에 가까웠던 친구가 현재에도 반드시 나와 잘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못 보고 지낸 사이에 가치관이나 생활 습관, 삶의 태도와 결이 서로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요. 어린 시절에는 크게 관계없었던 신념이나 주관의 차이로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삶의 소중했던 시기를 함께한 사람으로서, 여전히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요. 

오래된 친구와의 만남이 더 자연스럽고 서로에게 위험 부담이 적은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연락하거나 만나기 전에 충분히 친구의 성향이나 근황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SNS나 메신저 등을 통해 친구의 삶이나 가치관, 주요 관심사가 무엇인지 시간을 갖고 살펴보면서 나와 공통점이 있는지, 다시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대화나 만남이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지 파악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삶의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사람은 누구나 변하게 마련이니까요. 친구도, 나도 예전과 같은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면이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하고, 달라진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친구를 다시 마주했을 때는 조금 더 여유 있고 안정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오랜 공백이 있었던 친구라면 연락이나 만남을 너무 급작스럽게 추진하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행하는 것도 좋습니다. 예전에 가까운 사이였지만 지금은 각자 삶의 우선순위와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세요. 상대방은 나와 연락하는 것은 좋지만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보고 싶지만 사정상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보고 싶고 연결되고 싶다는 나의 욕구만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충분히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친구는 더 신뢰를 느끼며 안심할 것입니다.

‘갑자기 연락해서 친구가 어색해하거나 당황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보고 싶은 친구나 지인들과의 연락을 미뤄 오지는 않으셨나요? 그렇다면 용기를 내서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부담스럽지 않게, 신중하고 배려 있는 태도로 친구에게 보고 싶고 반가운 나의 마음을 표현해 보세요. 어쩌면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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