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스물아홉 살 여자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화가 나거나 분노가 올라오면 조절이 잘 안 되고, 폭언을 꼭 하게 됩니다. 연애 때도 그런 적이 가끔 있었지만 결혼 후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남편이 그동안 제 언행을 참고 참아 왔는데 어제는 제가 욕설까지 해서 저를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도 제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런 모습이 조금도 바뀌지 않아서 마음이 정말 힘듭니다. 

남편과 대화할 때 제가 먼저 분노가 일어나서 화를 내게 되는데 그런 과정에서 남편도 언성이 높아지고, 제게 화를 내면 저는 저를 공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도 지지 않으려고,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남편을 공격하고 짓밟는 말들을 하게 됩니다.

정말 바뀌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러 심리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스스로 변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할머니가 키워 주셨는데 할머니가 저에게 정말 심한 말들, 저주와 욕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 영향으로 저도 닮게 된 것 같은데, 정말 바뀌고 싶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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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한창 행복하고 깨소금 볶는 냄새가 가득하리라 생각하기 쉬운 신혼에 남편분에게 내뱉게 되는 폭언으로 마음의 어려움이 크실 것 같습니다. 잘못된 행동임을 알고 있고, 바뀌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으시군요. 

폭언은 언어적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리적 폭력과 달리 폭언은 상대방의 신체에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흔적을 남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심한 폭언, 지속적인 폭언은 물리적 폭력 못지않게 상대방에게 크고 장기적인 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심할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불안과 같은 정신장애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사연자님께서 폭언에 관한 심리 자료들을 찾아보셨다고 하니 이미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 인지하고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또, 과거에 할머니로부터 폭언을 많이 당하셨다고 하니 폭언으로 인한 영향을 그 누구보다 깊이 느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배우자분께 폭언하는 자신의 모습에 더 큰 괴로움을 느끼고 계신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흔히 신혼이라고 하면 달콤한 장밋빛으로 가득한 나날을 떠올립니다. 주변 사람들 역시 신혼이니 참 좋겠다며 부러워하는 눈빛과 말들을 많이 보내기도 하지요. 하지만 실상 신혼생활이 그리 달콤한 것만은 아닙니다. 연애 때는 알지 못했던 상대방의 단점, 사소한 생활 습관부터 경제 관념, 성 역할, 가사분배, 출산 및 자녀에 대한 가치관 충돌 등 다양한 이슈들이 갈등의 소재가 됩니다. 

서로 주도권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렇게 크게 다툴 일이 아닌데도 양보하지 않고 경쟁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 갈등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학습하는 시기이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한 사람은 갈등이 있을 때 잠시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반면, 다른 사람은 즉각적인 대화와 해결을 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갈등 해결 방법이 다를 때는 그로 인해 더 큰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 있는 것이지요. 

사연자님 역시 이런 신혼 시기를 겪으며 남편분과 크고 작은 갈등을 많이 경험하고 계실 것입니다. 주된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사연을 통해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반복적이고 특정한 주제에 관한 것일 수도, 다양하고 비특정적인 주제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의 종류와 빈도, 심각도 등을 차치하고 사연에서 가장 초점을 맞출 부분은 갈등 해결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부부관계뿐 아니라 어떤 관계에서든 갈등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갈등을 건강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때는 다양한 의견과 토론을 통해 최선의 안을 도출하여 성장과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을 잘 해결하지 못할 때는 아집과 독선,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관계의 단절과 같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남편분과의 갈등이 발생할 때 사연자님의 주된 해결 방식은 무엇인지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또, 폭언이 남편분에게만 국한된 것인지 가족이나 친구를 비롯한 다른 관계에서도 나타나는지 점검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연을 통해 모두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연애 때도 폭언 행동이 가끔 나타났고, 결혼 후 더 자주 폭언이 나타났다고 하신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경청이나 차분한 대화를 통한 해결에 익숙하지는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또, 남편분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폭언에 대한 고민을 남겨 주신 점으로 보아 다른 분들과의 관계에서는 폭언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예상해 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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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폭언의 대상이 남편분만이든 혹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해당하는 것이든, 폭언을 하게 되는 원인을 깊이 탐색해 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장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서는 나의 모든 면을 다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상대방에 대한 동일시, 경계가 흐려지는 점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을 정제되지 않은 언행을 하기가 쉽습니다. 또, 사연에 남겨 주신 것처럼 상대방이 나를 공격한다고 생각될 때 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더 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폭언이나 폭행은 주어진 자극을 실제보다 심각하고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 그에 대한 과잉 반응으로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남편분이 사연자님을 그렇게까지 무시하거나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남편분의 태도나 말투, 행동, 대화 내용 등에서 자극이 되는 것을 심각한 위협, 사연자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면서 전투 태세에 돌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배우자분을 더 자극하게 되고, 언성이 높아지며 서로를 누르려고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폭언이 지속되면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도 점차 세질 수 있고,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합니다. 또, 배우자분께 씻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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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님이 보이시는 폭언은 적절한 갈등 해결 전략을 학습하고 실천했던 경험의 부족과 함께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폭언의 영향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할머니께 들었던 폭언과 욕설이 어린 사연자님의 마음에 많은 상처를 남겼을 테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하는 사소한 말이나 행동도 더 예민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지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상대방이 공격적인 듯한 태도를 보일 때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본능을 더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할머니의 욕설로 상처를 받았음에도 어느새 할머니와 비슷한 모습으로 폭언하는 자신의 모습에 괴롭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할머니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공격자와의 동일시’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공격자와의 동일시는 강한 공포, 학대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가해자가 가진 특성을 자신에게 내사시킴으로써 무력감을 극복하고 통제감을 회복하고자 하는 내적 기제입니다. 이는 가학적이고 폭발적, 충동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폭언을 멈추고 싶고 조절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폭언 그 자체가 충동적이고 폭발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의지만으로 조절하기에는 역부족으로, 순간적으로 화산처럼 펄펄 끓어오르는 화와 거친 말들이 용암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부 상담 또는 개인 상담을 통해 남편분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갈등의 주된 원인과 대안적이고 건설적인 해결 방법 탐색, 이에 대한 학습 및 훈련을 진행해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더불어 사연자님이 어린 시절 할머니의 폭언으로 인해 느꼈던 감정, 그것이 사연자님께 미친 영향, 현재 나타나는 폭언과의 관련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감정에 대해서도 함께 다뤄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분과 어린 시절의 성장 배경을 공유하고 현재 남편분이 폭언으로 인해 경험하는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나누는 과정을 병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남편분은 사연자님을 더 이해하고 폭언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한 탐색 및 치료 과정에서 조력자 역할을 해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사연자님께서는 본인의 행동이 남편분께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고 직접적으로 느끼며 공감하고, 폭언을 멈출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실 것입니다. 

신혼 시기 경험하는 갈등과 함께 어린 시절 폭언 경험, 현재 이어지는 폭언이 사연자님과 배우자분께 미치는 영향으로 많이 힘드시겠지만, 부부간의 깊은 대화와 전문가를 통한 적절한 개입으로 필요한 도움을 받으시고, 변화된 모습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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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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