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교육 전문기업 ‘휴넷’은 지난 3월, 직장인 942명을 상대로 자존감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자신의 자존감에 점수를 매겨 보는 것이었죠. 그 결과, 평균은 5.7점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번아웃(심신 소진)’이나 슬럼프를 겪어 봤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90%에 육박했습니다.

자존감(Self-esteem)은 단어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며, 노력에 따라 삶에서 성취를 이뤄 낼 수 있다고 믿는 일종의 자기 확신입니다. 자존감이 잘 형성된 사람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타인과도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굴곡 앞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있지요.

이러한 자존감의 핵심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자기평가입니다. 자신을 가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으면 자존감 역시 향상됩니다. 이를 위해 스스로를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한데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수록 가치롭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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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얼굴이 평균보다 큰 편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 얼굴이 좀 더 작았어야 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자기수용이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수용이 잘 되는 사람들은 설사 자신의 얼굴이 큰 것을 인지하더라도 ‘괜찮다’고 받아들입니다. 얼굴의 크기가 큰 것일 뿐, 그것이 자신의 못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자기수용(Self-acceptance)을 정의해 보면, 자신의 심리적, 신체적, 행동적 특성을 비판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때 수용의 대상은 본인의 긍정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까지 포함됩니다. 자신의 단점까지 인정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자기수용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조건적 자기수용(unconditional Self-acceptance)’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기본적인 자기수용에서 더 발전된 단계로, ‘허용’이 바탕이 되는 자기수용의 형태입니다. 무조건적인 자기수용의 단계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타인의 평가와 관계없이, 온전하게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미국 심리학회(APA)에 실린 아메리칸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 ‘David Haaga’의 연구는 무조건적 자기수용의 힘을 보여줍니다. 먼저 학부생들을 4~5명씩 한 팀으로 분류한 뒤, 돌아가면서 90초간의 짧은 연설을 하도록 요청합니다. 한 명이 연설하는 동안 나머지 학생들은 한쪽에서만 볼 수 있는 거울이 설치된 방에서 이를 지켜봤는데요.

모든 인원의 순서가 끝난 뒤 각자 자신의 연설을 평가했으며, 다 함께 평가를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평가 내용을 바탕으로 연설 내용을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했지요. 이후 연설할 기회를 또 받게 된다면 다시 할 의사가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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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을 종합한 결과, 무조건적 자기수용이 잘 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연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타인의 평가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요. 이는 자기수용이 높은 사람의 경우 자기 비난이나 우울, 불안 등의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시사합니다.

자기수용이 잘 되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의 관점의 차이를 쉽게 받아들입니다. 이를 ‘타인 관점 수용’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타인 관점 수용의 태도는 ‘이해’나 ‘공감’과 맞닿아 있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며 한두 번쯤 힘든 일을 겪게 됩니다. 이를 친구나 가족 등 적극적인 지지를 보여주는 상대방에게 털어놓게 되지요. 이때, 상대가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윤리적 잣대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공감해 준다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는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용기로 이어지기도 하죠.

이렇듯 자존감은 결국 타인과의 연대감 속에서 더 향상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이해와 공감이 자존감을 높이고, 높은 자존감으로 자기수용을 원활히 하며, 이를 통해 타인의 관점을 잘 받아들이게 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죠. 그러니 하락한 자존감 때문에 괴롭다면, 너무 익숙해 잊고 있었던 주변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건 어떨까요? 생각지 못했던 애정과 지지가 역경을 이겨낼 용기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가톨릭대병원 의과대학 학사 , 석사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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