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미진씨는 얼마 전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친구가 고민을 털어놨을 때였어요. 경청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열심히 리액션을 하고, 나름의 해결책도 제시해 줬습니다. 자신이 겪었던 비슷한 상황을 예로 들려주기도 했죠. “나도 그런 적 있어. 말 안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 나도 다 겪어 봤어.” 하지만 미진씨의 이 말을 끝으로 친구는 대화를 끝내 버렸습니다. 어딘가 탐탁지 않은 듯, 어색한 표정도 함께였지요.

미진씨는 아마도, 친구에게 ‘공감’이 아닌 ‘동감’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단순히 맞장구를 쳐주는 것과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크게 다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동감과 공감을 혼용해 사용할 때가 많지요. 이 때문에 감정을 상하거나 오해가 쌓이는 일도 발생합니다.

공감은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에 정서적으로 부합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나와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면 동감은 타인의 사고나 감정을 자신의 내부로 옮겨 넣는 행위를 말합니다. 타인의 체험과 동질의 심리적 과정을 만드는 일이지요. 쉽게 표현하자면, 다른 사람의 고난, 불행, 슬픔 등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입니다.

동감은 동질의 심리적 과정, 즉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기에 “당신의 감정을 알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상대의 감정을 뚜렷이 정의 내릴 수 없더라도 이를 감지하고, 깊이 이해하는 공감과 전혀 다른 형태입니다. 감정보다 인지적인 반응에 가깝습니다. 누군가 감정을 표현했을 때 이에 대한 단편적인 ‘반응’인 경우가 많습니다.

공감은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나와 상대의 감정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와 비슷한 정서를 감지하고, 공유하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동감과 반대로, 인지보다 감정적인 반응에 가깝습니다. 상대가 굳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비언어적인 의미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공감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동감적인 표현이 때때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대화의 초점이 말하는 사람에게 옮겨 간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런 적 있어서 그 기분 잘 알아.”라는 말은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나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화의 상대방은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 공감적인 표현은 대화의 초점이 아직 상대방에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많이 속상했겠다.” 혹은 “정말 좋았겠다.” 등의 표현에서 속상하거나 좋았던 사람은 상대방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상대방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표현할 때 공감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미국 테네시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 ‘Baston Daniel’은 미국 심리학회(APA)에 실린 연구에서 공감을 8가지로 구분했습니다. 

 

①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포함한 내적 상태를 아는 것

②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정서 표현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따라 하는 것

③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나도 함께 느끼는 것

④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에 자신을 투사하고 직관하는 것 

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상상하는 것

⑥ 다른 사람의 입장을 취해 상대방의 느낌과 생각을 상상하는 것 

⑦ 다른 사람의 고통을 목격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

⑧ 고통을 느끼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

 

여기서 1번, 4번, 5번, 6번은 인지적 공감으로, 3번, 7번, 8번은 정서적 공감으로, 2번은 모방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인지적 공감은 얼핏 보면 동감에 가깝게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처럼 공감과 동감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 구분되지 않기도 하고, 혼재돼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지적 공감이든, 정서적 공감이든,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기에, 공감을 잘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하지요. 깊은 대화를 하고 난 뒤 피로감이 심하다면, 혹은 자신은 유독 공감하는 게 어렵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공감은 정신적 노력이 상당히 필요한 일이며, 이처럼 어려움을 느끼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이처럼 쉽지 않은 공감이 때때로 누군가에게 강력한 위로가 된다는 걸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공감해 준다는 느낌을 받으면, 누구나 안정감이 생기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보다 수월하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변의 소중한 존재를 위해 공감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감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테네시 대학교의 실험에서 소개한 모방, 인지적 공감, 정서적 공감의 순서로 연습해 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앞서 나온 미진씨가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의 정서 표현을 자신도 모르게 따라 하고, 친구가 처한 상황을 본인의 상황에 대입해 보며, 나아가 친구에게 연민까지 느꼈다면 진정한 공감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공감 능력이 이처럼 노력으로 향상할 수 있는 부분이라니, 희소식임이 분명합니다. 소통과 공감의 힘이 더욱 중요해진 요즘 아니던가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공감적인 사람으로 거듭나는 연습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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