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직장인 A는 잠자리에 누워도 머릿속의 업무 스위치가 도저히 꺼지지 않았다. 실내는 캄캄한데 머릿속은 업무에 관련된 생각이 끊이지 않아 스트레스가 일었다. 계속되는 재택근무로 집이라는 휴식 공간에서 ‘업무’와 ‘휴식’이 구분되지 않는 까닭이었다. 재택근무로 집에서 일하면 필요할 때 쉬면서 일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더욱더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다. 처음 며칠은 정말로 편했다. 출퇴근의 부담이 줄어 시간과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처음 기대와는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일하면서도 쉴 수 있는 느낌이 아니라, 쉬는 도중에도 일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늘어졌다. 처음 생각을 시작한 원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뻗어 났다.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A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이가 늘고 있다.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이 같아, 뇌가 쉬지 못하고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머릿속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 느낌이 지속되는 느낌이 든다면 ‘재택근무 증후군’을 의심해보는 게 좋겠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9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A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이가 많았다. 응답자의 32.1%가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재택근무 증후군을 경험했다. 54.8%는 퇴근 후에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으며, 46.2%는 온종일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변했다.

업무와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까닭일까? 쉬어야 하는데 쉬지 못하고, 업무와 관련된 생각을 하다가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직장인 A는 너무 많은 생각이 온종일 집에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처럼 지나친 생각은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초래한다는 연구가 많다. Harvard Medical School의 Louisa C Michl에 따르면 생각을 많이 할수록 부정적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우울과 불안과 같은 정신병리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결점, 실수와 같은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불안을 증가시킨다. 불안이 증가할수록 자책, 반성의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어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부정적인 생각에 지속해서 집중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뇌는 가상의 스트레스와 실제 조치가 가능한 스트레스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불균형은 감정, 기억을 조절하는 뇌의 구조를 손상시킬 수 있어 위험하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주인공이 포장마차에서 홀로 술을 홀짝거리는 장면을 여느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악순환의 고통을 피하고자 술을 마시거나 과식을 하여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회피는 건강에 해로운 대처 전략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시도할 수 있는 건강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사진_freepik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나친 생각 즉, 과장되고 부풀어진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즉각적으로 해불 수 있는 방법 몇 가지가 있다.

 

1. 생각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생각은 곰팡이처럼 은밀하게 그러나 빠르게 퍼진다. 너무 고요하기 때문에 자신이 지나친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래야 멈출 수 있다. 생각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고, 반복으로 드는 생각은 생산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티베트 속담을 마음속에 새겨보자.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진다면, 걱정할 것이 없겠네.’

 

2. 말로 멈추어보기

생각이 많다는 것을 자각했다면, 그 순간 “그만 생각해”, 혹은 “멈춰!”라고 소리 내 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말할 때는 머릿속에 교통 표지판의 ‘멈춤’ 사인을 떠올리거나, 초원과 같은 다른 장소로 순간 이동한 것을 떠올리는 것도 효과적이다.

 

3. 환기하기

자신이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멈출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생각보다 어렵다. 생각은 자기도 모르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럴 때는 집안 공기를 환기하듯, 생각을 환기해야 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코끼리만 생각날 것이다. 따라서 아예 물리적 공간을 바꾸거나, 운동과 같은 신체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벼운 산책도 좋다.

 

4. 생각의 시간을 정하기

꼭 생각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 아예 시간을 정하고 몰두하는 것이 좋다. 어떤 생각이든 얼마나 깊게 빠지든 제한은 없다. 중요한 것은 시간에 제한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침 10시부터 10시 반까지 주기적으로 맘대로 생각하기 시간을 갖거나, 생각이 필요하다 느껴질 때 20분 타이머를 맞추고 생각의 시간을 가지면 된다. 알람을 활용해서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필수이다.

 

5. 생각 패턴 수정하기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면 그 패턴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생각은 시작할 때는 이성적으로 느껴질지라도, 엉뚱하고 과장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업무에 필요한 작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다가, 회사에서 권고사직 당하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의 방향이 걷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간다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넘어가는 시점을 찾고, 비이성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재택근무를 하니 집에 있어도 쉬는 게 쉬는 것 같지 않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려온다. 시간과 체력, 집중력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니 좋으나, 동시에 괴로운 지점도 생기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다. 직장에 나가서 일할 때는 퇴근만 하면 모든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니 가만히 누워있을 때마저 업무에 대한 생각이 들고, 업무가 잘 풀리지 않았을 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부정적인 문제 상황이 떠오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 19가 끝나도 재택근무는 유동적으로 지속될 거라고 예상한다. 위 방법에 따라 내 생각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면 재택근무의 단점을 극복하고, 즐겁게 근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습관처럼 해오던 생각의 회로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시간이 들고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습관을 제대로 형성한다면, 재택근무뿐 아니라, 인간관계, 사회생활, 일상 등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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