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숲에서 살아남기(12)

[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주식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되었는데요. 이게 시작하고 보니 너무 재밌어서 맨날 주식창을 보게 됩니다. 떨어지면 좀 사고 오르면 좀 팔고.. 남들이 볼 때는 적은 돈인 소액인데요. 이게 재밌다 보니 휴일에 장 안 열리는 날이면 너무 지루하고요. 요즘은 장 열리는 시간엔 약속도 잘 안 해요. 이거 혹시 중독인가요?"

 

최근 주식이나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 열풍이 불면서 ‘투자 중독’ 증상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원래 도박문제센터에서는 주로 카지노, 온라인 배팅, 경마 등 도박 중독 문제를 상담하지만 최근에는 주식과 비트코인 중독을 호소하며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중독, 많은 사람들이 ‘너 중독이야.’라고 이야기들을 하지만 막상 우리는 중독과 의존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코올과 주식을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본다는 게 생각해보면 뭔가 좀 이상하지요.

 

한 번 알코올 중독을 떠올려봅시다. 알코올 중독하면 알코올 때문에 여러 가지 신체적, 사회적 해를 입고, 또 알코올이 없으면 굉장히 불안해하고 괴로워하며 허겁지겁 소주를 사러 나가는 이런 이미지가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일산화탄소, 연탄가스 중독은 어떨까요? 당연히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신체적 해를 입지만, 우리가 한번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면 연탄가스를 계속 흡입하려 하는 건 아니지요.

이렇게 중독과 의존은 어느 정도 비슷하고 겹치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중독과 의존에 대한 개념을 잡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알아차릴 수도,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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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적 개념에 있어서 ‘중독’이란 어떠한 것에 섭취하거나 노출되었을 때 이것이 뇌에 작용해서 생긴 부정적인 행동변화나 심리적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알코올 중독이나 연탄가스 중독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들이 인체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부정적인 변화, 즉 취하거나, 몽롱해지거나, 기억을 잃거나 난폭해지거나 때로는 목숨을 잃는 그런 것들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식에서 중독되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식을 지속해서 하느라 나의 행동과 심리, 그리고 삶에 부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면 이것을 중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사연자분이 주식을 하는데에 있어서 주식을 시작하기 전보다 나쁘고 지속적인 신체적, 심리적 변화가 있다면, 예를 들어 주식 때문에 화를 잘 내게 되거나 쉽게 흥분하게 되거나, 불안하거나 아니면 일상생활의 다른 행동들이 재미가 없어지거나... 이렇다면 사연자분은 주식 중독상태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존은 무엇일까요? 의존이라고 함은 금단과 내성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단은 우리가 장기간 사용하던 약물이나 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의미합니다. 알코올에 대한 금단 증상이라고 하면 우리가 술을 먹지 않을 때 불안해지고, 감정조절이 안되고, 불면증이 생기는 이러한 현상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사연자분은 금단을 보이고 있나요? 심하지는 않지만 금단 증상을 조금은 보이고 계신다고 봅니다.

1) 주식장이 열리는 날 너무 지루하고, 2) 주식장이 열리는 때에는 평소 때 하던 다른 활동도 하지 않으려고 하시니까요. 둘 다 금단을 보이는 사람의 특징이에요.

내성은 아마 모두가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어떤 중독현상을 보이는 물질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 점차적으로 많은 양의 약물이 필요한 걸 내성이라고 해요. 만약에 사연자분이 지금 주식에 투자하는 돈과 시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점차 주식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투자하는 돈도 늘어나고, 그것이 환자분의 인생을 결과적으로 나쁜 영향으로 몰아넣는다면 사연자분은 내성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단과 내성을 보이는 이 상태를 우리는 의존이라고 진단합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렵지요? 그러면 제가 일반인 분들이 주식투자에 중독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을 알려드릴게요.

1. 주식투자나 또는 코인 투자를 할 때 이를 말리거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지는 않나요? 만일 화가 난다면 주식 투자에 의한 나쁜 심리적인 변화, 즉 주식이나 코인에 중독되어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2. 혹시 여러분이 주식투자나 코인 투자를 할 때 남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예를 들면 가족에게는 주식을 끊었다고 하지만 몰래 하고 있다던지 또는 투자한 액수를 크게 줄여서 이야기한다던지요.

위의 2가지에 해당된다면 저는 즉시 투자를 중단하고 나머지 돈을 회수할 것을 권유드립니다.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높은 확률로 주식투자가 여러분들의 뇌와 인생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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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전혀 다른 술과 주식이 하나의 카테고리의 진단으로 묶이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엄청 흥분되는 일을 할 때 “아... 도파민 나온다”라고 관용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뇌 회로 중에는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를 간절히 추구하게 만드는 회로가 있어요. 추구 계통(seeking system)이라고 하는데, 복측 피 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라고 하는 곳에서 시작되어서 측좌핵(Nuclear accumbens)라고 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회로입니다. 여기에는 신경전달물질인 크게 도파민이 관여하게 됩니다. 이 영역의 회로가 자극이 되면 우리는 굉장한 쾌락, 보상이 느껴지게 됩니다. 마치 내가 무언가를 성취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일상적인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은 그런 유쾌하고 짜릿한 감각이죠.

이러한 회로를 특히 자극시키는 행위나 물질들이 있습니다. 술, 마약 등의 물질들이 그렇고 도박, 주식, 코인 등이 그렇죠. 이러한 중독적인 물질과 행위들은 단번에 이 회로를 극한까지 자극시킵니다.

이러한 현상이 너무 자주 반복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외의 행위들이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직장에 나가서 받는 보상인 봉급이 시시해져 버리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자기 계발이나 성취도 시시해집니다. 나중에는 식사도 수면도 대인관계도 하지 않게 됩니다.

 

"저는 작년 연말부터 코인을 시작했는데요. 시작한 이후로 잠을 잘 못 자요. 오를 때는 너무 흥분돼서 자다가도 몇 번씩 깨서 거래 창을 들여다보곤 했어요. 떨어질 때는 불안해서 잠을 잘 못 자고요. 그러지 말아야지, 묻어둬야지 마음을 먹는데 어느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낮에 업무 효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마음처럼 제어가 안됩니다."

 

위의 사연자분은 전형적인 코인 투자의 중독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코인이 오를 때는 너무 흥분되고 특히 오를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다가 떨어질 때는 모든 것을 잃고 폐허 속에 혼자 남아있는 것처럼 순식간에 비참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금단과 내성 증상도 아마 보이시는 것 같아요. 코인 창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불안하고, 낮에 업무효율이 떨어질 정도로 많은 시간을 코인장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코인 때문에 삶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사연자분.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행복하신가요? 잘 먹고 잘 자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그렇게 지내고 계신가요? 이것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행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제가 반드시 물어보는 질문이에요. 아마 높은 확률로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부분 환자분들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제가 단 하나 환자분들에게 강하게 경고하고 때로는 겁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자분들의 병리에 중독이 관여되었을 때가 그렇습니다.

신경과학자 제임스 올즈는 1954년 중독 회로를 포함하는 추구 및 보상회로를 연구하기위해 쥐의 추구 회로에 전극을 연결하여 전극을 누를 때마다 그 부분이 자극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쥐는 그 부분을 미친 듯이 눌러댔습니다. 좋아하는 먹이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그렇게 열중하던 짝짓기도 하지 않고요. 지나친 도박적인 투자는 인간의 뇌에 같은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잠자는 것도 잊고, 세상에 태어나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도 잊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무의미해지고, 오직 돈을 넣고 차트가 오르고 내리는 것을 두근거리며 지켜보는 그 행위에만 몰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성에 끌리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성관계와 번식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성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활동을 합니다. 운동도 하고, 외모관리도 하고, 상대방에게 호감 가는 말투를 익힙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라는 소설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어떠한 스위치를 눌렀을 때 성관계를 하는 것만큼의 만족감을 즉각적으로 받는다면, 우리는 그 스위치를 눌러야 할까요 아니면 누르지 말아야 할까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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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누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너무 단순화시켜 말하는 모양이 되겠지만) 우리의 모든 행동은 보상회로가 주는 그 쾌락과 만족감을 느끼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제가 소년 시절에 그 스위치를 발견해서 방 안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 스위치만 누르고 있었더라면, 저는 제가 지금 사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돕지도, 스스로의 인생의 목표를 성찰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스위치 한 번만 누르면 모든 게 필요 없어지니까요.

보상회로로부터 오는 쾌락은 한 개의 뇌로 국한해서 보면 신경 활동의 목표점인 것은 맞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그 지점을 자극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인간은 사회 안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해야 하고, 삶의 의미를 설정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뇌의 활동을 다른 뇌와의 상호작용으로 보는 거시적 시점으로 보면, 보상회로의 자극은 목적지가 아니라 ‘엔진’에 가깝습니다.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뻔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추구 회로만큼이나 우리의 사회생활을 한 축을 담당하는 세로토닌 시스템(분리불안을 일으켜 우리가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공황과 비참함을 느끼게 만드는 회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목표는 세상의 부조리로부터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나의 목표를 세상에 구현할 수 있고, 세상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이지 결코, 무인도에서 혼자 산더미 같은 돈에 둘러싸이기 위함은 아닐 것입니다. 무인도에서 돈은 그저 땔감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쾌감이 중요하다면 우리의 뇌는 어째서 24시간 그 쾌감을 얻도록 진화되지 않았을까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뇌의 그 지점은 우리를 움직이도록 만들 뿐 그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지점을 자극하기 위해 우리가 움직이는 동안 얻게 될 경험, 자기 계발, 깨닫게 되는 새로운 가치들이 생존에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코인이나 주식이 반드시 나쁜 것인지 이것이 도박인지 아니면 투자인지 아직 저로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것이 도박과 중독으로 작용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주식투자와 코인에 몰입한 나머지 평소 가치 있게 생각했던 것들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면, 여러분이 삶이 작은 스마트 폰 안에 갇혀있다면 한 번쯤은 여러분의 삶의 패턴이 뇌에 전극을 이식당하고 미친 듯이 그 스위치를 누르도록 중독된 그 실험용 쥐와 같은 상태는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코인을 해야 한다면 여러분의 손에 있는 것을 버리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남는 시간에 해야 합니다. 쉬는 시간에, 마치 전자오락을 하듯이, 또는 가벼운 잡담을 나누듯이요. 그렇지만 투자가 나의 직장, 아내, 아이들과의 시간에 방해가 된다면, 평소 사랑했던 것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렇다면 여러분은 코인이나 주식투자를 그만두시는 게 좋아요.

 

결코 고정수입을 포기하지 마세요. 어쩌면 진화의 진정한 목표일지도 모를 중간과정 또한 포기하지 마세요. 코인과 주식이 오르내리면서 주는 쾌락은 강렬하겠지만, 코인이나 주식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아요. 코인장의 변덕은 한순간의 기복으로 여러분의 원금과 삶을 끝장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지금 손에 쥐고 있는, 몸이 아파서 하루 결근을 해도, 실수를 해도 수익을 보장해주는 직장,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이 조금 실수를 해도 여러분을 여전히 사랑해주는 아내, 남편,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 또한 잊지 마세요. 어쩌면 코인이나 주식의 대박보다 이것이 훨씬 더 기적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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