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명지 소아청소년정신의학과 전문의] 

 

 

성현 씨는 “항상 나만 일이 많은 것 같고, 너무 지쳐서 기운이 없어요.”라는 문제로 병원에 내원했습니다.

그는 실제 직장에서 높은 성과를 이루고 인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에게 속고 있다’는 은밀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자신의 무능함이 들통날 수 있음으로 한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여러 번 확인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므로 결국 지쳐서 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윤서 씨는 “인생이 재미없고 우울해요.”라며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사무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일이 힘들지는 않지만 즐거움도 없었습니다.

몇 번의 이직을 했지만 모두 쉬운 일, 즉 그녀의 능력에 비하여 낮은 수준의 일을 했습니다. 안전하지만 성취감도 없었습니다.

현재 직장은 장기적으로 볼 때 비전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심지어 좋은 회사로 취직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자리가 아닌 것 같다며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생 채원 씨는 “할 일을 자꾸 미뤄요.”라는 고민을 가지고 왔습니다. 공부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했습니다.

심지어 밤새 유튜브를 보다가 시험을 보러 가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유튜브 중독인가 했지만, 사실은 ‘당연히 시험을 못 볼 것’이라 생각하고, 유튜브 보느라 공부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위의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문제로 병원에 내원했고, 아무도 집중력 문제 때문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치료받지 못한 주의력 결핍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ADHD로 진단된 아이들은, 사소한 실수, 낮은 성적과 같은 실패 상황에서 ADHD 증상으로 이해받기보다 “게으르다, 어리석다, 배울 능력이 없다”며 비난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말을 자꾸 듣게 되면 자신도 무능하게 여기고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나는 해도 안 돼. 실패자야’라는 생각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후 살면서 누구나 어느 정도 겪게 마련인 거절, 시험 탈락, 실직 등의 스트레스를 실제로 경험하면서, ‘나는 무능하고 실패자’라는 믿음은 더욱더 강화됩니다.

여기에다 ADHD의 충동적인 사고방식이 더해져 ‘이번 생은 망했어’처럼 결론을 속단하면서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막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실패를 피하고 싶어, 외출하지도 않고 세상으로부터 은둔하는 경우도 있으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완벽을 꿈꾸지만 스스로 자책만 늘어나기도 합니다.

물론 ADHD로 진단받고도 그럭저럭 잘 사는 경우도 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가 되는 경우는 대개 이처럼 ‘실패’라는 이름의 덫에 걸린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사냥꾼이 동물을 잡기 위해 사용하는 ‘덫’에 동물이 걸리면,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욱 덫이 옥죄어 벗어나기 어렵듯이, ‘나는 실패자야’라는 생각에 일단 사로잡히면 아무리 잘살아 보려고 노력해도 자꾸 자신이 실패자란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고 실제로 실패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성인 ADHD인 사람들에게 “난 원래 무능해. 게을러. 의지가 약해. 머리가 나빠서 그래”라는 말들도 다 생각의 ‘덫’으로 작용합니다.

심지어 “내가 ADHD라 그래”라며 현재의 실패를 병의 탓으로 돌리는 생각의 ‘덫’에 빠지면, 변화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책하고 절망하고 주저앉기 쉽습니다.


이런 생각의 덫에서 벗어나는 데 있어서,

1) ADHD가 유전적, 환경적 위험요인이 어느 이상 쌓이면서 결국 뇌의 신경생물학적 이상을 통해 발생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도움이 됩니다.

즉, 나의 무능함, 게으름 같은 나의 개인적인 특성은 ADHD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또 2) ADHD가 한번 진단되면 불치의 병이 아니라 약물치료와 비약물 치료를 통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책과 절망이 사라지고 변화와 희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