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인 줄 알았던 성인여성 ADHD

[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현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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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유라 씨는 병원에 왔을 때 자신의 진단을 스스로 불러주었다.

“저는 완벽주의랑 강박증이 있어요.”

유라 씨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지시나 질문을 오래 꼼꼼히 많이 생각하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을 지체해서 허둥대다가 오히려 실수가 늘어나는 게 문제였다.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그녀 인생에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던 불안이었다.

 

유라 씨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한 토막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때 저금을 걷는 날이었다. 부모님께 저금액을 달라고 말씀드리는 걸 잊어버린 유라 씨는 제출할 돈도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통장도 어디에다 두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선생님께 혼날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초조한 마음으로 머리를 쥐어짜서 “동생이랑 싸웠는데 그때 동생이 제 통장을 찢어버려서 못 가져왔어요.”라고 담임선생님께 둘러대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선생님이 자신의 서랍 안에서 유라 씨의 통장을 꺼내는 게 아닌가? 유라 씨는 선생님의 표정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했다. 선생님이 통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까맣게 생각도 못 했다는 이 기억의 구멍에, 디테일한 거짓말이 눈앞에서 거짓말로 밝혀졌다는 사실에,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어딘가로 숨고 싶을 만큼 심하게 당황하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이후 청소년이 되고 성인기에 접어들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더욱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그녀가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게 했다.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 계획을 굉장히 정교하게 짰다. 그러나 그 계획은 사실 지키기에는 현실적으로 너무 많았다. 결국 일정표는 일을 체계적으로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수단이 되기보다는, 완벽하고 높은 벽처럼 저 위에서 유라 씨를 내려다보며 유라 씨의 실패를 비웃는 눈이 되었다. 유라 씨는 ‘이번엔 제대로 다 지키리라’ 이를 갈며 또 다른 계획표를 짜는 일이 중고생 시절부터 반복됐다고 했다. 그러나 성공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자신을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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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는 이후 몇 차례의 추가적인 면담을 통해 그녀의 다른 증상들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끈기가 없고 흥미를 쉽게 잃어 배우다 관두는 것이 매우 많다거나(그녀는 재미있고 관심이 가는 일이 많았지만 무엇 하나 길게 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대충 해버리는 모습(“저는 늘 형편없이 끝을 내요.”), 지루하거나 곤란한 과제를 미루는 모습, 물건을 자주 잃어버려 허둥대는 일이 잦다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자리에 있기가 어려운 모습,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불만이고 불안한 모습 등등에 대한 증거를 취합하고 진단평가를 실시하여 성인 ADHD를 진단하였다. 

유라 씨는 이 진단에 대해 놀랐다. 그녀는 “ADHD는 남자아이들에게 생기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그녀가 ADHD라는 병명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모습은, 어린 남자아이가 모터가 달린 것처럼 뛰어다니고, 소파에서 뛰어내리고, 친구들을 방해하고, 떠들어서 벌을 받는 그런 병이었다. TV에는 그런 모습이 많이 나왔다.

 

2000년 이전까지 ADHD는 여성에게 그다지 발생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여성 ADHD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고, 제대로 진단되지 못한 채 증상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20년간 대규모 추적관찰 연구와 역학연구가 다양하게 시행되면서, 비로소 여자 소아청소년 및 성인에게도 ADHD가 상당히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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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ADHD의 대표적인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ADHD는 어릴 때는 발병률이 남성에서 3:1 정도로 더 흔히 발생하나, 성인이 되면 1:1로 비슷해진다.

2. 어릴 때는 ADHD를 가진 여아들이 남아들에 비해 증상의 심각성이 낮은 편이지만, 성인이 되면 남녀 간 심각성이 비슷해진다. 오히려 여성에서 ADHD 증상이 더 심각하다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성인에서 이렇게 남녀 간 심각성이 비슷해지는 것은 어릴 때는 증상을 선생님이나 부모님 같은 타인이 보고하지만, 성인은 스스로 증상을 보고하는데 성인 여성이 남성보다 자신의 문제를 보다 쉽게 인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3. ADHD를 가진 여아들이 남아에 비해 청소년, 성인으로 자라나면서 반사회적 행동, 기분장애, 불안장애, 식이장애, 물질남용 등 공존질환이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ADHD를 가진 여아들은 남아에 비해, 학업, 사회적 대인관계 면의 기능장애가 어른이 되어도 쭉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ADHD 증상 자체는 진단 기준 이하로 약해지는 경우에도 동반된 기능장애는 여전히 지속된다. 이 기능장애는 남녀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여성 ADHD는 일반적으로 부주의 타입이 더 흔하고 과잉행동/충동성 타입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과잉행동/충동성 유형인 경우 자해나 자살사고가 더 많이 동반된다고 한다.

 

ADHD 진단평가에서 '12세 이전에 ADHD라는 진단을 받은 적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유라 씨는 이렇게 답했다.

“(진단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지만 증상은 있었다.”

유라 씨는 현재 치료를 통해 완벽주의와 강박증이라고 믿었던, 자신을 평생 힘들게 해왔던 ADHD 증상을 조절하고 있다.

 

참고문헌

Barkley(2014) 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 A Handbookfor Diagnosis and Treatment. Guilfor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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