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힘들 때마다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죽지 않았던 건 결정적으로. 내 삶과 내 기억 속에 나에게 해를 가했던 사람들, 함부로 대한 사람들.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가장 가까웠던 그 사람들은 내가 가장 힘든 순간 항상 눈빛으로, 무언의 긍정으로 자신과의 거리 유지와 나의 죽음을 바라 왔기 때문이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혹은 말하고 있는 그들의 추악함이 나의 선택으로 덮이길 바랐던 것 같아요. 처음 그 마음을 발견한 건 연인에게서였고 그 후엔 아버지에게서였고 지금은...
어디까지가 당연한 거고 어디까지가 아닌 건지 잘 모르겠어요. 어디까지가 도움을 청해도 되는 거고 어디까지가 혼자 일어서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람의 관계는 물론이고, 아픔에도 환경이 필요하고 자격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는 자격이 없고요.
언젠가 인터넷에 떠도는, 유서를 남기지 않고 간 가족을 그리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마도 이런 방향은 아니었겠지만, 문득 그런 결심을 했어요. 누구에 의해서도 아니고 오롯이 나 스스로 무덤덤하게. 유서를 남기지 않아도 구천을 떠돌지 않을 만큼 내 죽음이 나에 의한 것도, 남에 의한 것도 아닐 때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하자. 그런데 그 결심을 지켜낼지 모르겠어요.
무시와 배제는 직장 내 괴롭힘이래요. 방임은 학대이고요. 그런데 나는 내 아픔을 말하는 곳에서조차 방임, 배제를 받는 것 같아요. 혼자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째서 도움을 청하러 온 걸까요? 그건 언제나 상대방의 바람이었는데 '너는 좀. 너라도 좀!! 혼자서 해결해. 나도 힘들어. 나도 힘들다고!!' 매번 나에게 외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겐 비난받지 않을 고고하고 정갈한 눈빛과 말과 글과 기운으로.
왜 나는 '힘들다, 도와달라'는 말조차. '저 사람은 싫다는데 이런 징징거림조차 내가 사람을 조종하려 들려는 건가.' 자기 검열을 해야 할까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인 건가요?
사람들이 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잘근잘근. 불행해졌으면 좋겠어요. 제발.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과 의사 이두형입니다. 남겨주신 사연을 보며 아마도 공개된 게시판에는 남기기 어려운 남모를 깊은 상처와 고민이 있으셨던 건 아닌지 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어떤 일을 경험하셨는지, 지금 어떤 상황에 계시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조심스럽게 말씀을 건네드려 봅니다.
우리는 힘든 마음을 겪을 때 어떻게 하면 그 마음이 사라질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외로움이 들 때는 그 외로움을 없애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마음이 허전하거나 불안할 때는 그 마음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그 힘든 마음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그러한 마음을 위로해 줄 사람을 찾거나 마음이 괜찮아질 방법을 시도하다가도, 아픈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으면 이로 인해 좌절하게 되고 마음의 상처는 더욱 깊어지기도 합니다.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으로부터 어떻게 하여도 벗어날 수 없어 결국에는 그러한 마음을 끝내는 마지막 돌파구로 죽음을 떠올리게 되기도 합니다.
나의 마음은 왜 그렇게 슬프고 불안한지, 외로운지, 삶의 기억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그러한 마음이 형성되어온 근원, 실마리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홀로 된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은 성장한 이후에도, 이성적으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홀로 되었을 때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그 감정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고, 어린 시절 그러한 감정을 해소해 줄 보호자를 찾듯 그러한 대상을 찾고 그러한 안정감을 요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틀렸는지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때론 불편할지라도 모든 마음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마음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게 왜 그러한 마음이 종종 깃드는지, 그러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알 수 없는 시기에,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민과 슬픔에 빠져들곤 하는지...
그래서 사연자분께도 조심스레 권해드려 보고 싶습니다. 도무지 어찌할 수 없고 버거운 마음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인들을 통해 어떻게 이런 마음을 없앨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우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만나 보시기를.. 나에게 찾아오는 감정이 어떠한 느낌이고, 그러한 감정들은 어느 시기, 어느 순간에 찾아오는지. 그것을 위로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살아오며 경험했던 순간 중 그 마음과 연관된 순간들은 어떠한지...
그렇게 생각과 기억을 정리하다 보시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힘들기만 한 지금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구나, 지금은 그때와 달라, 지금의 나는 괜찮아, 그간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자신의 마음을 보듬고 위로해 주실 수 있는 순간을 마주치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포함하여 마음대로 되지 않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의 안식과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내게 달려 있지 않고, 마음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떠한 타인보다도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스스로가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위로해 준다면, 어떠한 소중한 타인의 위로보다도 깊이 와 닿을 것입니다. 홀로는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너무도 막막하고 버거우시다면 정신과 진료를 비롯한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셔도 좋습니다. 모쪼록 마음에 평안과 위안이 깃드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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