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학창 시절 내내 따돌림을 당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너무 괴롭고 불행합니다.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요즘 여러 군데서 학폭 뉴스가 터지는데 그게 트리거가 되어 자꾸 옛 생각이 납니다. 따돌림 이후 저는 아무도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배웠고 저에게 문제가 있다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왜 긴 시간 동안 제 곁엔 아무도 없었던 걸까요. 가해자들은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저를 괴롭혔을까요?

 

또한, 사람은 믿는 게 아니라고 배웠어요.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가해 주동자로 돌변했거든요. 그 후 사람을 대면하는 거 대화하는 거 자체가 두려워 웬만하면 그런 일은 피하고 있습니다. 친구도 전혀 없고요. 사람들은 제가 왕따였던 거 제가 모자란 거 얼른 눈치채고 동조하고 뒤에서 욕할 테니까요. (그런 식으로 학창 시절 은따와 왕따를 오갔습니다)

저는 사회적으로 아예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대로 민폐만 되느니 죽어 없어지는 게 나은 것 같아요. 하루하루 우울하고.. 불안하고.. 얼른 죽고만 싶네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이두형입니다. 대인관계에서의 소외, 폭력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아픔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 상처를 감히 제가 안다고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다만 지나오신 그 시간들과 이후로도 지속되었던 아픔으로 눈물지으셨을 사연자분에게 우선 진심으로 위로를 전합니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람인지라, 우리의 마음속에는 타인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거나 관계로부터 괴롭힘과 따돌림을 받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정도의 두려움으로 우리 마음에 인식됩니다. 특히 홀로 자립하여 살아가기 힘든 어린 시절 경험하는 그 아픔은 배가되어 느껴집니다.

 

글 속에 다 적진 못하셨겠지만, 아마 그 과정들 속에서 사연자분께서도 부단히 노력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고자, 혹은 아픔을 피하고자 여러 방법을 떠올리고 시도해 보셨겠지만, 그럴수록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막막함은 더 가중되셨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피하는 것은, 아마 사연자분이 사람을 멀리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쌓인 아픈 기억들로 인해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 일 것입니다.

단순히 칼로 찔리거나 큰 교통사고로 인해 실제로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만 심리적인 외상이 남는 것은 아닙니다. 대인관계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두려움을 마음에 남깁니다. 이러한 두려움을 경험한 마음은, 비록 과거의 일일지라도 자꾸만 현재처럼 떠올리게 되고, 그때 경험했던 두려움과 불안, 공포까지도 지금 여기에서 재경험하게 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심한 불안과 함께 호흡이 가빠지거나, 가슴이 쿵쾅거리며 진정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을 유발한 상황 (사연자분의 경우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되겠지요.)을 어떻게든 피하고만 싶게 됩니다. 그래서 사연자분께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 만남을 어떻게든 피하려 하시는 그 마음은 제게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생각됩니다.

 

우리의 삶은 늘 변화합니다. 나 자신도,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집니다. 그 아픔의 시간 동안 사연자분께서는 잘 버텨 주셨고, 잘 이겨내주셨으며, 잘 살아와 주셨습니다. 타인을 함부로 괴롭히고 따돌리는 잘못된 행동들이 사연자분의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지나오시는 동안 사연자분께서는 성장하셨고 또 성숙하셨습니다. 그 힘든 시절들의 사연자분은 지금의 내가 아니며, 앞으로 내가 만날 사람들도 그때, 그토록 내게 상처를 입혔던 그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힘든 나날들을 지나오며 차곡차곡 쌓인 아픈 감정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 마음속에 생긴 원칙들은 오늘, 지금 여기에서의 관계를 방해하고 나를 세상으로부터 떨어뜨리게 합니다. ‘사람은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다음과 같은 큰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을 것 같습니다. ‘또다시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게 된다면, 나는 괴롭힘 받고 따돌림받을 때의 아픈 경험을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사연자분께 진료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지금 너무도 강렬하고 힘든 그 감정과 느낌들을 어느 정도 조절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오늘을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하는 마음들을 좀 더 돌아보고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 ‘많이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라 위로해 주기 위함이며, 그러한 위로와 이해를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다만 그러한 과정을 오롯이 홀로 감내하시기에 사연자분의 깊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버거우실 것 같아,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시며 함께 그 과정을 나아가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기억과 경험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떠한 과거와 상처를 가진 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부족한 답변이 그 과정의 작은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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