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서울에 거주 중인 20대 남성입니다.

저는 초등학생 후반부터 현재까지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자라왔고, 그중에 여러 일을 겪으면서 몇 가지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성격도 처음부터 내성적이었습니다. 그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힘든 와중에 버티면서 졸업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힘든 상태였고, 그 상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인간관계는 여전히 저에게 힘든 숙제 같은 느낌입니다.

저는 성장 과정에서 학대를 당한 적이 상당히 있는데, 2010년 및 그 이전에는 군대와 비슷한 양식으로 생활하면서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고, 2011년 이후에는 주로 언행(말) 등으로 정서적인 학대 위주로 당했었습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어머니에게 당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 영향인지 저는 말에 특히 민감하고, 아직까지도 일종의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형편 역시 이렇게 되는 데 한몫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는데, 생활비, 교육비 등이 많이 나가다 보니 2015년경부터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것 대신에 다른 활동(기기 수리 등)으로 돈을 조금씩이나마 벌며 검소하게 생활해 왔습니다. 상황을 생각해서 부모님께 무엇을 하고/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도 못했고요. 물론 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을 위해 제가 어느 정도 포기를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너무 후회되고 한이 되더군요.

 

그런데 2019년 중반까지는 제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줄은 몰랐었고, 제 마음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로 부모나 타인에게 맞추며 살아왔습니다. 그 후 2019년 후반 어느 날, 제 마음이 힘들고 심리 정서가 불안한 상태라는 사실을 저 스스로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까지는 제 마음을 털어놓을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우선적으로 가족(친척 포함)에게 호소를 했지만, 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의 답변만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 주변 지인들과만 가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여전히 마음이 힘들고 행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올해 코로나 사태 이후로 이 상태는 더욱 심해져만 갔고, 무기력감 등이 잦아졌으며, 안 그래도 비교적 낮았던 자존감은 더 낮아졌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취미생활(음악 감상, 악기 연주 등)을 통해 삶의 희망을 이어갔지만, 최근에는 이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삶의 의욕을 거의 잃은 상태입니다(그래도 제 취미생활에 대해서는 만족하는 편입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한 만큼...).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때가 잦아지고, 시도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자살 생각도 몇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제 마음과 정신 건강에 대해 스스로 걱정이 되고, 우울증이 의심되는 상태입니다.

진지하게 정신과 진료나 심리 상담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시간과 경제적인 문제도 있는 상태이고, 찾아갈 용기도 안 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라도 제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서 알아보던 와중에 이곳 정신의학신문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나마 이렇게 고민을 털 공간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입니다. 올해 말까지는 직장으로 인해 시간이 없지만, 2021년부터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기기에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해 볼 생각입니다.

그럼 전문의 여러분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_픽셀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과 의사 이두형입니다.

적어주신 글을 쭉 읽으며, 무엇이 문제다, 어떻게 하시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더하기보다 지금까지의 사연자분의 삶,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응원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우리의 삶은 있는 그대로 괜찮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자존감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주신 사연들은 다른 어떠한 이가 겪더라도 충분히 힘들 만한 것입니다. 아마 같은 삶을 살았다면 그러한 과정에서 좌절하거나 인생을 그저 비관할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연자분은 조금 더 힘들고, 또 조금 더 의미 있는 길을 택해 오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삶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피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노력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보호를 받기에도 어색하지 않은 어린 나이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집안에 경제적인 보탬이 되고, 하고 싶은 바가 있지만,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코로나와 같이 어느 누구라도 힘들 만한, 또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력함을 느낄만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마음과 삶을 개선할 수 있을지를 떠올리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집안의 재산이 얼마인지, 얼마나 삶이 평탄했는지의 관점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삶을 이어가는지에 대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사연자분의 마음, 그간의 삶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 아닐까 하고, 그렇게 나 자신의 삶과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존감이 아닐까 합니다. 사연자분의 삶에는 고된 시간도 많았으나,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이 그러한 삶을 묵묵히 이어 오신 사연자분의 마음은 스스로 충분히 인정하고 또 존중할 만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상처, 지금의 삶의 버거움은 마음이 흔적으로 남아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성적으로는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도 심적으로 쉽게 부정적인 경향의 생각이나 불안한 감정이 들 수 있겠고, 대인관계에서도 마음 같지 않은 마음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면담을 통해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을지 방법론적으로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겠고, 또는 마음에 그러한 경향성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논하며 조금 더 나 자신의 마음을 알아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보다 더욱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것은, 그토록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늘 삶을 진지하게 대해 왔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는 것, 그리고 비록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내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나의 삶과 마음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사연자분께서는 이미, 그간의 고된 시간들 속에서도 홀로 이러한 걸음을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여건이 마련되었을 때 면담을 통하여 전문가와 함께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신다면 그러한 과정이 더욱 가벼워지지 않을까 첨언을 드립니다. 사연자분의 앞으로의 삶의 여정을 응원하고 또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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