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원의 ‘직장 남녀를 위한 오피스 119’ (21)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조장원 전문의] 

 

“우리 MBTI 성격 유형 검사 한번 받아볼래?”
“그게 뭔데?”
“자기 성격을 알아보는 거야. 재미도 있고 잘 맞는다고 하더라고.”
“그래? 그럴까?”

나소심 씨는 친구의 권유로 함께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새해도 되었으니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아두면 한 해 계획을 이루어가는 데 도움이 되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해가 바뀌면서 회사에서 부서 이동이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부서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새로운 업무와 낯선 사람들 그리고 적응이 잘 안 되는 어색한 분위기로 인해 그녀는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권한 검사를 해보면 뭔가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생긴 것이다.

 

“내향적인 성격입니다. 조용하고 신중하며 내면 활동에 집중하는 유형이시군요.”

MBTI 성격 유형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중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내향적 성격이라는 거였다. 그녀는 자신이 안고 있는 염려와 걱정이 이런 내향적 성격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이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일들도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자꾸만 부풀려지고 자신을 짓누르는 게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결국 문제는 자신에게 있었다.

‘그래, 내가 내향적인 성격이라서 부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간관계를 풀어 나가지 못한 거야.’

처음에는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되어 홀가분한 기분도 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어려운 관계가 생길 때마다 그 이유를 자신의 성격 탓으로 돌리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내향적이라서 그래. 그러니까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야.’

매사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출근하는 게 즐겁지가 않았다. 일을 해도, 사람을 만나도, 회의를 해도,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져도 의욕이 솟아나질 않았다.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 하나?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급기야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회사 안에서, 부서 내에서 그녀는 홀로 떠 있는 섬이었다.

 

사진_픽셀
사진_픽셀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가리킨다. 작가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녀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카를 융의 성격 유형 이론을 근거로 개발한 성격 유형 선호 지표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 모두 의사도 심리학자도 아니었다. 따라서 MBTI는 지표 자체의 객관성과 효율성에 의문이 많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성격 유형 검사지만, 과학적인 방법론에 기초한 현대 심리학과는 뿌리가 다르다. 주류 심리학계는 물론 정신의학계에서도 지나친 상업성 등을 이유로 MBTI 검사 자체를 논의하지 않고 있다.

 

정신의학 용어 중에 ‘라벨링(labelling)’이라는 게 있다. 스티그마(stigma), 즉 ‘낙인’처럼 특정 정신질환에 대해 부정적인 꼬리표를 달아 묘사할 때 사용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제로 하는 이 같은 라벨링은 환자로 하여금 적절한 정신과적 치료를 받는 것을 방해한다.

라벨링은 실생활에서 더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어떤 대상이나 물건에 일정한 라벨을 붙이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라벨에 기재된 대로 믿어 버리는 현상은 우리 주위에 만연해 있다. ‘저 상품은 좋지 않아.’, ‘저 제품은 명품이야.’, ‘저 사람은 음흉한 스타일이야.’라고 한번 마음먹고 나면 그 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처음 가졌던 생각에 의해 그대로 판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임상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한 우울증 환자가 있다. 그는 오늘도 평소처럼 우울하다. 얼마 전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전문의 진찰을 통해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다음날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나가기 귀찮아졌다. 그는 자신이 게을러서 그렇다든지 하는 다른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우울증 탓으로 돌린다.

‘아, 내가 우울증이라서 그렇구나. 오늘은 나가지 말아야지.’

이때 환자의 언니가 집에 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무심코 지나가다가 툭하고 한마디 던진다.

“너, 오늘 표정이 안 좋은데? 약 안 먹었어?”

이 경우 환자와 언니 모두 라벨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는 약속이 있음에도 외출하지 않는 자신을 향해, 언니는 얼굴 표정이 좋지 않은 동생을 향해 라벨링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이 우울증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이나 동생의 표정에 대해 어떠한 의문이나 궁금증도 갖고 있지 않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나의 행동과 가족의 표정을 살펴 관심을 보이고 질문하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물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을 받는 게 이런 부정적인 라벨링 효과로 나타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전문의와 함께 라벨링을 한다면 분명한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라벨링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방해하는 원인 중 하나가 “나는 원래 ~해.”라고 이야기하는 버릇이다. 나는 원래 그렇다는 말투와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나는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지금 그럴 뿐이고 혹은 과거에 그랬을 뿐이다. ‘원래’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또는 ‘근본부터’라는 뜻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항상 그런 사람은 없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이유가 있다. 그리고 사람은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에 적응하고 대응하면서 성격, 태도, 습관, 언어 등이 변화하게 마련이다.

“나는 원래 우울해.”

이건 틀린 말이다.

“나는 지금 우울해. 하지만 나아질 수 있어.”

이것이 바른말이다.

 

다음은 이유를 찾아야 한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이와 반대되는 행동은 없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나는 왜 우울해졌을까? 우울하지 않았을 때는 어땠지?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르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위 사례의 나소심 씨 같은 경우, 나는 왜 내향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내향적이지 않을 때는 없을까? 친구들이랑 있으면 내향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친구들과 있을 때와 회사 사람들과 있을 때가 어떻게 다르지? 이렇게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원인에 근접할 수 있고, 문제가 되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구분해 비교하면서 이유를 발견해낼 수 있다.

 

내가 하는 라벨링이 맞는지도 의심해 봐야 한다. 반대되는 근거를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여러 연구 결과 타인이 타인을 라벨링할 때, 라벨링하는 사람이 당하는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 라벨링 효과가 더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을 라벨링했을 때 효과가 더 강력하다. 후배나 아랫사람에 대한 충고나 조언이 자칫 라벨링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원인도 모르고 해결책도 모르는 막연한 라벨링이라면, 내 인생을 망치는 주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라벨링은 자기충족적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효과를 나타낸다. 반복되는 말이 생각을 규정해 행동으로 나타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 미래에 실제 현실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일이 벌어지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일이 생겨나는 현상이다. 사람은 객관적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믿는 상황에 반응하기 마련이다. 나는 내향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꾸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다 보면 점점 더 고립될 수밖에 없다. 결국 말이 씨가 되는 셈이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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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민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나를 지키는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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